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생은 오묘하다. 다음 장에 무엇이 나올지는 살아봐야 안다.
정말로 가끔은 기적 같은 이야기가 풍문으로 들려오기도 한다. 물론 드물다. 절대로 누구에게나 오는 행운은 아니다. 그 어떤 무던함으로 인하여 마침내 하느님마저 감동시킨 이들이 세상에 보여주는 신비다.

뜨거운 노래, 차디찬 현실

 
로드리게즈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가난한 미국 원주민과 멕시코계 이주민의 후손이었다. 그 땅에서 소외당하기에 충분한 이름과 외모였다. 막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거주지, 그 가난한 동네의 수많은 슬프고 기쁜 자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싸구려 선술집의 ‘안개 속처럼’ 희뿌연 불빛 아래에서도 저녁마다 노래했다. 빈곤과 불행에 찌든 60년대 말 디트로이트의 한구석에서, 그 노래들은 밤마다 어둔 골목의 별빛이 되었다. 그리고... 노래는 음악 전문가들의 귀에까지 흘러들어 가게 되면서 ‘공식적인’ 팝 음악의 역사에 다음 몇 줄을 남긴다. 팝 역사상 가장 신비하고 경이로운 이야기로 남게 될 로드리게즈의 삶을 말리크 벤디엘로울 감독은 다큐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 담았다. 아래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영화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에 대한 해설을 인용한다.

“1960년대 말, 두 명의 유명 프로듀서는 디트로이트의 한 술집에서 소울이 가득한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로 마음을 흔드는 한 음악가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이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가수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그의 음반을 제작한다. 이들은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등 팝 역사상 최정상의 가수들을 발굴하고 기획해낸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 데니스 코피와 마이크 시어도어였고, 그들을 사로잡은 가수가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자 ‘슈가맨’으로 알려진 ‘시스토 로드리게즈’다. 그 당시 서섹스 레코드의 소유주이자 마이클 잭슨, 마일스 데이비스, 자넷 잭슨 등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일했던 클라렌스 아반트가 그의 음반을 발매했다.

그러나 1970년, 야심차게 준비한 ‘슈가맨’의 첫 번째 음반 [Cold Fact]가 세상에 발표됐을 때 엄청난 인기를 예상했던 그들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평단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고작 6장!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71년 발표된 두 번째 음반 [Coming from Reality]는 1집보다도 부진한 판매고를 보여 제작자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고, ‘슈가맨’은 무대에서 끔찍한 사고로 죽었다는 소문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만다.

이후, 그의 앨범은 우연한 기회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어떻게 흘러 들어갔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노래가 그 당시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아공의 젊은이들을 자유로운 록의 세계로 이끌었고, 모든 혁명의 아이콘이 됐다는 점이다. 남아공 정부는 ‘슈가맨’의 노래가 더 이상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라디오에서도 틀지 못하게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열광적인 팬들이 늘어났다. 그의 앨범은 5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플래티넘이 됐고, 남아공의 수많은 뮤지션들은 그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고 그를 추종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가수가 지구 반대편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완전히 새롭게 살아난 것이다.”

“살아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로드리게즈는 ‘공식적으로 실패한’ 가수였다. 그보다 더 처참하게 실패한 가수는 있을 수 없었다. 다만 제작자들이 가수 본인보다 더 애석해하고 가슴 아파했다는 점이 다른 경우와 달랐달까. 앨범은 완벽하게 실패했고, 가수는 사라졌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예술가였죠. 그런 앨범이 잘 안 된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죠.”
“왜 실패했을까? 그러다 그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 결론은 한 가지예요. 도저히 모르겠다!”
“내가 아끼는 가수 10명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요.”
“그는 충분히 인정받아야 했어요. 미국의 누구도 그의 이름조차 몰라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 이런 음악을 쓴 사람을!”

