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에서 최강서 열사 추모제와 미사 봉헌

 ⓒ한상봉 기자

'한진노동자와 함께 하는 정의와 희망을 여는 미사'가 1월 16일 수요일 김준한 신부(부산교구) 주례로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봉헌되었다. 이날 미사에는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주관했으며. 부산교구 사제들과 서울대교구 박동호 신부와 인천교구 장동훈 신부 등 전국에서 찾아온 20여 명의 사제가 공동집전했다.

이날 미사에 앞서 열린 추모제에서 한진 측의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309일간 고공 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고(故) 최강서 씨를 향한 추모사를 낭독했다. 김 지도위원은 “네가 그렇게 기다리던 분들이 이렇게 많이 오셨다”면서 “가장 폭력적인 자들 앞에서 간절하게 평화를 빌던 그분들이, 가장 야만적인 자들 앞에서 우리가 옳다는 걸 따뜻한 눈빛으로 일깨워주시던 그분들이 오셨다”며 눈물을 삼켰다.

김 지도위원은 최 씨가 매주 한진중공업 본사 앞 수요미사가 있는 날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다며 “다시 수요일이 왔으니 꽁꽁 얼어있는 네 몸이 따뜻하게 녹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최 씨의 시신은 27일째 냉동실에 있다. 최 씨의 가족과 동료들은 최 씨가 유서에 남긴 “민주노조 사수, 158억 원 손배 가압류 철회”를 이룰 때까지 고인의 장례를 미루겠다고 밝혔다.

▲ 김진숙 지도위원은 최강서가 항상 수요미사를 기다려왔다며, 냉동고에 안치된 최강서의 마음이 따듯해지길 기원했다.ⓒ한상봉 기자

김 지도위원은 최 씨가 원했던 것은 “퇴근 후 아이들과 된장찌개 끓는 밥상에 둘러앉는 평화”였지만 “폭력을 휘두르던 용역깡패들, 돈으로 폭력을 사들인 한진 자본, 폭력의 하수인이었던 경찰 앞에서 평화는 서럽고 무력했다”고 분노를 토했다. 김 지도위원은 “네가 있어 우린 포기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자신을 던져 모두를 살리고자 했던 강서가 저에겐 예수”라고 고백했다.

이날 강론에서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긴 어둠 속에 사라진 우리의 동지들을 오늘 우리 곁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맞잡는 손”이라며 연대를 강조했다.

이 신부는 “요셉과 출산이 임박한 마리아에게 예루살렘의 성전도 따뜻한 환대를 베풀지 않았고, 로마 총독부도 그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았고, 시장의 풍요로움도 그들에게 작은 자리 하나 베풀지 않았다”며 마구간이 전부였던 그날 밤의 가난한 아기를 맞이한 사람은 “어둡고 바람 찬 밤에도 들판에서 양 떼를 지켜야 하는 고달픈 일을 하는 양치기들이었다”고 말했다.

▲ 이동화 신부는 노동열사들을 죽음에서 부활시킬 수 있는 힘은 연대라고 강조했다. ⓒ한상봉 기자

이 신부는 따라서 그날 밤은 “많은 사람이 노래 부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니라, 권력이 사람들을 보금자리에서 내쫓은 밤”이었고, 세상의 비정과 메마름이 우리 가운데 드러난 밤, 보이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외면과 무관심이 모든 이 앞에서 까발려지는 그런 밤이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하루 이틀 사이 세상을 떠난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최강서 씨, 현대중공업 하청 해고노동자 고(故) 이운남 씨, 한국외국어대 노동조합지부장 고(故) 이호일 씨를 언급하며, 이들은 “세상의 비정함과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예루살렘 변두리 너머 저 어둠 속으로 쫓겨난 이들”이라 말했다. 이동하 신부는 “우리가 바람찬 날의 목동이 될 때, 우리가 피난길의 마리아와 요셉이 될 때, 아침이 올 것”이며 “가장 낮은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가장 작은 이들이 서로 어깨를 걸 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걸어갈 때, 어둠은 가고 아침이 온다”고 강조했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민중연대 공동대표 안하원 목사(새날교회)는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며 “예수님은 억울하게 죽은 이들 가운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가운데, 시대의 아픔이 있는 곳에 계시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예수님이 어디에 계실까 찾아보고, 그 현장에 가면 늘 그곳엔 신부님들이 계셨다”며 “이것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교회”라고 전했다.

최강서 씨와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었던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현수막에 새겨진 최 씨의 사진이 낯설다며 “최강서 씨는 내가 한진에 올 때면 늘 달려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서 신부는 “이름을 불러 그리우면 사랑”이라며, ‘사랑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권력을 믿은 적이 없다. 믿는 것은 정의와 평화이고, 이 정의와 평화를 위해 끝까지 함께 할 테니 힘을 내자”고 격려했다.

