“가난은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유”
빈소는 부산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5일 오전 8시 30분

“나는 계속 걸었고, 언제나 카메라와 함께 있었다. 그 길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카메라로 사람들을 찍었다. 사람들은 가난했고, 나는 그들을 찍었다. 나는 없는 길을 간 것도 아니고, 이 땅에 없는 사람들을 찍은 것도 아니다. 나는 계속 권력자 앞으로 불려갔다. 하지만 나는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또 길을 걸었다. 사진은 역사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를 늘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아직도 가난한 이들에 대한 편견이 만연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 카메라는 가난한 이들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낮은 데로 임한 사진>(눈빛출판사, 2009)

▲ 최민식 빈첸시오 ⓒ박현동 신부
이 시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작가로 불리며, 카메라로 '가난함의 영성'을 담아냈던 사진작가 최민식(빈첸시오) 씨가 2월 12일 오전 8시 40분 부산 대연동 자택에서 선종했다.

작가는 대한민국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1928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본래 화가를 꿈꿨던 그는 1957년 도쿄 중앙미술학원 디자인과 2년을 수료한 후, 도쿄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접한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집 <인간가족>에 영향을 받아 사진으로 진로를 전환, 평생 ‘인간’을 작품의 화두로 삼았다.

그는 훗날, <인간가족>으로부터 받았던 감화에 대해 “그때 받았던 감동은 지금 다시 되새겨 봐도 너무나 생생하다. 사진 한 점 한 점에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기에 더 독창적이고 아름다웠고, 결국 그 사진집이 반세기 동안 사진에 미쳐 카메라를 둘러메고 다니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그 자신이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넝마주이, 지게꾼, 자동차 기능공, 과자공장 막일꾼 등으로 살았던 작가는 57년 학교를 마치자마자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부산으로 달려가 전쟁고아, 거지, 지게꾼 등을 사진에 담았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간첩’으로 신고당해 중앙정보부에 몇 번이나 끌려다니고, 여권을 내주지 않아 외국 초청에도 갈 수 없었으며, ‘거지작가’라는 폄하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결코 시대에 굴복하지 않았다. 덕분에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 서민들의 삶은 고스란히 그의 사진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

 

"리얼리즘 사진가로서 저는 그 어떤 것에도 눈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후미진 곳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인간이 머무는 곳은 어디라도 내 사진의 영역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고통에 처한 사람, 기도하는 사람, 우는 사람을 찍었어요. 저는 사진을 통해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휴머니즘 사회를 만들고자 했어요. 저는 꾸민 것, 느껴지지 않는 것, 가식적인 것을 부정합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트리밍(사진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일)이나 포토샵 같은 조작을 절대 하지 않아요. 그런 탓에 저의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나 봐요." (2012년 7월, <분도>지 인터뷰에서)

작가는 1962년 대만 국제사진전에서 입선과 1회 동아 사진콘테스트 입선을 비롯 국내 여러 사진 공모전에서 입상했으며, 1966년 미국 US 카메라 사진공모전, 프랑스 꼬냑 국제사진전 명예상 수상을 비롯해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20여개국 사진공모전에서 220점 이상 입상하는 등 국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1967년 부산시문화상, 1974년 한국사진문화상, 1987년 예술문화대상, 2000년 부산KNN문화대상, 2005년 부산예술상, 2009년 부산문화대상 등 14개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2000년에는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 2008년 대통령국민포장 등을 수여받았다. 고인의 모든 자료는 국가기록원에 소장됐으며, 2008년 국가기록원에 내놓은 사진 원판 등 13만여 점의 자료는 민간 기증 국가기록물 1호로 지정됐다.

1968년 개인사진집 <HUMAN(인간)> 1집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인간’ 시리즈 14집을 출간했고,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낮은 데로 임한 사진>, <생각이 머무는 곳에 인생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 등의 에세이집과 <사진이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말하다>등의 사진 평론집을 출간했다. 2012년 12월, ‘사진의 사상’과 ‘작가 정신’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55년간의 작가인생을 풀어낸 <사진의 사상과 작가정신>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유족은 부인 박정남씨와 3남 1녀. 빈소는 부산 남구 용호동 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8시 30분. (051)933-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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