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23세의 고향 마을 ‘소토 일 몬테’

2012년 10월 11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이었고,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이러한 뜻 깊은 사건들을 기념하여 이날부터 2013년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를 ‘신앙의 해’로 선포하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하여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이시다. 로마의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교회론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 분의 교향인 ‘소토 일 몬테’Sotto il Monte와, 신학생 시절을 보내고 서품 후에는 교구장 비서로도 일했던 베르가모Bergamo를 방문해 보는 것이 마음 속에 있었던 큰 바램이었다.

▲ 폰티다수도원 ⓒ박현동

성탄 방학을 어디에서 보낼지 베네딕도회 주소록을 찾다가, 교황의 고향 마을 근처에도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체하지 않고 그곳 아빠스께 메일을 보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겼다. 그곳 아빠스께서 내가 머물던 로마 성 안셀모 수도원의 원장 신부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진짜 그곳에 살고 있는지, 한국에서 온 베네딕도회원이 맞는지, 왜 수도원을 방문하려고 하는지 확인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 후에 성탄방학 동안 지내도 된다는 답장 메일이 도착했다. 그 말을 원장신부로부터 전해 듣고는 사뭇 불안감이 몰려왔다. 여러 수도원들을 방문해 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방학이 되어 기차를 타고 로마에서 밀라노까지 가서, 다시 베르가모로 가는 기차를 타고, 그 후에 베르가모에서 다시 폰티다Pontida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는데, 그 당황스러웠던 첫인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도원에 도착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불안감은 다 풀리고, 진정으로 형제애로 맞아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폰티다 수도원은 베네딕도회의 20개 연합회 중의 하나인 카시아노 연합회에 속해 있다. 이 연합회는 베네딕도 성인이 생의 대부분을 보내셨던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중심으로 하는 베네딕도회의 종갓집과 같은 연합회이다. 역사 깊은 수도원들이 여럿 여기에 속해있다. 하지만 성소자 부족으로 수도자들은 고령화가 되어 있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올 9월 총회에서 수비아코 연합회와 합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북쪽의 산골 마을에 자리 잡은 이곳에 로마에서 공부하는 한국의 베네딕도 회원이 방문한다는 것이 이곳 형제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느껴졌고, 그래서 신원조회(!)에 나섰던 것이었다.

▲ 수도원 식당 ⓒ박현동

폰티다에 있는 성 야고보 수도원에서는 11세기 후반에 수도생활이 시작되었고, 11세기와 16세기 사이에는 개혁을 표방한 클뤼니 수도원들의 연합체에 속해 있었다. 수도원 외벽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증명하는 마크가 하나 붙어 있었다. 1789년 롬바르디아에 있는 모든 수도원들을 폐쇄하는 조치로 인하여 수도자들이 흩어지고, 귀중한 유산들은 밀라노로 운반되어 매각되는 일을 겪었고, 그 후로 본당으로만 사용되다가, 1910년부터 베네딕도 회원들이 다시 수도원을 재건하고 수도생활을 하게 되었다. 12명의 수도자들 중에 절반 정도는 젊은 형제들이었는데, 연로한 형제들의 몫까지 고군분투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곳 수도자들은 하루 일곱 번 성당에 모여 공동 기도를 바친다. 기도의 분량과 횟수가 많다보니, 돌아서면 기도, 돌아서면 기도, 이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든 또 다른 생각은 이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도 수도원이 망할 수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분도지에 소개된 적이 있는 시칠리아의 산 마르티노 수도원처럼, 쇠퇴기에 접어든 수도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이들에게 맡겨졌던 소명이 다하고, 새로운 출발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펼쳐질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 그곳에 머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 본당과 피정의집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휴식처가 되고 있고, 지역 사람들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 수도원 구유 ⓒ박현동

▲ 베르가모 시대 ⓒ박현동

성탄 시기에 방문을 했기 때문에 멋지게 꾸며진 구유도 볼 수 있었다. 구유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아주 특색 있는 것이었다. 수도원에서 뒷산을 넘어가면 복자 요한 23세 교황께서 태어나신 생가 마을이 나온다. 신자들은 그 마을 본당에서 출발하여, 묵주기도를 하면서 이 산을 넘었고, 산 정상에는 오래된 수도원이 하나 더 있었다. 요한 23세께서도 휴가 때 고향에 오시면 그 산 위의 성당에서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즐기셨다고 한다. 그곳에서 다시 묵주기도와 성가를 하며 산을 내려오면 폰티다 수도원에 도착하게 된다. 이러한 순례길을 축소하여 구유를 만들어 놓았다. 교황 요한 23세의 발자취를 따라 만든 구유였다.