 
남아공에서 ‘슈가맨’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는 감히 아무도 질문하지 못했던 것들을 궁금하다며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묻고 (<I Wonder>) "사람들은 성을 내도 / 선거일은 잊지"( <This Is Not a Song, It's an Outburst: Or, The Establishment Blues>) 같은 가사는 한 사회의 봉인을 푸는 역할을 했다. 오직 남아공에만 있던 폭풍 같은 인기였다. 정부의 검열은 극심했지만, 인기는 그 탄압을 뚫고도 남았다. 엘비스보다 밥 딜런보다 남아공의 청년들은 슈가맨에 더 열광했다. 그러나 가수에 대한 정보는 오직 노랫말로 추측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그저 확인불가의 비극적인 자살설만 떠돌 뿐이었다. 어린 시절 로드리게즈의 음악을 듣고 그 순간부터 ‘인생이 바뀌었다’고 여기는 남아공의 두 남자가 의기투합해 ‘서칭 포 슈가맨’에 나선다. 찾아 나선 이유는 하나였다. “로드리게즈는 정말 어떻게 죽었을까?” 그거라도 알고 싶었다고 한다. 중고 레코드 가게 주인과 음악평론가가 된 이 두 열혈팬은 지구 반대편 미국으로의 여정을 감행했고, 묘비라도 찾고 싶었던 심정으로 더듬더듬 퍼즐 맞추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1998년 3월 6일, 시스토 로드리게즈는 남아공 무대에 서게 된다. 살아서, 살아 있는 채로!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관객이 스무 명이나 올까 걱정했다는 그. 케이프타운에서 오직 자기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빼곡히 메운 팬들의 환호성 앞에서 그는 씩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살아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이후 15분여간 목이 메어 가수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팬들은 울면서 계속 환호를 보낸다. 대학 시절부터 슈가맨을 연주하며 전업음악가가 된, 말하자면 가수는 없이 연주자들로만 구성됐던 밴드는 뒤에서 묵묵히 전주를 반복한다. 그 시간 동안, 말로는 다 못할 감정의 소용돌이가 관객마저 감개무량하게 만든다.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었던 로드리게즈가 앨범 발매 28년 만에 본인도 몰랐던 스타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공식적으로 수많은 증인들 앞에서 뮤지션으로 생환하는 자리였다. 그의 큰딸은 말한다. “평생 소외되어 살다가 본 모습으로 돌아온 거예요.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노래하는 뮤지션이었죠. 집이란 받아들이는 곳이죠. 엉뚱하게 지구 반대편에서 살지만, 집에 돌아온 거였죠.”

삶이 있고서야, 노래도 있는 것

이렇게 글로만 로드리게즈를 접하면, 사실 늙고 쇠약한 노인을 연상하기 십상일 것이다. 영화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2011년에 만들어진 영화 속에서 로드리게즈는 40년 전이나 변함없는 검은머리와 탄탄한 근육, 한결같은 목소리로 등장한다. 오직 그 홀로 40년 세월을 건너뛴 사람처럼 말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언제 어디서나 노래를 부르는 육체노동자로 살아온 그의 일상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집에서 같은 일을 하며 사는 그를, 세상만 그와 무관하게 함부로 버렸다가 다시 불러내며 호들갑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수를) 더 했다면 좋았겠지만 (앨범을) 더 잘 만들 순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일을 했죠.”
- 어떤 일이요?
“단순노동이요. 수리나 복구...”
- 좋아하시나요?
“몸을 계속 움직이니까요.”

그는 그렇게 살았다. 딸들과 동료들의 말처럼, 한 번도 실의에 빠진 적이 없이 늘 더 나은 삶을 향해 지역사회와 그곳의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땀 흘렸다. 쉬지 않고 육체노동을 했고, 시의원에도 입후보했고 처절한 낙선도 당해봤다. “진정한 시인이나 예술가들이 가진 힘으로, 주변의 비루한 것들을 변화”시켰다는 벽돌공 친구의 말은 이미 시구였다. 지저분한 작업장에서도 턱시도를 차려 입고 일했던,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가장 더러운 곳의 청소를 웃으며 해냈던 그. 꿈도 희망도 품지 말라는듯한 대도시의 싸늘함 속에서도 그는 딸들과 이웃 아이들에게 가난한 도시 밖에 있는 ‘더 나은 삶’에 대해 가르쳤다.

자신은 오직 뮤지션일 뿐이라던 그. 정말 열심히 살았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무명가수, 이 세상에서 가장 무력했던 예술가, 그가 지치지도 않고 살아낸 소박하고 무던한 일상은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다. 가장 예술적인 현실인식은 결국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일상부터 가지런히 살아낸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로드리게즈는 만고의 진리를 자신의 한 생애 안에 구현한 위대한 생활인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대중에게 널리 선호 받는 데는 무려 40년이 걸렸다. 웃음기 머금은 가식 없는 목소리, 담담하지만 단단한 사유의 힘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 어딘가 위안을 주는 따뜻한 목소리. 그러나 자신의 당대에는 함부로 버려지고 잊혔던 목소리와 노래들. 무력하기 짝이 없던 가수의 인기 없던 노래가 뒤늦게 온 세상을 울리고 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그 먼 곳에서도 알아들었던 그 노래들이 말이다. 부디 이 영화를 시간 내어 봐 주시길. 세월을 건너지른 아름다운 노래들, 노래보다 더 위대했던 한 인간의 뜨거웠던 삶을 가슴으로 느끼시길. 노래는 들어야 맛이고, 사람은 만나봐야 맛이 아닌가. 
 

 
 
김원 (로사, 문화평론가)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