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백동흠]

”벌써 와서 기다렸군요. 고마워요. 그런데 내가 데리고 있는 일곱 살짜리 Good Boy도 함께 탈 수 있나요?” “예, 그러믄요” 택시를 불러서 달려가자 칠십 대 할머니가 나와서 반갑게 맞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그리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니 웬 송아지만 한 셰퍼드를 데리고 나오는 게 아닌가?.

아이고 맙소사. 이럴 수가. 저 개가 일곱 살짜리 Good Boy야? 내가 혹시 잘 못 들었나? 분명히 할머니가 데리고 있는 Good Boy라고 했는데…

 ⓒ고진석
개와 함께 타게 되어 기뻐하는 할머니 표정을 보고는 거절할 수도 없고 참 난처했다. 정말 일곱 살짜리 손자 대하듯 목을 끌어안고 개 등을 톡톡 두드리며 차 안으로 인도하면서 애정 어린 얘기를 하신다. “자, 이제 택시를 타는 거야. 착하지 우리 Good Boy!” 타기 좋게 앞좌석을 뒤로 쭉 밀어 앞좌석 앞바닥에 개를 태운 뒤 창문을 열어놓으니 시원한 바람에 코를 벌름거린다.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며 바깥 구경에 신이 난 모양이다. 그렇게도 좋단다. 아무리 봐도 개 팔자가 상팔자다.

아닌 게 아니라 개들을 이렇게 친자식처럼,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뉴질랜드 사람들을 자주 대하다 보니 고국에서 생각했던 개에 대한 관념(?)이 서서히 바뀌게 되고 친근감 있게 느껴진다. 혼자 산 지 오래됐다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안 계신 터에 이 Good Boy하고 살다 보니 이젠 친자식 같다며 개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할머니와 개를 내려 준 뒤 운전을 하는 중에 Good Boy라는 말이 계속 떠올려진다. Good Boy라? 상대방에게 더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남으면 Good Boy도 되고 생활의 반려자로도 남는 건가. 아들이 중학생일 때 학부모 대화 시간에 찾아갔다가 학년주임으로부터도 같은 말을 들은 게 생각난다. Good Boy라고! 아들애가 운동도 잘하고, 교우 관계도 좋은 가운데 학업에도 열중해서 Good Boy란다. 그때부터 Good Boy라는 말은 내게 참 낯이 익고 친숙한 단어로 기억된 터였다. 그런데 오늘 생각도 못해본 Good Boy를 태우게 된 거였다.

Good Boy에 대한 인연은 그날 오후로 또 이어졌다. 퇴근 무렵, 공항 가는 손님을 태웠다. 육십쯤 되어 보이는 분으로 남섬에서 오백여 마리의 소를 키운다는 농장 주인이었다. 그냥 한눈에 봐도 뉴질랜드 토박이, 키위 중의 키위였다. 25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데, 이야기 도중 얼굴 표정이 어찌나 순수하고 맑아 보이는지 평화 그 자체였고 자연 그대로였다.

조금도 때 묻지 않은 넉넉한 모습과 여유로운 마음에 그만 넋을 잃고 손님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살면 저런 얼굴을 지닐 수 있을까. 나이 들어가면서 그와 같은 얼굴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자 은총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잘 이야기하고 갔는데 그분이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 그만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목적지에 내리면서 천진스런 얼굴로 활짝 웃으며 부드럽게 던지고 간 한마디의 말 때문이다. “Good Boy! Good on you!”

아침에 할머니가 애완견을 두고 불렀던 Good Boy라는 소리를 저녁에는 택시 손님에게서 직접 듣고 보니 머리가 띵하다. Good Boy라면 내가 멍멍이라도 되었다는 건가, 아니면 착한 소년이 되었다는 말인가?

어감이나 느낌으로 봐서는 친근감 있는 말로 들렸는데 그래도 그렇지, 어린애도 아닌 오대 중반인 내가 Good Boy라구?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 떠올려지는 Good Boy라는 말에 그저 빙긋이 미소가 흘러나온다.

자신이 키우는 사랑스런 개를 보고도 Good Boy, 학교에서 다방면에 모범을 보여도 Good Boy, 택시 운전하는 사람한테도 편안하게 운전 잘한다고 Good Boy...아무렴. 좋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소년이 되어버렸네.

Good Boy. 거기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자연스러움? 자기 처소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 바보 같은 순진스러움? 아무튼 상대에게 친근감 주고,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모습으로 손님들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면 Good Boy가 되는 것도 그리 신경 쓸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이웃집 크리스가 아장아장 걸음마 하는 손주를 향해 손뼉을 치며 부른다. “Good Boy !"
 

백동흠
(프란치스코)
뉴질랜드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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