성탄 대축일이 지나고 고대하던 베르가모를 방문했다. 도시는 산 위 마을과 산 아래 마을로 나누어져 있고, 경사를 올라가는 특별한 케이블카를 타야했다. 산위 마을은 이탈리아의 여느 도시들처럼 크지 않았다. 그곳에 주교좌 성당과 신학교, 다른 성당과 상점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주교좌 성당 제대 옆에 있는 작은 방에는 교황의 전신 조각상과 교황 재직시 사용하던 삼층관, 십자가, 반지, 성작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거하시고 안장되었던 관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 와서 착하신 교황께 기도하며 초에 불을 밝혔다. 돌아오는 길에 제과점에 들러 베르가모의 특별한 성탄절 빵을 사서 수도원 형제들에게 선물하였다. 크림이 많이 든 빵과 과자를 저녁휴게 시간에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산위, 산 아래라는 뜻의 베르가모 사투리도 알려주면서 요한 23세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도 덤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 다음 날에는 본당 청년 두 명과 함께 교황 요한 23세께서 태어나신 고향 마을을 방문하였다. 눈이 와서 미끄러운 길이었지만 자신들은 산악 지역의 눈길에 익숙하다며 아무런 어려움 없이 운전을 하였다. 가는 내내 두 청년이 하는 베르가모 사투리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도 그렇고 두 사람에게도 아주 유쾌한 시간이었다. 중간에 성모성지에 들러 잠시 기도하고, ‘소토 일 몬테’Sotto il Monte로 향했다. 오랫동안 고대하던 곳이라 마음도 두근거렸다.

▲ 요한 23세가 태어난 방 ⓒ박현동
▲ 쥬세페 론깔리 거리 ⓒ박현동

이 작은 마을에서 20세기 가장 큰 사건들 중의 하나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이 태어나셨다. 광장이나 거리 이름도 교황과 관련된 명칭을 많이 붙여 놓았다. 교황의 세속명을 딴 ‘쥬세페 론깔리 거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광장’, 교황의 회칙에서 유래한 ‘지상의 평화 거리’ 등... 제일 먼저 평화의 경당에 들러 기도하고, 교황이 세례를 받은 성당을 방문하였다. 아버지의 세례명이 요한이었고, 교황이 세례받은 본당도 성 요한 성당이었다.

그 후 교황이 태어난 생가를 방문하였다. 가난한 시골의 집에 부모와 13명의 형제자매가 함께 살았을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생가는 전시실로 꾸며져 있어, 교황의 어릴 적 모습부터 생의 중요한 순간순간을 담은 사진들이 교회론을 공부하는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불가리아에서의 교황 대사 시절, 터키와 그리스에서의 교황대사 시절, 베네치아의 대주교 시절... 무엇보다도 교황이 태어난 방, 소박한 벽난로, 나무로 된 작은 방들이 착하신 교황의 성품과도 같이 푸근하게 다가왔다. 두 신자 청년들은 신이 났는지 산 위에 있는 옛 수도원 자리의 성당까지 안내해 주었다. 이곳 신자들이 폰티다 수도원까지 순례하며 걸었던 그 길의 중간에 있는 성당은 교황도 휴가 때면 와서 마치 예수님의 산상설교처럼 신자들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겨울철 산촌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주위가 다 어두워지고 나서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처음 폰티다 수도원에 오려고 했을 때 이런저런 일로 걱정을 많이 하면서 왔는데, 소박한 이탈리아 북부지역 출신의 형제들과 함께 있으면서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다. 시간표에 맞춰 정신없이 기도를 하다 보니 더욱 더 그랬던 것 같다. 로마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눈이 와서 철로도 온통 하얗게 덮여 있었다. 교황 요한 23세의 향기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곳! ‘신앙의 해’를 보내며, 성탄 시기가 다가오니까 산 아래의 이 수도원이 다시금 떠오른다. 수도승적인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활력이 쏟아나기를 기도한다.
 

*이 기사는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서 발간하는 <분도>지 2012년 겨울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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