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파노라마-8]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70㎞ 떨어진 거리에 있는 고대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수도 테베(현재의 룩소르)는, 20여 개의 신전과 36개의 장제전(葬祭展)이 남아있는 거대한 ‘노천 박물관’이다. 때문에 이 유서 깊은 도시를 가리켜,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Homeros, BC 800~750)는 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에서, “황금이 산처럼 쌓였고 100개의 문이 있는 찬란한 고도 테베”라고 노래했었다.

약 1,000년 동안 고대 이집트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 온 이곳의 맨 처음 지명은 와세트(Waset, 많은 신이 모여 있는 곳)였으나, 그레코로만(Graeco- Roman)시대에 테베(Thebes)로 바뀌었다. 테베는, 이곳을 정복한 그리스인들이 그리스 중부에 있는 옛 도시 테바이(Thebai)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 후, 이슬람 시대에 테베는 룩소르(Luxor)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개명(改名)을 하게 된다. 일설에 의하면, 카이로를 점령한 이슬람군이 배를 타고 나일 강 상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룩소르에 이르렀을 때, 강변을 따라서 즐비하게 도열해 있는 여러 신전의 거대한 탑문을 보게 되자 이를 성문(城門)으로 착각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연유가 되어 룩소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랍어로 성이나 왕궁을 의미하는 단어는 카스르(Qasr)이다.

▲ 나일 강의 여명 ⓒ수해

유유히 흐르는 나일 강을 따라서 찬란했던 고대문화를 탄생시킨 룩소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동안(東岸)과 서안(西岸)의 유적들이 뚜렷이 나뉘어 있다. 그리스어로 ‘산 자의 도시’를 의미하는 나일 강 동쪽 아크로폴리스(Akropolis) 지역에는 현재의 파라오를 위한 신전 유적들이 있고, ‘죽은 자의 도시’를 의미하는 나일 강 서쪽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지역에는 장제전과 암굴무덤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다.

강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스크의 첨탑에서, 모슬렘들의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꿈결처럼 아득히 울려 퍼지는 새벽강변을 따라서 하염없이 걷다가 보니, 어느덧 걸음은 카르나크 대신전 입구에 다다르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어로 이페트 수트(lpet Sut, 고르고 고른 땅)를 의미하는 카르나크는, 고대 이집트 종교의 중심지였다.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라고 불리는 카르나크신전 내부에는 국가 최고신 아몬-라(Amen-Ra)를 위해 세운 아몬 신전과 함께, 부속신전인 룩소르 신전이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아몬은 지방 신이었으나, 기원전 18세기 초 중 왕국 끝 무렵에 파라오의 중앙집권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이 혼란기를 틈타 이집트를 점령한 이민족 힉소스(Hysos)를 몰아내고 신왕국을 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해서 테베의 주신(主神)이 되었다. 그 뒤 ‘숨어 있는 자’라는 뜻을 가진 아몬은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태양의 도시)의 태양신 ‘라’와 결합하여 국가 최고의 신으로 숭앙 되었고, 테베는 아몬-라의 성지로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 스핑크스가 도열해 있는 아몬 신전 입구 ⓒ수해

태양신 아몬을 위해 약 3500년 전부터 짓기 시작해, 2000년 동안 수없이 증축(增築)과 개축(改築)을 반복한 신전 입구에는, 사자의 몸에 아몬 신의 상징인 숫양 머리를 한 40여 기의 스핑크스가 좌우로 길게 도열해 있었다. 양쪽 발 사이에 파라오를 품고 있는 이 스핑크스들은 신전의 파수병을 의미하고 있다.

스핑크스가 도열해 있는 길에는 높이 43m 폭 103m의 제1탑문이 서 있는데, 북쪽에 테베의 세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아몬과 그의 아내 무트여신을 비롯하여 아들 콘수신의 재실(齋室)이 있다. 테베의 세 신에 관한 신화를 정밀하게 돋을새김으로 그려놓은 재실을 지나 이어지는 신전 안마당으로 들어서자, 오시리스(Osiris, 부활의 신)모양을 한 파라오가 기둥에 늘어서 있는 람세스 3세(Ramses III, BC 1187~1156년 재위)의 신전이 나타났다. 신전 안쪽에 자리한 작은 기둥 홀과 성소의 벽면에는, 태양신 아몬이 파라오인 람세스 3세에게 생명을 주어 파라오의 권력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임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세밀하게 그려놓은 벽화의 내용은, 당시 이곳에 신전을 건설한 파라오들이 태양신 아몬을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였음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람세스 3세의 신전을 나와 안뜰을 지나자, 제2탑문이 나타나면서 람세스 2세의 석상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이집트 전역에 자신의 기념물을 가장 많이 조성한 왕으로도 유명한 람세스 2세의 석상을 지나자, 드디어 대열주실(Hypostyle Hall)이 나타났다. 마치 거대한 석조기둥이 모여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는 느낌을 주는 대열주실에는, 134개의 거대한 돌기둥 위에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는 수많은 일화가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고대 이집트 건축물의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열주실의 늘어선 기둥과 기둥 사이를 지나자, 투트모세 1세(Thutmose I, BC 1525∼1512년 재위)의 오벨리스크와 함께 하셉수트(Hatshepsut, BC 1479~1458년 재위)여왕의 오벨리스크가 당장에라도 하늘을 찌를 듯한 늠름한 위용으로 우뚝 서 있었다.

