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선교 일기 - 이윤주 수녀]

“레오나 왔구나. 네가 올해 몇 살이더라?”
아이는 말이 없다. 옆에 있는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몇 살이니?” 다시 한 번 묻자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나 몇 살이야?” “여섯 살이라고 말씀드려.” 엄마가 아이에게 눈짓을 하며 귀뜸해준다. 그러면서 둘 다 머쓱한 표정이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그래도 어쩐지 장난기가 발동해 아이엄마에게 “아이고, 레오나는 재작년에도 여섯 살이고 작년에도 여섯 살이더니 올해도 여섯 살이네요.”하고 말을 건넨다. 그러면 엄마와 아이는 금방 탄로난 거짓말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고, 나는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 속으로 씩 웃는다. 이곳은 산 세바스찬 여자 교도소. 내가 일하는 코차밤바 시내 3개 교정시설중 하나이다.

▲ 배급 받은 우유를 먹는 아이(왼쪽)와 배급 순서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기 ⓒ이윤주

볼리비아의 교도소에서는 남자 수감자들은 대부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교도소 안에서 살고, 여자 수감자들은 자기 아이들뿐 아니라, 조카들이나 손자, 손녀들까지 교도소 안에서 키우며 산다. 더욱 신기한 것은 교도소 안에 음식점과 구멍가게는 있지만 죄수복이나 철창이 없다는 점이다. 작고 허름한 가정집 건물을 대충 개조해 수백 명의 사람들을 코가 맞닿도록 몰아넣고는 하루 한 끼 식사도, 손 씻을 물도, 화장실 휴지도 주지 않는 말 뿐인 교정시설. 죄수복도 철창도 제공할 능력이 없는 정부가 수감자들에게 줄 하루 한 끼 식사나 허리를 펴고 누울 감방을 마련했을 리가 없다. “너희들은 죄인이니 알아서 능력껏 밥도 사먹고, 필요한 물건도 각자 사고, 흙바닥에서 자면서 말도 안 되게 열악한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료까지 내라”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다. 그러니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볼리비아의 교도소 안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통은 더욱 깊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아이들은 각종 질병에서 벗어날 때가 없고, 하루 한 끼 먹을 형편이 못되는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음식이 없으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와 합병증에 시달린다. 또한 거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교도소 내의 폭력과 범죄에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 현실 또한 가슴을 찢는다.

나는 이런 교도소들을 돌면서 수감자인 부모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의 영양 상태를 점검하고, 정기적으로 필요한 영양제나 의약품들을 나누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특히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우유를 나누어 주는데, 소액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그나마 그 작은 혜택도 여섯살 미만의 아이들에게만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미안하게도 나는, 우유를 받으러 오는 아이의 나이를 물어야만 한다.

▲ 우유를 받으러 온 젊은 엄마와 아기 ⓒ이윤주

그러나 햇수로 3년째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니 교도소 세 곳의 거의 모든 아이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실제 나이까지 알고 있는데, 2년, 3년째 계속 여섯 살이라고 주장(?)하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만나면 나 혼자 웃을 수 밖에 없다. 부모들은 아이가 여섯 살이 넘으면 우유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아이에게 단단히 교육(?)을 시키고 온다. 몇 살이냐고 물으면 여섯 살이라고 해라, 아니면 엄마가 대답할테니 넌 가만히 있어라, 뭐 대충 이런 식이다. 그래서 내가 나이를 물으면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만 쳐다볼 뿐 입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가루 우유 한 봉지가 이 아이의 유일한 하루 한 끼 식사라는 것을 아는데, 이것을 받지 못하면 하루 종일 굶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 그래서 자기 아이를 2년, 3년째 여섯 살로 붙잡아 둘 수 밖에 없는 부모들의 심정을 아는데, 거기다 대고 이 아이가 실제 몇 살인지 알고 있으니 거짓말하지 마시라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알면서도 속아 넘어간다.

여섯 살과 여덟 살인 두 남매의 몸무게와 키를 재고 우유를 나누어주며 나는 슬쩍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너 여섯 살이랬지? 그럼 네 누나는 몇 살이니?” “여섯 살이요. 엄마가 나도 누나도 모두 여섯 살이랬어요.” 옆에 서 있던 젊은 엄마는 까맣게 때가 낀 손톱 끝만 내려다볼 뿐 도무지 얼굴을 들지 못한다. 속이 빤히 보였던 거짓말이 탄로나 버리자 부끄러웠던 것이다. “안나 씨, 미리암은 여덟 살이지만 몸무게가 많이 미달이라서 우유 드리는거에요. 다음번에도 몸무게가 늘지 않았으면 또 드릴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제서야 엄마는 조금 고개를 든다. 그 얼굴에서, 자식을 먹이기 위해서 작은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 그러다 들통나 민망한 꼴을 당해도 자식 배곯는 것 만큼은 아파하지 않는 가난한 엄마의 용기가 보였다. 나는 어쩐지 그 용감한 거짓말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몸무게를 재고 우유를 받아간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가 적인 명단을 차근차근 보다보니 여섯 살로 기록된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 실제 나이를 말한 게 아닐 테니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여덟 살 아이도, 아홉 살 아이도, 심지어는 열두 살 아이도 여섯 살이라고 속일 수 있을 만큼 체격이 작고 몸무게가 턱없이 적게 나간다는 것이다. 열 살이 넘은 내 아이가 제대로 먹지 못해 여섯 살로 보일만큼 작다면 나도 절박한 마음에 이 정도 거짓말은 얼마든지 할 것 같다. 더구나 내 아이는 내 잘못으로 인해 교도소 안에서 자라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엄마들이 자식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나는 이 엄마들이 나에게 와서 아이들의 나이를 속이고 우유를 받아갈 때 좀 더 당당했으면 하고 바래본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건, 내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서, 힘든 여건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당당함으로, 내 아이는 작년에도,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 여섯 살이라고 배짱 좋게 나에게 거짓말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속아줄 테고 말이다.
 

이윤주 수녀 (메리놀 수녀회, 볼리비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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