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비평-맹주형]

2011년 5월 22일(일) 고베 청년학생센터에서 혼다 신부를 만났다. 사실 나는 혼다 신부가 프란치스칸이면서 가톨릭 사제인 줄 잘 몰랐다. 다만 일본에서 빈민운동을 하는 신부를 만난다는 사실 밖에는. 혼다 신부는 일본 오사카 인근 가마가사키 지역에 산다.

▲ 혼다 신부 ⓒ맹주형
가마가사키 지역은 5만 명 가까운 노숙자들이 살고 있으며, 매년 변사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는 한마디로 ‘인간 지옥’ 동네다. 한때는 수도회의 관구장을 지냈고, 로마 교황청에서 손꼽히는 성서학자였던 혼다 신부는 가마가사키 지역에 오기 전까지의 삶은 ‘거짓말쟁이 인생’이었다 한다. 그 거짓을 깨기 위해 가마가사키 노숙자들에게 모포와 주먹밥을 나눠주며 신부는 “처음으로 사람의 눈을 인식하는 것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진짜 예수 수난의 의미를 알 수 있었고, 힘없는 사람들을 통한 수난과 부활을 체험했다.

“예수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시선이었다.”고 말하는 혼다 신부. 그가 로마 바티칸에서 성서교수로 공부하며 내린 결론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장 낮은 이들’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 깨달음이 있은 뒤 혼다 신부는 성체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가장 작은 사회적 약자이기에 신자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도 성체를 나눈다. 가마가사키에는 알콜 중독자들이 많기에 포도주가 아닌 포도 주스로 미사를 봉헌한다.그는 로마 바티칸과 주교들은 이런 미사를 “굉장히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혼다 신부는 가장 낮은 이들의 관점에서 번역 성서를 냈다. 그런데 이 책을 낼 때 일본 주교들은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가톨릭계 신문에 책 광고를 낼 수 없으며, 책머리에 ‘이 책은 일본 가톨릭주교단의 낭독성서가 아니다.’라는 주석을 넣어야 했고, 책의 제본 형태는 성서처럼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혼다 신부는 이런 일본 주교들의 태도에 대해 “교회로부터 인정받는 것보다, 고통받는 노동자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을 더 우선순위로 둔다.”고 담담히 말했다.

▲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올라간 재능교육 해고자 2명이 단체 협약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달았다.ⓒ문양효숙 기자
왜 벌써 2년 가까이 지난 혼다 신부와의 만남을 지금 떠올렸을까? 그건 불편함 때문이었다. 불편함. 대선에서 내가 원하는 후보가 되지 않고, 독재자의 딸이 이제 이 나라를 5년 동안 통치한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큰 불편함은 우리 교회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언제부터인가 4대강 사업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쌍용자동차, 콜트 콜텍, 그리고 어제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올라간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에 대해 성당에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강론시간에도 들을 수 없고, 교회 언론에서도 볼 수 없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오늘도 강정에서는 미사가 봉헌되고, 신부님들은 경찰들에 의해 불법 채증과 소위 공중부양을 당하고 고착되었을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 추워진 날씨 속에 전국 곳곳의 철탑 위에 오른 노동자들은 지금도 그렇게 벌벌 떨고 있을 텐데 우리 교회는, 교회의 구성원인 대부분의 사제·수도자·신자들은, 마치 높은 곳에서 남 일 인 양 아래로 내려다보고만 있어도 되는 것일까. 그런 불편함이었다.

이제 나는 교회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믿음을 포기한다. 다만 예수가 그랬듯이 더 내려갈 곳 없는 이 시대의 약자들을 통한 세상의 변화와 구원만을 믿을 것이다. “신의 마음은 사회적 약자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혼다 신부의 마지막 이야기를 믿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 고린토 1, 27-28)

 

 
맹주형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기획실장, 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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