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의 향기-5]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작은 공동체’가 우리 교회의 키워드예요.”

새해 첫 주일에 태어나 이제 갓 한 달이 된 섬돌향린교회의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임보라 목사가 말했다. 섬돌향린교회는 지난 1월 6일 향린교회 60주년 기념 예배 중에 ‘분가(分家)’를 위한 예식을 갖고 새로운 교회로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이날 향린교회 신자들은 오랫동안 가족으로 지내왔던 87명의 섬돌향린교회 신자 한명 한명을 뜨겁게 포옹하며 작별 인사를 전했다.

▲ 임보라 목사 ⓒ한수진 기자

향린교회는 1953년 서울에서 12명의 젊은 신앙인들이 함께 모여 살며 삶과 신앙을 나누는 공동체이자 ‘평신도 교회’로 출발했다. 이들은 ‘생활공동체, 입체적 선교공동체, 평신도 교회, 독립교회’라는 네 가지 창립정신을 내세워 어느 교단에도 속하지 않은 작고 평등한, 생활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공동체를 꿈꿨다. 창립자 중 한 명인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은 ‘목회자(개신교에서는 ‘사목’ 대신 ‘목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가 양들을 돌볼 때 100명, 200명을 넘기면 안 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목회자가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지 못하면 목회를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친밀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며 작게 더 작게

하지만 향린교회를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 교회의 규모가 커지고, 사회 변화와 필요에 따라 1974년에 처음으로 담임목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향린교회도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나날이 성장하는 교회에 제동을 건 이들은 초기 향린교회의 정신에서 멀어지는 교회의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낀 청년들이었다. 교회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열린 심포지엄에서 청년들이 던진 고민과 호소는 향린교회가 다시 처음의 정신을 되새기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를 발판삼아 1993년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사업 중 하나로 <교회갱신선언서>를 발표하며 교회 신자와 재산을 나누어 서울 송파구에 강남향린교회를 ‘분가’시켰다. 이어 강남향린교회 신자들은 더 작은 교회 공동체를 지향하기 위해 같은 방식으로 2004년에 들꽃향린교회를 세웠다. 그러니 올해 60주년을 맞는 향린교회에서 또 한 번의 분가를 결심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섬돌향린교회가 분가를 하기 전에는 향린교회에 교적을 둔 신자 수가 700명이 넘는 수준이었어요. 향린교회는 신자들 사이의 공동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일 예배를 오전에 한 번만 드리는데 신자들이 많아 서로 잘 알지 못하게 되었죠. 그래서 과연 향린교회가 교회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난 거예요.”

신자 수가 많아지다 보니 교회의 여러 부서와 모임들이 방만하게 운영되는 일이 발생했고, 사람은 많지만 정작 교회 운영에 참여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의 수는 전체 신자의 20-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동안 교회의 분가를 고민하고 더 나은 방식을 연구해오던 신자들은 더 늦기 전에 본격적으로 분가를 실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 분가예배에서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와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가 신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박상범

▲ 지난 1월 6일 분가예배에서 헤어지는 신자들은 서로를 안아주며 그간의 정을 나눴다. ⓒ박상범

향린교회 신자들은 2011년에 교회를 분가시키기로 뜻을 모으고 부담임 목사를 맡고 있던 임보라 목사를 새로 태어날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로 결정했다. 이듬해 1월에는 분가의 싹을 틔우는 ‘새싹틔움주일’을 선포하고 분가할 교회에 참여할 신자들을 모집했다. 분가 교회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디디는 돌’을 뜻하는 ‘섬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새로운 교회로 떠날 신자와 친정 교회에 남을 신자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맡아 분가에 필요한 절차와 비용문제를 차근히 해결해나갔다.

