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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만의 축일이 아니잖아요2013년 신년 기획 <교회,다시 새로워지기 위해서> ②사제 영명축일 간소화

“○월 ○일은 ○○○ 신부님의 영명축일입니다.”

사제의 영명축일을 앞둔 성당 주보 공지사항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뒤에 이런 말과 지침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교우들께서는 신부님을 위한 영적 기도를 봉헌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지향 : 미사 영성체 3번, 주모경 20번, 십자가의 길 1번, 묵주기도 50단, 사제를 위한 기도 20번, 화살기도 20번, 사랑 희생 1번”

   
▲ 영명축일이 사제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지나치게 화려한 축하식이나 고액의 선물은 주는 신자들도, 받는 사제들도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한수진 기자

그럼 영명축일을 축하하는 날 성당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동영상 커뮤니티 유튜브에서 발견한 수원교구 어느 본당 사제의 영명축일 축하식 동영상을 살펴봤다. 신부가 신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제대 앞으로 입장하고, 제대와 신자들을 향해 차례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이어 신자 한 사람이 축하 난(蘭)을 전달하고, 사목회장이 본당 신자들의 ‘영적 예물’(기도 선물)을 증정한다. “미사 영성체 2,287회, 주모경 4,690회, 묵주기도 13,320단, 사제를 위한 기도 2,667회, 희생 · 봉사 2,120회.” 다음으로 사목회 임원이 대개는 현금인 ‘물적 예물’을 건네고, 성가대의 축가가 이어지고, 축일을 맞은 사제의 감사 인사로 축하식이 끝난다. 다른 본당의 사제 영명축일은 어떤 모습일까?

영명축일, 영적 예물에 물적 예물이 따르고

신자들이 말하는 영명축일 축하식의 모습은 대개 비슷했다. 서울대교구 신자인 김선기 씨는 “특전미사부터 시작해 그 주일에 봉헌하는 모든 미사에서 축하식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한 사제를 위한 축하식이 최소 2번 이상 열린다는 얘기다. 김 씨는 “메인 축하식은 교중미사 때로 대개 공지 시간에 축하식을 하고, 이후 강당이나 식당에서 축하연이 이어졌다”고 경험을 말했다. 축하연 때는 행사장에 플래카드가 걸리고 케이크와 와인, 뷔페 음식이 나오고, 대개 본당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신자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본당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는 ㅇ 씨가 겪은 청년사목 사제의 영명축일 축하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년단체별로 영적 · 물적 선물을 전달하고 축가를 불렀고, 청년연합회에서 꽃다발이나 케이크를 선사했다. 미사를 마친 뒤에는 청년 전체 회식이 이어졌다.

광주대교구에서 본당 주임을 맡고 있는 ㅈ 신부도 “대개 기본적으로 꽃다발을 주고, 신자들이 모은 ‘영적 예물’을 선물하는 게 통상적 형태”라고 말했다. ‘물적 예물’에 대해서는 “우리 본당은 단체에서 조금씩 물적 예물을 걷어서 주는데, 시골 본당이라 액수가 크지는 않다”면서 “도시의 큰 본당은 지나친 물적 예물을 선물하는 사례 때문에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제 영명축일 행사에 대한 신자들의 느낌은 어떨까? ㅇ 씨는 “사목자의 영명축일은 일반인의 생일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함께 축하하는 것이 맞다”면서 “가톨릭 신자의 영명축일이 중요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사목자의 영명축일 행사를 통해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선기 씨는 “영명축일이란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감사할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너무 부담이 되지 않는 소박한 자리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차 축하연 같은 경우 본당 교우 중 몇 퍼센트나 참여하겠나” 하고 물으며 “명함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많은 신자들이 참여해 함께 축하해주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축일 축하가 부담스러운 사제들

영명축일 축하행사가 신자들에게 지나친 짐이 된다는 우려 때문에 축하식을 무조건 사양하거나 일부러 본당을 비우는 사제도 있다.

