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의 향기-4] 어린이 치유센터 하늘소리의 미단 신부

사진 제공 : 미단
한 성공회 사제가 “아이들 아홉 명과 놀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어린이 치유센터 하늘소리’를 이끌고 있는 미단 신부의 이야기다.

하늘소리에 오는 어린이들은 주로 인근 지역의 기초생활수급자나 한 부모, 조손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초등학생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고정된 아이들 9명이 하늘소리를 다닌다. 학교가 방학 중인 지금은 오전 11시쯤에 하늘소리에 왔다가 점심을 먹고, 숙제를 하고 놀이도 하며 지내다 집으로 돌아간다. 교회든 치유센터든 규모가 너무 커지면 돌봄이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아이들을 받지 않는 것이 하늘소리의 원칙이다.

하늘소리의 정서 치유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미단 신부는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가정폭력을 당했던 아이들이 한때 뿜어내던 분노와 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묻지마 살인’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기세였다고 한다. 그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아이들과 센터 뒷산에 올라 마음껏 욕을 하게끔 하는 ‘욕 치료’를 생각해 내기도 했다.

하늘소리

마음은 한 송이의 꽃 하늘의 소리
그건 하늘소리
한 송이의 꽃처럼 마음은 아름답다
한 송이의 꽃 위에 우리 인간이 놀고 노네
아름다워

마음 속 한가운데 중심인 곳
마음의 꽃
나쁜 생각도 지우개처럼 지워준다네

마음은 평범한 사람한테도
존재하는 공평한 존재
ㅋㅋㅋ

하늘소리의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쓴 글이다. 작고 약한 사람들 하나하나의 마음이 곧 ‘하늘의 소리’고, 그것은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 작년 8월에 하늘소리에서 열린 여름 캠프 (사진 제공 : 미단)

마음의 상처 스스로 찾는 게 치유의 시작

미단 신부는 2005년 사제품을 받은 직후 하늘소리를 열었고, 그동안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 공감하는 사람들의 개인 후원만으로 센터를 운영해 왔다. 작년 12월 15일에 하늘소리는 7주년을 맞았고 ‘어른 치유센터 하늘소리 듣는 사람’으로 영역을 넓혔다. 매 주일 오전 11시에는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열 명 안팎의 신자들과 하늘소리 아이들이 센터에 모여 미사를 봉헌한다. 미단 신부는 미사에 대해 “일방적 강론이 아니라 교인들, 아이들이 더 많이 말하는 자리”며 “성경에 대해 질문하고 자기 삶으로 가져와 느낌을 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미단(윤세나) 신부
미단 신부의 본명은 ‘윤세나’지만 지금은 가족과 성공회 신자들 말고는 모두가 그를 ‘미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한자로, 세차게 흐른다는 뜻의 미(瀰) 자에 뭉치다는 뜻의 단(摶) 자를 써서 ‘나의 우주를 힘차게 운행한다’는 뜻이라 한다.

“어렸을 때 집안 어른들의 폭력적인 모습을 많이 봤어요. 겉으로 보기에 제가 매우 활동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제 안에는 웅크린 채 아직도 자기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어요. 그 때문에 하늘소리의 아이들과 더 공감을 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공포에 떨며 움츠리고 있는 아이가 힘차게 운행할 수 없잖아요? ‘미단’이라고 불릴 때마다 이름 안의 에너지가 저에게 오는 것 같아요. 제 영혼의 과제가 담겨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미단 신부는 하늘소리의 아이들을 도움 받아야 할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보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엄마만 함께 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가 없는 아이가 있어요. 할머니와 사는 아이도 있고요. 아이들은 서로의 조건을 다 알고 있죠. 그런 아이들이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이들의 삶에는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미단 신부는 이처럼 같은 문제를 계속해 겪는 것은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배신의 경험, 마음 깊은 곳의 상처를 스스로 탐색하고 조사하고, 자신을 보듬어 주는 게 치료의 시작이라고도 말했다.

