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강론 전문]

어제 정부 당국에서는 강정 해군기지 설계를 바탕으로 실시된 15만 톤급 크루즈선 두 척이 가상정박실험에서 아무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다는 검증이 됐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벌써 오래전에 제주도 측의 분석을 들은 바로는 강정 앞바다는 도저히 이런 큰 배가 두 척이나 드나들 조건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동안 정부는 제주도가 제시한 가상실험의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어려워서 계속 시뮬레이션을 미루어오다 이제야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조건을 바꾸어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강정 해군기지 사업을 시작할 때 천여 명의 마을 주민들을 제쳐놓고 85명만 불러 미리 약속하고 박수치고 끝낸 것, 법적으로 절대보존지역으로 옛날부터 쭉 지정되어 있는데도 엉터리로 박수치고 통과시키는 그런 편법의 연속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왔고, 이번 시뮬레이션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제주 강정마을 거리미사에서 강론을 하는 강우일 주교 ⓒ한수진 기자

시민단체 발표에 의하면 입출항로 각도를 77도에서 30도로 수정을 해서 선박 항해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변경된 항로로 배가 다니게 되면 천연기념물 421호로 되어있는 문섬, 범섬의 천연보호구역, 천연기념물 442호로 되어있는 제주 강정 연안의 연산호 군락,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 보존지역, 해안도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을 엄청난 큰 배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바다 밑은 완전히 다 쑥밭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제의 새로운 발표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면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해 싸워온 강정 주민들을 비롯해 평화를 위해 몸바쳐온 평화의 일꾼들, 이분들은 어마어마한 절벽 같은 장애물이 눈앞에 우뚝 선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아마 지금 순간에도 서울에서 강정 주민 대표들이 시뮬레이션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난 6년을 지내면서 이런 커다란 비극에 맞닥뜨린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여정과 평화를 향한 우리의 갈망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평화는 군사력으로 결코 보장되지 않습니다. 평화는 첨단 무기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 강대국은 날이 갈수록 고성능의 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사용하고 있지만, 평화가 오기는커녕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그 무기 때문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력행사는 죄 없는 민간인들의 죽음을 불러오고, 갈수록 첨단화되려는 무기는 더 많은 인간 생명의 효과적인 무차별 살상을 가져올 뿐입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습니다. 이 평화를 위협하는 이 세상의 절벽과 같은 장애물을 눈앞에 두면서 우리는 오늘 하느님이 주신 말씀, 첫째 독서 히브리서(10,32-39)의 말씀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예전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어떤 때에는 공공연히 모욕과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그러한 처지에 빠진 이들에게 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감옥에 갇힌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지난 세월 강정의 평화를 위해 몸 바쳐 싸워왔던 이들이 공공연하게 ‘종북세력, 좌파, 빨갱이’라는 모욕과 손가락질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 때문에 여러 형제들이 감옥에 갇혀서 수난을 당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많은 이들이 물심양면으로 옥바라지를 해왔습니다. 또 공사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기 위해서 온몸을 던져 지금까지도 매일 같이 트럭 앞에서 막아서던 이들이 수백 명의 공권력에 의해 내동댕이쳐지고 들어 옮겨지고, 입건되고, 감당할 수 없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아니면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으로 손발을 묶여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나라 각처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프랑스에서, 일본에서 이렇게 찾아와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이지스함의 미사일보다 항공모함의 전투기보다 훨씬 더 좋고 더 길이 남는 재산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히브리서에서 계속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큰 상을 가져다줍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지난 6년을 버텨오면서 온갖 모욕과 환난을 견뎌온 강정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이 이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서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기를 우리 모두 마음을 다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주님이 약속하신 평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겠다고 하신 평화를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는 작은 씨앗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뿌려두면 어디에 박혔는지 우리가 찾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씨앗이지만, 우리가 잠을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싹이 트고 가지가 나고 이삭이 나고 낱알을 영글게 된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이곳 강정 바닷가에 들여오려고 하는 집채보다 더 큰 항공모함이나 크루즈선을 상상해보면, 그 앞에 선 우리는 손가락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겨자씨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평화를 위한 우리들의 발걸음은, 주님을 신뢰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반드시 이 땅을 이 지축을 뒤흔들고 집채보다 더 큰 쓰나미를 일으켜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불의한 작품도 낙엽처럼 휩쓸어버릴 그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태초에 창조하실 때부터 그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완성이 바로 평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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