▲하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와 람세스 2세 석상. ⓒ수해

그리스어로 ‘바늘’을 의미하는 오벨리스크는 끝 부분이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영원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는 대부분 신전 앞에 서 있다. 역대 파라오들은 누구나 자신의 업적과 영광을 새긴 오벨리스크를 이렇게 높이 세워, 자신의 힘과 능력을 만천하에 과시했었다.

석양 무렵이면 끝부분이 햇빛에 반사되어 해시계 역할을 하기도 했던 오벨리스크 가운데, 높이 30m의 하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는 단연코 독보적인 존재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절대 권력을 추구했던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였던 하셉수트는, 자신의 아버지인 투트모세 1세의 오벨리스크 보다 더 높은 오벨리스크를 세움으로써, 정당성의 시비로 늘 논란을 일으켜왔던 권력의 중심부에서, 불안정했던 자신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려고 했던 것 일까.

인격적인 면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허물을 드러내고 있지만, 고대 이집트 외교관계에 있어서만은 단연코 괄목할만한 수완을 발휘했던 여장부 하셉수트 여왕의 야망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오벨리스크 앞에서 한동안 사념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투트모세 3세의 정원으로 향하였다.

해외원정 당시 왕이 직접 목격했던 여러 동식물의 모습을 태양신 아몬에게 바치기 위해 아름답게 묘사해놓은 정원을 지나, 고대의 파라오들이 태양신을 칭송하고 이집트의 번영과 축복을 염원했던 지성소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자, 뉘엿뉘엿 발밑에 깔리기 시작하는 땅거미를 밟으며 신전 동남쪽 방향에 자리하고 있는 연못으로 향했다. 물끄러미 고대의 사제들이 목욕재계하던 적막한 연못 속에 드리워지는 황혼의 자취를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열을 지어 ‘스카라베 조각상’ 주위를 부지런히 돌고 있었다.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이 풍뎅이 모양의 스카라베 조각상에는,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시계반대방향으로 스카라베 조각상 주변을 세 번 돌면 행운이 오고, 다섯 번 돌면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 이다. 그래서인지 노을 속에서 두 손을 한데 모으고 무엇인가 정성껏 기도하면서 스카라베상 주변을 도는 이들은, 대개가 젊은 아가씨들이었다.

스카라베 조각상 주위를 돌며 영혼의 동반자를 절실히 희구하는 이들의 기도가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나일 강의 범람 축제를 기록해 놓은 신전의 벽화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벽화에는 사제들이 배에 태양신 아몬을 모시고 있는 광경과 함께, 그 앞에 파라오가 숫양으로 표현된 태양신 아몬의 앞에서 정기를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고대에 이집트 파라오들은 카르나크 신전에 있던 태양신 아몬을, 나일 강의 범람에 맞춰 약 3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룩소르 신전으로 옮겨가고는 했었다.

▲ 룩소르 신전의 야경 ⓒ수해

카르나크 신전에서 태양신 아몬을 룩소르 신전으로 옮기는 과정에 열리는 축제를 ‘오페트 축제(Opet Feastival)’라고 하는데, 열흘 이상 나일 강변에서 펼쳐지던 이 대규모의 축제 시즌이면, 수많은 군중이 태양신 아몬의 축복을 받기 위해 거리로 달려 나왔다고 전한다. 현재 유럽 각지에서 열리는 사육제(謝肉祭)의 기원은, 바로 이 오페트 축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에 오페트 축제의 중심지는 카르나크신전과 룩소르신전을 이어주는 스핑크스 길이었다. 사자의 몸에 숫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석상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던 고대의 길을 연상하면서 룩소르 신전을 향해 걸어가노라니, 어느덧 높이 19m의 파피루스 기둥이 두 줄로 도열해 있는 룩소르 신전의 웅장한 기둥과 기둥 사이로 환한 불빛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어디선가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이 하염없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만 같은 룩소르 신전 구석구석을 살펴보다가, 다시 어둠이 내린 테베의 강변을 향해 걸어 나갔다. 어둠 속에서 저 멀리 ‘죽은 자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나일 강 서쪽 네크로폴리스 지역을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노라니, 과연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는 그 무엇일까?’ 하는 습관적인 물음이 저절로 되뇌어졌다.

 

 
 
수해 (기행문학가)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명상사원과 문화유적지를 순례하다가,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지은 책으로 시집《산 두고 가는 산》과 동아시아 기행 에세이《예정된 우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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