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슬로비디오 화면처럼 진료실에 들어섰다. 그동안 많은 남자를 봐 왔지만, 그처럼 머리 뒤에서 후광을 뿜어내는 피조물은 성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빼고는 그가 처음이었다. 단군 이래 최고의 미남이라는 장동건보다 더.

하얀 피부, 훌쩍 큰 키, 금테 안경 뒤에서 반짝거리는 눈동자, 세련된 기품이 철철 넘치는 서울에서 온 명문대 의대 출신의 의사. 닥터 윤의 첫인상이었다. 그가 내 고향 경상도 산골의 보건소에 공중 보건의로 발령을 받아 출근하는 첫날, 외모에서 스펙까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이 젊은 총각 의사의 신상은 즉각 입소문을 타고 읍내를 점령했다. 점잖고 깐깐한 행정 계장부터 민원실의 새내기 직원 김 양까지 감기를 핑계로 미남 의사선생님을 구경(?)하려는 속셈으로 보건소 문지방을 닳도록 드나들기 시작했으니, 그의 출현은 작은 동네를 빅뱅 상태로 만들었다.

 ⓒ박홍기
수십 년 동안 오지 마을 무의촌이었던 이곳에 의사 선생님이 온 사건은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의사는 마을의 어르신들에게 구세주나 다름없다. 몸살이 나도 농사일로 다리가 부러져도 꼼짝없이 오지마을에 갇혀 저절로 낫기만을 기다리던 것이 어르신들의 운명이었다. 어르신들은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보건소는 매일 어르신들이 가져온 고구마, 감자, 밤, 배, 옥수수, 갓 잡은 씨암탉 같은 뇌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손자 같은 의사 선생님이 마냥 신기하고 기특했는지 진료실은 아예 사랑방으로 둔갑했다. 온 마을이 “당신이 있어서 행복합니다”였다.

그러나 이 행복도 잠시, 인근 도시의 도지사는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닥터 윤을 보쌈해 갔다. 이 마을에 발령 받은 지 6개월 만에 그는 품절남이 되어 도지사의 사위로 낙점되었다. 설상가상 청천벽력같은 일은 장인이 도지사의 빽을 써서 사위인 닥터 윤의 근무지를 서울로 옮겨 버린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닥터 윤을 빼앗긴 힘없는 어르신들과 동네 사람들은 다시 의사 없는 텅 빈 진료실에서 가슴앓이를 했다. 도지사의 사위가 되어 출세가도를 달린다는 그의 소문은 꾸준히 우리 마을까지 들어왔다. 장인 덕으로 강남의 큰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미국유학을 거쳐 장인이 지어준 큰 병원을 운영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후 네트워크 병원을 운영하면서 성공한 의사로, 사업가로 변신한 닥터 윤의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곤 했다.

“저...약품 목록 좀 볼 수 있을까요?” 닥터 윤을 다시 만난 것은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 진료소 ‘라파엘 클리닉’에서였다. 강산이 두 번 변했지만 나는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
“혹시 닥터 윤 아니세요?”
“...”
“저 기억 안 나세요? 저, 시골 보건소에..”
“아!” 그는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한참 만에 나를 알아봤다. 그가 이런 곳에 나타나다니? 이상했다. 진료가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전히 조각 같은 미남이지만 핼쓱한 얼굴이 밝지만은 않았다.

추락은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당한 파산이었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그의 관심은 어느새 돈을 버는 것이 되었다. 재정위기에 빠진 수많은 병원을 인수 합병하면서 병원의 덩치를 불렸고 부동산 투기까지. 자연히 권력과 명예가 따라왔다. 정계 진출의 꿈을 꿀 즈음 그의 발목을 잡은 사건이 터졌다. 의료 사고였다. 환자가 죽었는데 법조계의 고위직 외아들이었다. 상황은 그에게 불리했다. 병원 내의 감춰진 불법 편법 위법까지 까발려졌다. 수십억으로 합의를 봤지만, 실패라고는 해본 적 없는 그의 자존심과 명예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수년 동안의 법적공방, 처음 겪는 압박감과 위기 앞에서 마음이 먼저 무너졌다. 그제야 돈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의사로서의 양심이 고개를 들었다. 설상가상 주인 잃은 병원은 아이엠에프를 맞아 재정위기에 빠졌고 은행 빚이라는 뇌관이 터졌다. 부도를 막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젊은 시절 ‘공중’과 ‘보건’이라는 부름을 받고 오지마을의 무의촌에 공중 보건의로 왔던 닥터 윤. 채 6개월도 어르신들 곁에 있어주지 못하고 훌쩍 떠난 청년 의사, 그가 십 리도 못 가 발병이 나서 다시 돌아왔다. 이주 노동자들을 진료하면서 비로소 동화 속 왕자님에서 걸어 나와 ‘인술’은 ‘봉사’와 ‘섬김’이라는 진실한 가르침을 터득하고 있다. 우리 고향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청년의사 닥터 윤이 살아있을 것이다. 워낙 미남이었으니까. 의사로 거듭나는 일을 이제 막 시작한 그에게 그를 좋아했던 고향의 어르신들을 대신하여 응원의 편지를 쓴다.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맬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빠져나가 세계의 새로운 가치라든가 그때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포착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건전한 마음으로 보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번 태어나기’보다는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사시는 ‘거듭나기 인생’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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