한 본당에서 2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한 ㅊ 씨는 그동안 만난 예닐곱 명의 주임신부 중 유일하게 영명축일 축하를 거절한 사제를 소개했다. “그 신부님이 부임한 첫 해에 사목회에서 의례적으로 영명축일 축하식을 준비했는데, 꽃다발과 축가를 뿌리치고 성당 밖으로 나가셔서 준비한 분들과 교우들이 무안하고 황당해했다”는 것이다. ㅊ 씨는 “신부님은 으레 축일이나 자신을 위한 행사나 식사 모임을 사절하셨기에, 본당 임원들이 편했다는 후문이 있다”고 전했다.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현재 중견사제연수)는 “주임 신부로 있던 때, 축일이 되면 출장이나 휴가를 갔다”며 “요즘은 다른 신부들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굳이 출장이나 휴가를 가면서까지 성당을 떠나는 것은 자신의 축일 축하가 ‘주일 행사’가 되는 게 미안해서다. 나 신부는 “신자들도 영명축일이 있는데 저만 특별한 축하를 받는 게 부담스럽다. 신자들에게 선물을 위한 금전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면서 “물론 도망간다고 해서 선물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영명축일 축하식을 하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하는 사제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나 신부는 “서운하다는 분들도 있었고 ‘신부님 뜻을 알겠다’며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광주대교구 ㅈ 신부는 “우리 교구에서도 본당 사제의 영명축일 축하는 관행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ㅈ 신부는 “영명축일은 신부 개인만의 축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항상 쑥스러운 느낌이 들었다”면서 “신부 혼자 영명축일을 특별한 행사로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본당 신자 중에는 사제와 세례명이 같은 신자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ㄱ 신부는 “신자들의 자발적인 축하라기보다는 먼저 신부들이 원하고, 솔직히 말해 교우들의 물적 예물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관행은 복음 정신과 맞지 않고 속물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요즘은 사회적으로도 주고받지 않는 투명하고 건전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교회가 그런 것을 조장하느냐”면서 “복음을 떠나 일반 사회 기준을 적용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교회만의 관행은 아닐까

외국에서는 어떻게 사제의 영명축일을 지낼까? 이름부터 ‘보편적’이라는 뜻을 가진 가톨릭교회는 사제들의 영명축일 축하식도 ‘보편적’으로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본당 공식 행사처럼 성대하게 치르는 사제 영명축일 축하식은 ‘한국적 관행’이라는 것이다.

미국 출신인 하유설 신부(메리놀 외방 선교회)는 “미국에서는 본당 신부도, 신자들도 거의 축일을 기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 신부는 자신의 본명에 들어 있는 요셉(Joseph)을 세례명으로 생각하지만, 미국 가톨릭교회에서는 세례명에 대한 의식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겪은 영명축일을 축하하는 문화에 대해 그는 “한편으로는 신자들로부터 생일처럼 축하받는 것이 너무 좋다”면서도 “신부라고 너무 큰 축하를 받는 것 같아 부담을 느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나보타스시 빈민촌에서 지내는 김홍락 신부는 “축하해주는 것은 좋지만, 우리나라는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홍콩, 마카오에서 지내면서도 영명축일을 축하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외국에서는 거의 영명축일을 챙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다른 나라의 본당 사제들이 사제수품일을 기념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생일을 기념한다”면서 “나도 생일에 신자들을 초대해 식사를 나눈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선물,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불편해

영명축일은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을 일컫는 말이다. 사제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지나치게 화려한 축하식이나 고액의 선물은 주는 신자들도, 받는 사제들도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ㅊ 씨는 본당 사목회 등 직책을 맡은 신자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져야 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는 “미욱한 평신도들이 (성대한 영명축일 행사가) 사제에게 드리는 최고의 예우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며, 그것을 마다하기에는 사제들의 의지가 확고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대안을 제시하는 사제도 있다. 광주대교구 ㅈ 신부는 “간소한 축일 행사를 한다면 사제를 위해서는 사제수품일을 기억해주는 분위기로 바꾸는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부들 중에도 그런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오랜 관행 때문에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제만 영명축일을 갖고 있는 게 아닌 이상, 모든 본당 신자들의 영명축일을 기념하는 문화로 발전시켜 가자는 의견도 있다. 김선기 씨는 본당 주보를 통해 신자들의 영명축일을 공지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김 씨는 “신자들 축일 공지를 한다고 해서 주보 쪽수가 많이 늘어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이번 주에 기억할 교우들을 소개하고, 그분들을 위한 지향으로 미사도 봉헌하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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