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의 마을 취화당]

 이 이야기는 실화라고 합니다. 일본 나가사키대 의과대학 출신의 청년 의사가 국제청년의료단으로 케냐에 파견되었습니다. 약혼녀를 두고 떠난 그는 3년 동안 원주민들을 위한 의료 봉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국의 약혼자로부터 자신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영화 같죠?

그 사연을 청년의 대학 동창 친구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일본 대중음악 톱가수 사다마사시(한국의 조용필과 같은 수준이라 함)였습니다. 친구가 아프리카 의료봉사 중에 겪은 아픔을 알고 있던 사다마사시는 친구가 고국의 약혼자에게 보낸 답장 내용으로 친구를 위하여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바람 앞에 선 라이언’이고 자신이 직접 불렀습니다.

▲ 사다마사시 (사진출처/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さだまさし 風に立つライオン 長崎でのコンサート)
유튜브에 올라있는 음악 파일을 보내와서 들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말 노래를 들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노래말이 끝나고 긴 연주곡으로 들려오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듣고 있자니, 젊은 청춘들의 꿈과 사랑, 이별의 아픔과 고뇌가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져 왔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볼 때 3년씩 약혼녀를 두고 봉사활동만 하고 있었다는 것도 현대 젊은이 답지 않고 무책임한 느낌도 있지만, 잘잘못을 떠나서 그래도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스토리의 감동에 빠지게 됩니다.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도 그런 분이었지 않아요?

“누가 내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요 내 약혼자인가?
바로 여기, 아버지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내 어머니요 형제요 내 사랑이다!”

약혼자를 두고 목마른 대지 아프리카에서 대자연과 착한 사람들의 눈빛에서 하느님을 만나서, 연인보다 더 큰 사랑에 빠져버린 젊은이의 영혼은 검은 땅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인류애와 검은 피부의 민중들을 연인으로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되겠지요.

우리 청년들도 이렇게 큰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생각해 봅니다. 평생에 단 한번 만이라도... 가사 내용을 여기 적습니다. 코베대학 전은이 연구원이 번역해서 메일로 보내온 것입니다.

바람에 앞에 선 라이언

갑작스런 편지에 놀랐지만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날 원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곳에서 살아갈 나의 하루하루의 의지가 되는군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나이로비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4월을 맞이하니
새삼스레 지도리가후치에서 그대와 보았던 밤 벚꽃이 그리워져,
고향이 아닌 도쿄의 벚꽃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였어요.
3년 동안 여기저기를 돌며 생활하며 그 감동을 그대와 나누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였습니다.

빅토리아 호수의 아침 노을,
100만 마리의 플라밍고가 일제히 날아오를 때 까맣게 변하던 하늘,
킬리만자로의 하얀 눈, 초원 속의 코끼리 실루엣,
그 무엇보다도 내 환자들의 아름다운 눈동자.
이 위대한 자연 속에서 병과 마주 대하면
하느님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시 내 나라는 안타깝게도
뭔가 소중한 부분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는 국경 가까운 마을에서 지냈습니다.
이런 곳에도 산타클로스가 찾아옵니다.
올해는 나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터져 흩어지는 그들의 기도와 격렬한 리듬
남십자성, 온 하늘의 별들, 그리고 은하수
진료소를 찾아오는 이들은 아픈 사람들이지만
적어도 마음은 나보다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역시 이곳에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전 지금 행복합니다.
그대와 일본을 버린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을 살아가는 일에 우쭐해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늘을 가르고 낙하하는 폭포처럼
나는 막힘없이 흐르는 생명을 살고 싶답니다.
킬리만자로의 하얀 눈, 그것을 지켜주는 검청색 하늘
나는 바람을 향해 우뚝 선 라이언으로 살고 싶어요.

부디 모두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마지막이 되겠습니다만, 당신의 행복을
진심으로 멀리서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축하해요. 안녕히!

꿈 많은 여느 젊은이에 불과했던 그가
내일을 위해 학업에 충실히 성장해 왔던 그가,
어쩌다가 대지에 작렬하는 태양을 향해 가슴을 열어버렸구나.
관습과 욕망, 성공의 경계를 넘어서 저만치 가버렸구나. 

한 여인의 사랑을 뜨겁게 품고자 했던 그의 가슴에다1
하늘의 해를 품어버렸으니. 아니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로부터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로
몸을 던져버렸으니,

끝없이 흐르는 생명의 강물을 따라 떠내려 간다.
연인에게 안녕을. 모든 이의 축복을 빌면서...
하느님과의 사랑에 빠진 이들이 모두 그렇지. 


▲유튜브
さだまさし 風に立つライオン 長崎でのコンサート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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