“아이에게 관성이 있다면 추적하고, 또 추적해서 처음의 ‘사건’을 찾는 게 하늘소리에서 하는 일이에요. 예를 들어 아이가 세 살 때 엄마에게서 버림받았다고 해요. 그럼 ‘나는 버려진 사람이야. 엄마가 나를 버렸어’ 하는 게 이 아이의 테마가 됩니다. 이 아이가 하늘소리에 오게 되면 제가 ‘두 번째 엄마’가 되죠. 첫 엄마가 나를 버렸으니 어떻게 될까요? 둘째 엄마도 나를 버려야 하겠죠. 그러기 위해 아이는 버림받을 짓을 합니다. 아이는 치료자로부터 버림받을 만한 사고를 치면서, 그 사고의 수위를 높여 가지요. 도저히 버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까지. 이 과정을 견뎌야 아이와 저 사이에 ‘치료 동맹’이 이뤄집니다. 그것이 치료의 출발이에요.”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아이가 ‘달라진다’, ‘치유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미단 신부는 “더 이상 연극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학대당했던 아이들은 예고 없이 맞았기 때문에 불안해해요. 그래서 맞을 짓을 해서 빨리 맞아버리려고 하죠. 사고치는 이유는 빨리 맞고 편하게 놀려는 것이기도 해요. 그런데 아이들이 아무리 말썽의 수위를 높여도 제가 때리지 않으니까 그게 힘든 것이겠죠. 하루에도 백번은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아. 안 때려. 욕하지 않을 거야’ 하고 말해요. ‘나는 맞아야 할 아이야’라는 생각을 심리학에서는 ‘왜곡된 명령어’라고 하는데, 그 명령어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맞을 짓을 하지 않겠죠.”

▲ 어린이 치유센터 하늘소리의 모습. 담 아래로 놀이에 한창인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제공 : 미단)

“마음의 눈도 좀 뜨세요!”

미단 신부가 말하는 치유의 목적은 감정과 기분을 누르고 참는 ‘억압’을 푸는 것이다. “감옥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게 우리 모두의 목표잖아요? 모든 게 자기가 만든 감옥이죠.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되거든요. 먹고 싶은 것 먹고,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그리우면 연락하고, 싫으면 안 만나고. 하늘소리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말해요. 당당하죠. 치유가 조금 된 아이들이에요.”

미단 신부가 “죽을 때까지 가져갈 고민”으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 눈’이다. 세 가지 눈이란 ‘육체의 눈, 마음의 눈, 영혼의 눈’을 뜻한다. 그는 기자가 센터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불안해 보이는 모습을 봤고, 긴 한숨에서는 쉬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단지 신체기관인 눈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볼 때 보이는 모습이다. 미단 신부는 “모든 사물과 존재를 이 세 가지 눈으로 보고 접촉하고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긴다”면서 “제가 치유센터 하늘소리, 하늘소리 듣는 사람을 맡고 있는 마음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미단 신부가 들려준 이야기는 “내 안에 모든 것이 풍부하다고 인정하면 많은 억압이 풀린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누르려는 노력이 괴로움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는 사람 안에, 제 안에 모든 것이 풍부하다고 자주 읊조려요. 내 안에는 불안이 풍부하다. 두려움도 풍부하네. 시기심도 풍부하고 질투도 장난이 아니야. 그러나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냐. 내 안에는 평화도, 사랑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나를 지키려는 책임감도 풍부하다. 이렇게 모든 것이 풍부하다고 인정해요. 사람이 병드는 것은 자기 안의 미움, 시기, 불안, 두려움, 사랑, 친절을 인정하지 않고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 어린이 치유센터 하늘소리 / 어른 치유센터 하늘소리 듣는 사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62-4 (☎ 031-826-7942)

후원 계좌 : 농협 201058-55-001870 장흥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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