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5주일 묵상]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복음 5,1-11)
 
[빠더 푸코의 묵상]

▲ 겐네사렛 호수의 예수님 (조르주 루오, 1933년)
연중 제5주일이자 설날인 오늘, 복음은 겐네사렛 호수가에서 물고기의 기적을 통해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겐네사렛 호수의 다른 이름은 갈릴래아 호수입니다. 그리고 티베리아 호수라는 이름으로도 종종 불립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시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시고 그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십니다. 군중들을 좀 더 잘 가르치시기 위해 그리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끝나시자, 시몬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시몬과 예수님은 이미 구면(舊面)입니다.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쫒으시고(루카 4,31-37) 나신 후,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셔서 고열로 시달리던 시몬의 장모를 고치셨던(루카 4,38-39) 인연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몬은 평생을 어부로 살았습니다. 그것도 겐네사렛 호수에서만 평생을 그물질 하며 살았던 그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간대에 어디쯤에다 그물을 놓으면 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물길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지금까지 목수의 아들로, 그리고 자신 또한 목수로 살았던 예수는 얼토당토않은 조언을 합니다. 좀 더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4절)하고 말이죠.

만일 예수가 다른 어부에게 그런 조언을 했다면, 어부들은 필시 예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했을 것입니다. 뜨내기 목수가 어부에게 그물질에 대해 조언을 하다니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한 마디 대꾸만 하고 곧바로 실천한 시몬의 태도입니다. 시몬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시몬은 이미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어느 고을 출신의 무엇하던 사람인지 등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픈 장모를 위해 예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그곳에서 예수의 능력을 이미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몬에게는 예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고기가 잘 잡힌다는 밤에, 그것도 잘 잡힐 만한 장소에 그물을 쳐 놓고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5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말을 그대로 따랐던 것입니다.

시몬은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면서도 그분께 ‘주님’의 표징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물고기의 기적을 통해 앞으로 “사람을 낚을”(10절) 소명을 이미 표징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시몬을 당신의 첫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시몬 역시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11절) 예수를 따랐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첫 제자들, 즉 훗날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을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업자였던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와 동고동락하면서 예수에 관한 지극히 비밀스런 계시들을 목격하는 특권을 지닌 사도들입니다. 이 세 제자들은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키셨을 때(루카 8,51),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때(마태 17,1), 그리고 예수께서 동산에서 고통에 잠기셨을 때(마르 14,33) 예수와 늘 함께 했습니다. 이들 역시 겐네사렛 호수의 기적을 통해서 알게 된 예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그것을 알고 계셨기에, 특별히 이 세 제자만을 종종 대동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 (연중 제4주일)에 읽었던 대로, 예수의 고향 갈릴래아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갈릴래아의 변경지역인 겐네사렛 호수가에서 시몬은 예수를 환영하고 그분께 전적인 신뢰를 보이며 따랐습니다. 시몬은 자신과 함께 했던 모든 것, 즉 시몬의 모든 옛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입니다.

신앙은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비록 절망적인 현실에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는”(로마 4,18) 것은 이런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앙에 희망을 두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깨달은 것을 가슴으로 소화시켜, 그 결과를 온 인격을 통해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전적인 신뢰가 곧 신앙이 되고, 또한 실천으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자신의 삶을 터전을 모두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오늘 복음의 장면은 참으로 극적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치라는 말씀이나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도록 부르시는 장면은 우리 삶에서 매일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 지식, 자신의 곁에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큰 사건 안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크고 작은 우리의 선택 안에서 예수는 “더 깊은 곳으로 가라”고 베드로에게 이르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순간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보다 내가 가진 것들을 선택하곤 합니다. 결국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삶의 궤적 안에 예수님의 부르심이 끼어들 여지는 점점 희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지와 같은 상태로 예수님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신앙으로 가득 찬 상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실상 더 많은 선택지를 부여합니다.

“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치라”는 말씀이 오늘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당부일까요. 베드로의 길과 우리의 길이 결코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김홍락 신부 (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
교부학과 전례학을 전공했고, 현재 필리핀 나보타스(Navotas)시 빈민촌에서 도시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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