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사람은 태어날 때 백지상태였다가
그를 둘러싼 환경이 서서히 그를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부모와 학교와 사회가 그의 생각에 색을 입힌다고나 할까?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대상에 대한 감수작용, 즉 개인적인 호오(好惡)가 또 색을 덧입히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색안경 하나씩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색으로 세상을 보며 각자 자기 색이 맞다고 우기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코미디 같을 일들이 벌어진다.
인류사의 수많은 갈등과 전쟁은 인종,문화,종교간의 색안경 때문은 아니었을까?

서울시 노원구청에서 인문학강좌로 역사학자 한홍구 씨의 강연을 열기로 했는데
보수 단체들의 반대가 거세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강연도 못하나?
색안경이 무서운 것이, 어느 때엔 무고한 사람이 정황상의 심증만으로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나중에 진범이 잡히면서 풀려나는 경우도 있다.

'저 사람은 불손하고 건방진 사람이야' 이런 부정적 낙인이 찍히면
그 이미지를 만회하기란 무척 어렵다.
자란고비라고 인식된 사람이 말년에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서
한방에 역전시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각자의 색안경을 쓴 사람들과 공존해야 하는 것이 세상이다.
얼굴에 쓰는 색안경이라면야
서로의 입장을 알아보기 위해 바꿔써보면 그만이겠지만
마음의 색안경으로는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어떤 색안경을 쓰고 있을까?
영 밉상이던 사람이 어느 때엔 예뻐 보이는 것을 보면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총천연색 안경쯤일 것 같다.
별로 믿을 게 못 된다고 할까?
언제쯤 투명한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까?
나이가 들수록 진한 색이 점점 옅게 보이는 것을 보면 좀 희망을 지녀도 될까?
그 때엔 '저건 무슨 색이야'라며 눈에 핏대를 세우고 종주먹을 들이대며 우겼던 과거가
얼마나 부끄러울까?

"내가 너 잘될 줄 진작에 알아봤어"
올해는 이런 긍정과 신뢰의 색안경으로 사람들을 보고 싶다.
 

윤병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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