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의 주말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이안 감독, 상영중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3D에 대한 편견과 기대를 넘어서는 수작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난파선에 타고 있던 한 소년이 극적으로 구명보트에 올라타 7개월간 호랑이와 동고동락한 이야기(소설)를 영화화한 것이다. 이는 포스터로도 파악이 가능한 단순한 스토리. 여기서 영화적 재미를 얼마나 찾아낼 수 있을까.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 황당무계한 설정과 진행을 관객에게 설득시킬 만한 재현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영화의 원작자 얀 마텔도 유사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연은 오싹한 쇼를 연출할 수 있다. 무대는 넓고, 조명은 드라마틱하고, 엑스트라들은 수없이 많다. 특별효과 비용은 무제한.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바람과 물, 모든 감각의 지진이 엮어낸 장관이었다. 할리우드에서도 그런 장관은 연출하지 못했으리라." (소설 <파이 이야기> 중에서)

이에 대한 할리우드의 답은 감독 이안과 3D였다. 이안을 떠올리면 <라이프 오브 파이>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상들에 쉽게 수긍하게 된다. 애니 프루 원작을 살린 <브로크백 마운틴>의 서정적인 풍광이 함께 떠오른다.

얀 마텔은 공간 묘사보다 통찰력 있는 서술이 더 나은 작가이다. <파이 이야기>는 섬세한 풍경 묘사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망망대해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형언불가의 감탄사로 표시해 놓고 있다는 느낌일까. 정적인 묘사를 생략한 대가로 소설은 속도감을 얻고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군데군데 호랑이와 인간의 차이를 행위 중심으로 무덤덤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를 반추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고로, <파이 이야기>와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나란히 놓고 보아도 괜찮은 매력덩어리 이란성 쌍둥이 같다.

소설은 이야기, 영화는 이에 3D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더했다

다음으로 3D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 둘. 첫째, 3D영화는 양안(兩眼)으로 초점을 맞춰 입체감을 인식하는 원리를 스크린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따라서 3D영화에는 두 눈의 역할을 수행하는 카메라 두 대와 이들이 만들어낸 서로 다른 그림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안경이 필수적이다. 이는 양안의 시력이 비슷한 사람을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한 기술이다. 멀쩡해 보이던 내 대학 동기는 짝짝이 시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군대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의외로 주변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다. 3D는 내게 과학이 보편으로 전제하는 정상성에 대한 불만을 자극하는 대상이었다.

 
둘째, 3D는 인간적인 움직임을 재생하는 데는 ‘쓸데없는 고(高)퀄러티’라는 생각. 3D 열풍을 몰고 온 <아바타> 이후 ‘왜 굳이 3D를?’이라는 갸웃거림을 유발하는 영화가 적지 않았다. <아바타>의 내러티브는 이를 훌륭하게 이해시킬 만했고 그랬기에 오늘날 3D 레이스의 스타터가 되었을 터. 상대적으로 <잊혀진 꿈의 동굴>과 같은 비(非)내러티브 3D영화가 주는 감동과 충격이 압도적이었기에 인간의 일상을 다룬 극영화에 3D의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종교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3D에 대한 나의 편견을 지워준 영화였다. 과학의 정상성에 대한 불만은 여전하지만 인간적인 시각과 상상력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일률적으로 부과되는 비싼 티켓이 아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인간의 한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바타>는 광활한 우주공간 속에 자리 잡은 대안적인 문명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것은 '신성'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신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영화다.

영화는 원작에 없는 대화를 추가함으로써 종교 간 조화와 범신론을 향한 열망을 보여준다. 주인공 파이, 곧 피신 몰리토 파텔는 다양한 종교를 포용하는 캐릭터다. 그는 자신을 천주-힌두교도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란 '방이 많은 집'과 같다. 그에게 종교 갈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성이라는 차가운 종교도 그는 거부하지 않는다. 그곳(종교의 집)에 회의(懷疑)의 방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답한다. “회의의 방은 좋은 곳이야. 믿음을 강화시켜주거든.” 종교가 잡아먹고 먹히는 동물계의 먹이사슬처럼 배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과 호랑이가 한 배를 타고 277일을 버텼는데 인간들의 종교가 공존하는 것이 어찌 불가능하겠는가. <라이프 오브 파이>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진수미(카타리나)
시인, 한국문학과 영화를 전공으로 삼고 있다. <달의 코르크마개가 열릴 때까지>, <시와 회화의 현대적 만남>을 썼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출신. 작은형제회 <평화의 사도>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가톨리시즘이 담긴 시를 같은 지면에 소개했다. 덧붙여, 시는 영혼이고 영화는 삶이다. 펄프 향 풍기는 ‘거기’서 먼지와 정전기 날리는 ‘여기’로 경로 이동 중. 덕분에 머리는 산발이지만 약간 더 명랑해지고 조금 덜 외로워졌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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