“신자들의 교회활동에서 인간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오랫동안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분리된다는 것에 일종의 심리적인 저항을 느끼시는 분들도 솔직히는 있었어요. 예산 문제에 있어서도 향린교회가 힘을 다 합쳐도 모자를 텐데 굳이 작아지려는 이유를 머리는 동의해도 가슴으로는 동의하지 못하기도 하셨고요. 그래서 분가 논의가 더 길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분가를 하고 난 다음에 외부에서 많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거든요. 개신교가 세습이나 추문으로 수없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가운데 성장을 지향하지 않고 작아지려고 애쓰는 교회가 있으니 주목을 받은 거죠. 이런 평가들이 마음고생을 했던 신자들에게 많은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건물 짓지 않고 인권센터에 세들어 살기로 결정
교회 재산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큰 의미

태생적으로 여느 개신교 교회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섬돌향린교회는 교회로 쓰일 건물부터가 파격적이다. 섬돌향린교회는 새로 교회 건물을 짓거나 작은 규모의 교회들처럼 상가 건물에 들어가지 않고 마포구 성산동에 문을 여는 인권센터와 장기임대 계약을 맺었다. 주택을 리모델링해 만드는 인권센터 건물 3층에 교회 사무실을 열고 주일 예배와 모임 공간은 2층 강당과 세미나실을 인권센터 측과 공동 사용하기로 했다. 임보라 목사는 섬돌향린교회가 인권센터를 통해 인권운동의 조력자가 되고 지역의 마을공동체와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밝혔다.

▲ 서교동 문턱없는밥집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섬돌향린교회 신자들 ⓒ박김형준(사진제공/섬돌향린교회)

“대부분의 교회 건물은 평일에 비어있어요. 월드컵 경기가 열렸을 때 교회에 큰 스크린을 설치하고 주민에게 개방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동네 주민이 작은 모임을 할 때 교회가 공간을 빌려주는 데에는 많이 인색한 편이예요. 또, 일반 상가 건물에 입주하는 것도 작은 교회 입장에서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요. 장소를 마련하는 비용이 공적으로 사용된다면 더 좋은 일인 거죠. 그런 뜻에 신자들도 공감을 해주셨어요.”

섬돌향린교회는 올해 봄에 인권센터가 완공되기 전까지 인근 서교동에 있는 ‘문턱없는밥집’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 제단도 없이 작은 식탁들이 사방에 놓인 식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가능한 것은 섬돌향린교회가 작은 교회와 함께 평등한 교회 구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돌향린교회 신자들은 친(한)친(구), 길라잡이, 예배지기, 살림지기 네 개의 작은 모임을 만들었고, 각 모임에서 대표자를 선출해 담임목사와 공동으로 교회 운영과 전반적인 살림을 담당하게 했다. 예배에서 가톨릭 미사의 강론에 해당하는 설교 시간에도 목사와 함께 신자 한두 명이 반드시 참여하도록 했다.

“목사는 성서를 해설하고 신자들은 그날의 성서본문을 통해 다양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눠요. 삶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느님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죠. 지난주에는 신자 두 분과 함께 설교를 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굉장한 전율을 느끼며 긴장하게 됐어요. 신앙과 삶에 대한 고민이 치열하신 분들은 대단한 신학자는 아니어도 삶 속에서 우러나는 경험으로 힘을 주시거든요.”

목회자는 교회 운영의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진 만큼 목회자의 역할은 작아진다. 임보라 목사는 교회 운영에 있어서 목회자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목회자는 전문적인 신학 교육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른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 이예요.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욕망을 내려놓고 가장 투명하고 수평적으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임보라 목사와 신자들은 섬돌향린교회의 모토를 ‘이웃과 함께 생명평화 일구는 작은 공동체’로 정했다. “유아독존 하듯 교회만 내세우지 말고 이웃과 함께, 생명평화를 공동체의 중요한 화두로 삼아 실천하고, 성장하지 않고 작아진다.” 교회 구성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른 누군가가 디디고 올라설 수 있게 자신을 내어주는 섬돌이 될 준비가 된 이들의 새로운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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