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의 영성과 가톨릭일꾼운동의 한국적 적용-7]

최근 ‘신앙의 해’를 맞이해 신앙쇄신을 통한 ‘교회의 복음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교도권에서는 신자들의 신앙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믿고 <가톨릭교회교리서>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꼼꼼히 읽자고 제안하고 있다. 한편 가톨릭 사회교리를 예비자교리서에 반영하자는 제안이 주교회의에 제출되었다.

교회가 그만큼 의미심장하게 세상 안에서 복음적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의 참여에 비해 정작 평신도 단체들은 그다지 중요한 몫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가톨릭사회운동을 주도해 왔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은 소속 단체들이 줄어들고 결집력이 약해지면서 소수 집행부 중심의 상징적 운동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정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평신도운동은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로시 데이의 영성과 가톨릭일꾼운동은 이 점에서 몇 가지 우리가 배울만한 요소를 담고 있다.

▲ Rita Corbin. (그림 출처/www.winonacatholicworker.org/)

가톨릭일꾼운동, 취약함에 기초한 사회적 영성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유토피아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경제가 성공한다 해도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무정부주의적 방식의 정책이 설사 성공한다 해도 가난한 이들은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구원의 역사와 함께 추락의 역사는 늘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가난함이란 취약함이다. 물질적 영적으로 누군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안전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취약함 안에 머무는 이들은, 그 벗지 못할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께 온전하게 열려 있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취약함 안에서 하느님의 무상적 은총과 절대적 사랑을 상기하고, 그 안에 머문다.

그 하느님은 육화를 통하여 취약한 인간조건 안으로 오신 분이고, 우리는 취약함 안에서 그분과 일치한다. 그분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분처럼 사는 것이다. 그분처럼 산다는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삶이고, 두려움 없이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분처럼 사랑 때문에 사랑 안에서 죽는 것이다. 그 사람이 곧 성인(聖人)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은 모든 이들이 성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역사 속에 등장한 성인들과 일치하여 살고자 열망한다. 예전엔 사막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수도원에서 수행을 하였지만, 실상 수도원은 어디에나 있다. 오죽하면 도로시 데이가 젊은이들에게 감옥에 갈만한 일을 하라고 당부하였겠는가? 그만한 피정 장소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도로시 데이는 소화 데레사 성인의 ‘작은 길’을 따라 가도록 권했다. 우리는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하느님을 경험하고, 만나는 모든 이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길’이란 이렇게 삶 속에서 자신의 취약함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의 내용과 방식은 성인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고 경험하게 한다. 이 운동에서 어떤 일을 결정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는 원탁토론은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지성을 단련시킬 뿐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공동으로 식별하도록 돕는다. 환대의 집에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몸으로 실행하고 낯선 이들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법을 배운다. 그 낮은 곳에서 나의 취약함을 발견하고, 내 취약함 안에 더불어 계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한다.

또한 가톨릭일꾼운동은 농경공동체를 일구며 건강한 노동의 가치와 창조의 우주적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하느님과 모든 생명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이런 영성을 기반으로 세상에 나아가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에 힘을 쏟는다.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모든 불의와 부당함에 저항하고, 낡은 세상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한다.

가톨릭일꾼운동의 활동방식, 자유로운 개인들의 창조적 투신

 
가톨릭일꾼운동은 철저하게 개인에게 주목한다. 그 개인의 영적 성장에 최종 관심을 두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영적 여정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누구든지 원탁에서 이야기할 수 있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제든지 환대의 집에서 제 가진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자신들의 생각이 담긴 신문을 친구나 이웃에게라도 전달하기도 하고, 농장에서 원하는 만큼 일을 하고 쉴 수도 있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세세한 규칙이나 정해진 계획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갈망과 영성을 서로 나누고 격려하고 공유할 뿐이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일상과 교회와 사회와 우주에 걸쳐 얼마든지 주제를 확장해 간다. 하느님은 이 모든 것 안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평신도 중심의 이 운동은 사제와 수도자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사제와 수도자들은 흔히 교회단체에서 보듯 '지도사제'로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 카리스마에 따라서 일꾼운동을 도우며 함께 걷는다. 특히 신학자들은 일꾼운동의 목표와 활동방식, 영성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지원에 나선다. 토마스 머튼과 헨리 나웬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물론 여기에는 평신도 신학자들도 동행하고 있다. 영적 신학적 지원이 없다면 가톨릭운동은 그 본질적 성격을 상실할 수 있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조직운동이 아니라 네트워크 방식의 운동이다. 기본적으로 봉사자들은 전국에 산재한 '환대의 집'을 근거지로 모이고, 이들은 <가톨릭일꾼> 신문을 통해 영적 자산을 나누어 갖지만, 재정과 조직 면에서는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또한 그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환대의 집'은 일정 규모 이상으로 키우지 않고, 투신하려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새로운 '환대의 집'을 시작하도록 조언한다.

이들에게 가톨릭일꾼운동은 일종의 캠프, 즉 사랑을 배우는 학교다. 봉사자들은 자유롭게 합류하고 언제든지 캠프를 떠날 수 있다. 가톨릭일꾼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이 봉사와 헌신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배우고 그 자비를 자기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조직 확장은 일꾼운동의 관심사가 아니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신문을 발행하고, 환대의 집을 운영하고, 농경공동체를 이루면서 정부와 교회, 기업 등에서 어떤 재정적 도움도 받지 않는다. 순전히 선의에서 내어주는 개인들의 후원금만으로 운영하며,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하느님의 사업이라면 그분이 배려하실 것을 믿는다.

지금 한국교회는 진정성과 실효성을 지닌 세상 속의 빛과 소금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의 시기 가운데에 있다. 이때를 은총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모두 자기 신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특히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을 직접적으로 증거하며 살아가는 평신도운동의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다.

미국에서 80년 전에 발생한 가톨릭일꾼운동은 보다 철저하게 가톨릭이 되고자 했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교부들과 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운동이면서 동시에 교회를 넘어서 세상에 봉사하는 보편적인 도구였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그리도교 영성에 대한 깊은 관심과 '성인됨'에 대한 갈망 안에서 투신했고, 정부와 교회권력이 아닌 성령에 기대어 자유롭게 활동해왔다. 한국 가톨릭평신도운동이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여기에 더해 새 전망을 모색하는 평신도운동이 죄 많은 세상의 한 부분인 교회가 자신을 쇄신할 수 있도록 맑게 깨어있기를 바란다. 또한 사회구조의 변혁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당장의 필요에 응답하기를 바란다. 자선과 정의의 통합은 선함을 단련시키고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가톨릭평신도운동은 삶에 뿌리내린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오늘, 유성처럼 살아도>, 도로시 데이, 바오로 딸, 1995
<잣대는 사랑>, 짐 포리스트, 분도출판사, 1991
<도로시 데이와 함께 하는 기도>, 제임스 알레어, 로즈메리 브로턴, 성바오로 1998.
<하느님, 나, 우리, 그리고 가난>, 참사람되어, 2000. 8
<야곱, 상처를 대면하다- 불안한 시대에 하느님을 찾아서>, 케리 월터스, 참사람되어, 2003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참사람되어, 2004. 2.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로버트 엘스버그, 참사람되어, 2005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참사람되어 200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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