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추모사]
1월 16일 '한진노동자와 함께 하는 정의와 희망을 여는 미사'에서

 

 ⓒ한상봉 기자

강서야.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신도분들이 오셨다.
네가 그렇게 기다리던 분들이 이렇게 많이 오셨다. 

재작년 여름, 10년 20년 일한 공장에서 우리가 쫓겨나고 이 공장에서 단 하루도 땀흘려 일해 본 적 없는 용역깡패들이 크레인을 포위하고 공장을 휘젓고 다닐 때, 쫓겨난 조합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연행당하고도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붙잡고 울 사람 하나 없던 그 막막한 외로움 속에 저녁마다 오셔서 우리 손을 잡아주시던 그분들이 오셨다.

언론도, 경찰도, 법도, 노동부마저도 아무도 우리 편이 없을 때 서럽고 힘겨운 우리 곁을 지키며 ‘함게 가자 우리 이 길을’ 세상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시던 그분들이 오셨다.
가장 폭력적인 자들 앞에서 간절하게 평화를 빌던 그분들이 오셨다.

매주 수요미사가 있는 날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던 강서야.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려 왔던 강서야.
다시 수요일이 왔고, 꽁꽁 얼어있는 네 몸이 따뜻하게 녹을 거라 믿는다.

간절하게 평화를 염원했던 강서야.
온종일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가 아이들과 된장찌개 끓는 밥상에 둘러앉는 것, 우리에겐 그것이 평화였다.
조남호 한사람의 탐욕에 의해 그 평화는 산산이 부서졌지만, 그 평화를 되찾기 위한 기도는 더 간절해졌다.

용역깡패들에게 사지가 번쩍 들려 바닥에 질질 끌려나가며 공장에서 쫓겨난 이후 한 발짝도 디딜 수 없던 공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평화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공장으로 들어가겠다는 우리의 앞을 가로막으며 폭력을 휘두르던 용역깡패들.
폭력을 돈으로 사들인 한진 자본.
그리고 그 폭력의 하수인처럼 우릴 겁박하던 경찰.
그들 앞에 평화는 서럽고 무력했다.

오지 않는 평화를 맨 앞에 서서 마중나간 강서야.
네가 있어 우린 포기하지 않을 거고,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매일 이어지는 시내 선전전 때마다 수고한다고 힘내라고 외쳐주시는 시민들.
그리고 공장 앞 선전전 때마다 인사를 건네주시는 조합원들.
또래 동료들을 셋이나 눈물로 보내고. 이제 아들뻘 되는 동생마저 앞세운 그분들도 너의 뜻을 잘 알 거라 믿는다.

너의 가정과 수많은 조합원들의 삶을 짓밟아 놓고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집 앞에서 일인시위도 못하게 하는 조남호. 너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조남호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노조 간부들이 접근할 때마다 벌금을 물게 해달라고 가처분신청을 냈단다.
너를 고소고발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조남호의 공범 복수노조 간부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누구보다 따뜻했던 너를 27일째 냉동실에 눕혀놓고 가는 이 길이 험하고 시리지만 너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신부님, 수녀님, 신도 여러분.
재작년 그 모진 시간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 차가운 거리에 앉으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잘 모릅니다.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최강서가 예수가 아닐까 생각할 따름입니다.
자신을 던져 모두를 살리고자 했던 강서가 저에겐 예수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프도록 눈에 밟혔을 가족들, 가족 같았던 동료의 죽음 앞에 죄책감으로 무너지는 우리 조합원들, 그리고 우리 곁에서 아직 떠나지 못하는 강서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 기도가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루어 내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숙 드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