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학연구소 열린토론회에서 <깨물지 못한 혀>를 쓴 김유철 씨 발표


지난 11월 25일 우리신학연구소 열린토론회 평상에서 일제강점기 한국교회의 친일 문제를 다룬 <깨물지 못한 혀>의 저자인 김유철씨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하여 한국천주교회와 언론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는 “어제가 아닌 ‘오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면서 자신이 “천주교를 ‘방편’으로 삼아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식의 자식의 자식까지도 자랑스럽게 천주교인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석되지도 뉘우치지도 않는 역사는 항상 반복하기 마련이며, 1940년대의 친일이 1960년대 이후 군사독재에 대한 순응과 협조로 다시 나타났다고 말한다. 노기남 대주교는 주교취임식을 회고하면서 그 당시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라고 말하였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교회는 온전하게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혀를 깨물지 못하고 일제에 순응한 원죄 때문에 교회는 아직도 부활하지 못한 채 허깨비로 살고 있으며, 이리저리 접착제로 붙여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회는 ‘소극적 친일’을 주장하지만, 팔레스타인의 한 젊은이가 죽음으로써 인류가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신학자들이 왜 교회가 친일한 결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지 안타까와했다. 김유철 씨는 만주에서 싸우던 독립군들의 죽음, 위안부로 끌려간 누이들, 징병당한 젊은이들의 고통에 대하여 한국천주교회가 왜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묻는다. 예수에게 묻는다면, “그 사람들이 ... 그게 나야. 나였어.”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 소장이 정권을 잡으면서 일제하의 국민총력연맹처럼 재건국민운동을 벌일 때에 교회는 '재건국민운동 서울대교구 촉진회'를 결성하였다.

 

 

 

 

 

 

 

 

 

 

 

 

더구나 교회언론이 진실을 비틀어버려서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고 평했다. “이번 주에도 교리만 잔뜩 실려 있을 뿐 예수는 어디에도 없다”면서, 대림초는 꼭 네 개만 놓아야 한다는 등의 기사를 실으면서 시청 앞 광장에 켜졌던 촛불을 앞에서는 ‘대림’을 못 느끼는 언론의 편협한 불감증을 탓했다. 교회와 언론이 제대로 말하지 않으니 우리신학연구소 같은 현장교회에서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에서는 교리만 가르치지 예수는 위험해서 안 가르친다”고 말한다.

우리는 바를 때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지만 그걸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교회는 때로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 미사 때마다 가슴팍을 두드리고, 예전엔 ‘내 탓이오’ 스티커까지 달고 다닌 적도 있다. 그러나 정작 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이, 세상이 교회더러 ‘네 탓’이라고 말하려고 하면 ‘아니다’라고 사래질을 친다”는 것이다.

천주교인 가운데 7명만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는데, 사실상 한국천주교회는 통째로 친일하였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에서 일제 강점기에 순교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안타까와 해야 한다. 신부 중에서 고문받다 돌아가신 분도 없고 수녀들 중에 신사참배 거부하다 돌아가신 분도 없다”면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지난 4월 29일에 친일인명사전 등재 인사를 발표하자마자 바로 그 다음날인 4월 30일에 서울대교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주보에 삽지로 끼어서까지 신속하게 유감을 표명한 교회 당국자들의 몰염치를 탓하는 것이다.

그는 십자가 없이 부활 없음을 몇 번이고 강조하였는데,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제일 먼저 만나 사람이며 제일 마지막까지 죽은 예수를 끌어앉았던 것을 상기시키며 "부활은 하느님 소관이고 우리가 왈가왈부할 게 못되지만 우리 몫은 십자가라는 것을 잊지말자"는 말로 발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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