▲ 오랫동안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를 지켜왔던 서영섭 신부 ⓒ한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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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힘, 연대

                          -이동화 신부 강론 전문

1.
일 년 중 어둠이 가장 길다는 동지를 며칠 지난 어느 밤, 어둠이 가장 긴 어느 밤에 한 젊은 부부는 자신들의 몸을 기댈 곳을 찾아 헤맵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자신들이 살던 곳 나자렛에서 쫓겨나, 인구등록을 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이들입니다. 당장의 산기를 느낀 젊은 여인의 몸을 누일 작은 방 하나를 찾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곤란에 처한 이 부부를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도 그들에게 따뜻한 환대를 베풀지 않았고, 로마 총독부도 그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도 보장해 주지 않았고, 시장의 풍요로움도 그들에게 작은 자리 하나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찾아낸 자리는 아이 낳을 자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소와 말의 거처인 마굿간이 전부였습니다. 새로난 아기를 눕힐 곳이라고는 소와 말들의 먹이통뿐이었습니다. 그 가난한 아기를 맞이한 사람이라고는, 어둡고 바람찬 밤에도 들판에서 양떼를 지켜야하는 고달픈 일을 하는 양치기들이었습니다.

그날 밤은 많은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니라, 권력이 사람들을 보금자리에서 내쫓은 밤이었고, 세상의 비정과 메마름이 우리 가운데 드러난 밤, 보이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외면과 무관심이 모든이 앞에서 까발려지는 밤,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이 들켜버린 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밤, 그런 밤이었습니다.

어둠이 가장 길다던 동지를 뒤로 하고 며칠 후, 어둠에 절망하고, 오지 않을 아침에 절망하여 어둠 속으로 가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12월 21일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최강서, 22일 현대중공업 하청 해고노동자 이운남, 24일 한국외국어대 노동조합지부장 이호일. 세상의 비정과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예루살렘 변두리 너머 저 어둠 속으로 쫒겨난 이들입니다. 이렇게 동짓밤은 일년 중 가장 어둠이 긴 밤입니다. 국가권력이, 우리의 외면과 무관심이, 우리의 절망과 낙심이 이들을 저 멀리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2
가장 낮은 곳, 가장 버려진 곳, 가장 비천한 그 곳에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름,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가 누워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곳은 바로 우리가 외면하고 우리가 고개를 돌려버린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긴 밤, 가장 추운 밤에 양떼를 돌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느님은 그곳에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가장 어린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은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 내미는 손에, 가장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맞잡은 손과 어깨로 동짓밤 어둠을 이기고 새벽을 맞습니다. 하느님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맞잡은 연대의 손에 의해, 아침으로, 봄으로, 희망으로 다가오십니다.

동짓밤 긴긴 어둠과 추위를 몰아내는 것은 권력이 해 줄 것도 아니고, 시장의 풍요가 해 줄 수도 없습니다. 어둠을 몰아내고 추위를 이기는 가장 큰 힘은 가난한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주변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서로 함께 맞잡은 손, 연대입니다.

동짓밤 긴 어둠 속에 사라진 우리의 동지들을 오늘 우리 곁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맞잡는 손, 바로 그것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힘은, 아침을 여는 힘은, 추위를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는 것은, 그래서 새로운 희망으로 우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맞잡은 손, 우리가 함께 거는 어깨, 우리가 함께 걷는 발걸음에 있습니다. 희망은 연대, 연대에서 시작됩니다.

3
일 년 중 어둠이 가장 긴 밤이 동지밤입니다. 아침은 멀어보이고, 희망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가장 길다는 말은, 밤이 가장 길다는 말은 그 어둠과 그 밤이 극에 달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동지가 어둠이 가장 긴 밤이겠지만, 이제 그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서서히 쇠락할 것입니다.

거센 바람에 양떼를 돌보던 목동들이 맞잡은 손에 의해, 헤로데 왕의 박해를 피해 에집트 피난길에 마리아와 요셉이 잡아주던 그 손에 의해, 어둠은 가고 빛이 옵니다. 어둠이 가고 아침이 옵니다. 그 맞잡은 손에 의해 추위는 가고 봄은 옵니다.

권력과 시장이 만들어놓은 이 동짓밤의 어둠, 그 어둠이 길다해도 이제 아침이 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바람찬 날의 목동이 될 때, 우리가 피난길의 마리아와 요셉이 될 때, 아침이 올 것입니다. 가장 낮은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가장 작은 이들이 서로 어깨를 걸 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걸어갈 때, 어둠은 가고 아침이 옵니다. 추위는 가고 봄이 옵니다.

연대가 희망을 밝힙니다.
연대가 권력과 시장의 귀신을 몰아냅니다.
연대가 최강서를 우리 앞에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맞잡은 손으로, 연대의 이름으로, 아침을, 봄을, 희망을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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