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의 주말 영화] <문라이즈 킹덤>, 1월 30일 개봉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 <문라이즈 킹덤>은 <로얄 타넨바움>과 <다즐링 주식회사>로 알려진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 칸 영화제 대상작인 프랑스 영화 <아무르>와 이 미국영화는 멀리 떨어진 국가 경계선만큼이나 다르다. <아무르>가 안락사를 둘러싼 노부부의 사랑과 고통을 리얼리즘 언어로 표현했다면,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 표 영화답게 하나하나 만들어진 소품과 세트, 환상적인 컬러감,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대사, 장르의 규칙에 따른 고안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영화적이라는 것’, ‘영화적 세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 영화는 보여준다.

때는 1965년. 미국에서는 흑인민권 운동이 일어났고,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고,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밥 딜런이 주름잡던 시절. 새로운 영화 흐름이 세상을 뒤덮고,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전조가 울리던 그 시절이다. 가족을 잃고 위탁가정에서 자라나는 카키 스타우트 대원인 문제아 샘과, 부유한 가정에서 외톨이로 지내는 수지는 서로 첫 눈에 반하여 열 두 살임에도 불구하고 연인이 된다. 소울 메이트가 된 그들은 둘 만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이 둘을 찾아 다니느라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과 비숍 가족들은 뉴잉글랜드의 뉴펜찬스 섬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그럴수록 샘과 수지의 사랑은 애틋하고 깊어만 간다.

‘웨스 앤더슨 영화 세계’라는 말 말고는 그의 독창적인 개성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앤더슨은 그만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드는 영화 장인이다. 몇몇 장면만 보더라도 알만한 사람들은 그의 영화임을 알아챌 수 있다. 더구나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리스트만 봐도 관객은 혹하게 될 것이다. 올해 오스카상 각본상 후보에 오른 각본의 로만 코폴라. 그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각본가이자 알려진 비디오 아티스트이며, <대부>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아들이자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오빠다. 1960년대를 풍미한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샹송이 흐르고, 레너드 번스타인과 벤자민 브리튼의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쓰인다.

브루스 윌리스가 짝사랑의 아픈 추억을 간직한 경찰 소장 역할을 하고, 에드워드 노튼은 책임감은 강하지만 소심한 스카우트 대장 역을 맡았다. 앤더슨의 모든 영화에 출연하며 그의 페르소나가 된 배우 빌 머레이와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부부로 출연하고, 사회복지사 역의 틸다 스윈튼은 그간의 지적이고 내면적인 연기를 버리고 판에 박힌 까다로운 원칙주의자 연기로 웃음을 준다. 12세 연인을 연기하는 신인배우 자레드 길먼과 카리 헤이워드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능청스럽게 어른 흉내를 낸다.

영화는 내러티브의 진행보다는 화면 곳곳에 세심하게 배치된 시각적 요소를 강조한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한껏 고취하여 1960년대를 향수하게 하는 여러 가지 소품들이 영화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된다. 싱글 레코드판, 턴테이블 전축, 손편지, 당시 유행하던 장르소설들, 스카우트 유니폼과 텐트, 미니스커트와 짙게 칠한 푸른 아이섀도, 도시근교의 저택들, 등대와 우편함, 트레일러 집, 전화교환원 등, 자잘한 모든 것에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해서 1시간 40분간 눈이 지루할 틈이 없다. 심지어 단추와 양말까지 그 시대를 되살렸으며, 머리모양에서 옷 입은 스타일, 사랑의 행태까지 향수를 가득 자극한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의 주제는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캐릭터들과 해체된 가족의 재결합이다. 그의 영화적 표식을 드러내는 이 주제를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모든 영화에서 표방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떠나고 싶어하지만,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고통을 받다가 결국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더라는 보수적인 결말로 매듭짓는다.

그의 영화는 짐짓 매너리즘 같아 보인다. 처음 시선을 사로잡는 기이한 캐릭터들의 연속되는 일탈은 지지부진해 보이고, 애써 남들과 달라 보이려는 외톨이 주인공들의 엽기행각은 피곤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너무나도 미국화된 요소들이 불러일으키는 향수는 우리 한국 관객에게는 팔다리가 길어 잘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할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놀고먹고도 잘 사는 가족이니, 뭐해서 저렇게 잘 살까, 역시 미국은 잘 사는 나라인가 보다,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불러온다. 잘난 부모덕에 잘 사는 가정에서 튀고 싶어 애써 어두워지려고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씁쓸해진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영미권에서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과 괴리된 채, 정말 영화적인 순수한 환상적 즐거움을 얻고 싶다면 한번 보시길 추천한다. 이 영화에는 과거 빈센트 미넬리나 스탠리 도넌 류의 뮤지컬 영화가 보여주던, 도피적이지만 순수한 즐거움이 있다. 그들이 아무리 괴로워할지라도 결국 모든 게 잘 되고 쇼는 계속될 것임을 알기에, 끝까지 애써 고통스럽게 영화를 감상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영화 감상의 또 하나의 미덕일 터이니.

상상 이상으로 성숙한 소년소녀의 러브스토리 역시 신선하다. 고영남 감독의 <소나기>(1978)에서 보여준 아이들의 살짜쿵 에로스, 영국영화 <작은 사랑의 멜로디>(1971)의 아이들이 펼치는 잔망스러운 결혼 행각을 넘어서, <문라이즈 킹덤>의 어린 연인들이 보이는 육체적 조숙함은 허를 찌르지만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금기시되지만 아이들의 성 담론은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현실의 화두라서, 이 영화는 어린 관객에게는 좀 더 사실적인 이야기로, 어른 관객에게는 사랑에 빠진 한 주체로서 아이들을 이해하는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한겨울에 영화의 따뜻한 한 여름 바닷가 향취 속에서 풋풋했던 첫사랑의 향수를 떠올리며, 어둡고 외로웠지만 동심을 자극하는 심성이 가슴 밑바닥에서 아련하게 피어 오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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