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편읽기]

어리석은 자들,
제 속으로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말들 하면서,

 ⓒ임의진
썩은 일 추한 일에 모두 빠져서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야훼, 하늘에서 세상 굽어보시며
혹시나 슬기로운 사람 있는지,
하느님 찾는 자 혹시라도 있는지
이리저리 두루 살피시지만
모두들 딴 길 찾아 벗어나서 한결같이 썩은 일에
마음 모두어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언제나 깨달으랴. 저 악한들, 떡 먹듯 나의 백성 집어삼키고 야훼는 부르지도 않는구나.
하느님께서 옳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 계시니 저자들은 겁에 질려 소스라치리라.
비천한 자들 생각을 너희가 비웃지만 야훼께서 그들을 감싸주신다.
바라옵나니,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오기를.
잡혀간 당신 백성을 야훼께서 데려오실 때 야곱은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은 기뻐하리라.

(시편 14장)

오래 떠도는 해외여행 중에 현지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들 하는 말이 있다. “There's no place like home”. 정말 집만 한 좋은 곳은 어디에도 없어라. 암만 둘러보아도 고향 집이 그리운 여행자들뿐. 다홍치마 색동저고리 내 고향 남쪽하늘, 모두가 광장에서 춤추는 그곳 날마다 그리웠고 애달팠다.

강렬한 눈빛과 오므린 입술을 가진 지혜자는 오늘 이야기한다. 하느님 찾는 자 어디 있는가. 우리의 애미 애비, 우리의 고향을 찾는 자 어디 있는가.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요한 4, 11-26) 예수는 바로 자기가 현현하신 하느님이며 만인의 고향이라고 힘차게 외친다. 
 
그리스어로 ‘에피타미아’(epithymia)는 여인과 하나님을 갈망할 때 쓰는 단어다. 그러한 욕망만도 못한 손톱만 한 갈구로는 주님을 정녕 대면할 수 없으리라. 사랑이 더욱 고독하게 만드는 것처럼, 하느님 앞에 서면 우리는 외롭다. 지팡이 앞세우고 마늘밭으로 걸어가는 저 노파처럼 인생은 쓸쓸하다. 그러나 그대, 이 생각을 놓치지 마라. 지금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바지락 소라 꼬막 백합 고둥도 귀를 활짝 열어 격렬한 파도소리를 듣지 않는가. 벼락 맞으러 옷 훌러덩 벗고 달려나가는 용기를, 그대 가져보아라. 차의 바퀴는 여행자의 뼛조각처럼 바닥에 새겨져 있구나. 그 뼈들이 일어나 앞길을 열어줄 것이다. 님과 뜨겁게 상봉하는 날이 있으리다. 고향으로 달려가자꾸나. 애미 애비에게 가자꾸나, 연인아! 말뚝에 묶인 개처럼 살지 말기를. 주저앉고 자포자기하지 않기를. 시인의 기도는 오로지 이 해방의 희망이 전부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마라. 행위 뒤에는 번민이 있다.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라. 가는 곳마다 후회가 없다.” (법구경)

참 자유가 그대에게 물들어 온몸에서 꽃물이 들리니 삭풍에 꺾이지 않고 춤추게 될 것이다. 참된 일은 주저하지 말고 행하는 것, 정의의 편에 살포시 서는 것, 불의한 자리에 서지 않고, 배신의 권유에도 의연하게 맞서는 것만이 해방의 새아침을 여는 외길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결의를 세울 때 반드시 안전을 책임져 주신다. 히브리어 베타흐는 시편에 종종 등장하는 단어다. “주님만이 저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리니...” 주님을 신뢰하고 나아가면 희망이 가슴을 물들어 두려움이 사라진다. 희망은 '틱와’다. (시 71, 5) “주님은 내 희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분이십니다." 그대에게 이런 신뢰가 있는가?

대개 '행복'이란 자본을 악착같이 긁어모은 자들의 만족한 표정에 덧붙이는 낱말이지만, 희망은 억눌린 이웃들의 설레는 가슴이요 의연한 용기이며 지식인에겐 절절한 연민이렷다. 오호! 삼천리에 국민행복시대라더라. 과연 그러한가? 눈 가리고 아웅 격이로다. 물질로, 번영으로, 성공으로 행복해질 수 있단 말인가? 시편 기자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모든 시는 자본주의에 적대적이다. 메마르고 단단해 질 수는 있지만 그건 가난해서가 아니라 공적인 부에 공헌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야위여 간다면 저항의 한 방법일 수 있다. 목마름에 싯누렇게 변해가는, 순정한 고통에 아파하는 배고픔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의 시인 후안 헬만의 시 '모든 시'는 시편의 연장선이다.

여행 중에 우리는 침상 한 칸, 책 한권, 말벗 한명 정도면 족하다. “A Bed to sleep, a Book to read, a Friend to talk" 어떤 낡은 여관에 써 있다는 이 말을 나는 기억한다.

행복은 개뿔, 믿는 이는 오로지 희망이어라. 달콤한 여행의 보람이 입술에 알씬 번지게 될 것이다. 가난한 벗들과 어울려 눈물 나누면서 이바구를 떨고, 서로 선한 나눔으로 아끼고 돌본다면 어떤 곤경도 외로움도 견뎌낼 수 있으리. 시인은 럭셔리 행복 여행, 파시스트와 짝짝쿵 하는 짓을 권하지 않는다. 여행은, 인생은 무엇인가. 오늘 하루 외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곧 사람이 할 일이요, 예수와 일촌 친구사이가 되는 일이며, 결국 하느님과 대면하는 구원이리라.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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