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회적 기업 ‘아키테리어 금빛가람’ 윤태호 주임

▲ 윤태호 씨 ⓒ강한 기자
윤태호 씨는 자칭 ‘보수 신자’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이하 지금여기)를 창간 때부터 애독해온 독자다. 또한 ‘사회적 기업’에서 활기차게 일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그는 10대였던 1987년 늦가을부터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이듬해 여름 서울의 한 본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다니엘. 그는 주일미사와 판공성사를 잘 지키는 편이며, 더구나 “사도로부터 이어오고 교황님이 영도하는 가톨릭 신앙을 그대로 믿는다”고 밝혔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 사상에 “확신”이라 할 만큼의 관심을 두고 있고 자연법 사상으로부터 이에 어긋나는 실정법 질서를 거부할 수 있는 ‘저항권’도 나온다고 강조했다.

자칭 보수 신자가 교회를 향한, 세상을 향한 입바른 소리로 뭇 신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지금여기>의 애독자가 된 사연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9일 저녁, 명동에서 만난 그에게 <지금여기>와의 인연을 물었다.

가장 신뢰받는 종교, 천주교 … 그 신뢰를 이어가고 싶은가?

“제가 예전에 읽었던 소설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1차 대전에 참전했던 병사가 2차 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징집됐어요.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그래서 장교에게 불평했더니 그는 ‘지난 전쟁 때 훈장을 받았으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자격을 유지할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예요.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종교가 천주교라고 합니다. 그럼 이 신뢰를 계속 이어가야 하잖아요?”

천주교가 가장 신뢰받는 종교라는 명예로운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그만큼 긴장하고 스스로 쇄신하고 자정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태호 씨는 “우리나라에도 존경받는 가톨릭 신자들이 많지만, 천주교에 대한 신뢰는 교황을 비롯한 세계교회와의 일치 덕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가톨릭교회가 겪고 있는 성직자의 성추행 파문은 더욱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지금 한국 교회에는 성추행 문제가 없지만, 만약 그런 문제가 생기면 지금의 교회 지도부가 정직하고 합당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의문입니다. 피해자 가족을 만나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있으면 배상금 주겠다’는 식의 방법을 많이 택하지 않을까요?”

해군 장교였지만 올레길 따라 강정마을 걷다 보니 해군기지 반대로 돌아서

부산 출신인 윤태호 씨는 1990년대 초에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 3년을 해군 장교로 지냈다. 제대를 눈앞에 둔 1999년 6월 15일에 연평해전이 일어났다. 그때만 해도 “이참에 북한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전우들이 승리하고 돌아오길 간절히 빌었다”고 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찬성해 왔다. 그의 마음이 바뀐 것은 2010년 추석을 앞두고 사흘간 제주 올레길에 다녀오면서부터였다. 둘째 날 걸은 올레길 7코스가 해군기지를 짓고 있는 강정마을을 지난다. 그가 강정에 갔을 때는 곳곳에 ‘해군 출입금지’라는 말이 쓰여 있었고, 한눈에 봐도 해군이나 정보기관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수첩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루 일정을 끝냈을 때 제가 어떤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강정에 빨리 해군기지가 들어서서 올레길 7코스가 폐쇄돼야겠다고 생각할까요? 절대 아니죠. 누군가 ‘당신의 값싼 감상 때문에 전략적인 이점을 포기할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정치 문제나 장래의 국익 이전에 개개인이 느끼고 있는 감성 역시 막무가내로 폄하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윤태호 씨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육군 장교로 지냈고, 집안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에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어느 날 “이제 전쟁을 하지 않고도 통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윤 씨 자신은 서울에서 살았지만 6월 항쟁이 그토록 격렬했다는 것은 대학생이 된 뒤에야 알았다. 중학생이던 1987년에 우연히 명동에 갔다가 최루탄 연기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던 기억만 선명할 뿐이다. 광주항쟁의 ‘진실’을 접한 것은 94년이었고, 이를 감추고 왜곡해온 보수 정치세력을 불신하는 계기가 됐다. “나도 모르게 어느 틈엔가 내가 진보적인 사람으로 여겨지더라”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자신이 ‘보수주의자’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사회적 기업, 내가 가야 할 길”

제대 이후 윤태호 씨는 몇 년간 준비하던 사법고시를 그만두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에 그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한다. 취약계층에게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 발전과 공익에 기여한다는 사회적 기업이야말로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직감했다.

윤 씨는 작년 4월부터 사회적 기업으로서 서울 강북 지역이 주요 사업 무대인 건설회사 ‘아키테리어 금빛가람’에 몸담고 있다. 10여 명이 함께 일하는 회사인데 직원 대다수는 저소득층, 장애인, 새터민 등 취약계층에 해당한다. 작은 회사지만 지역의 학교와 복지기관을 후원하며 사회적 기업의 소임을 하고 있다.

▲ 사회적 기업으로서 서울 강북 지역이 주요 사업 무대인 건설회사 ‘아키테리어 금빛가람’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윤태호)

그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큰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적 기업이 대안으로 떠올랐다”고 소개했다. ‘아름다운가게’나 지적장애인 우리밀 쿠키생산 업체인 ‘위캔쿠키’가 사회적 기업의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많은 사회적 기업은 영세한 상황이라고도 전했다.

윤 씨는 “제가 일하는 ‘금빛가람’도 영세한 수준이지만 계속 발전하고 있고, 열심히 일한 성과로 동료들의 급여와 복리후생이 개선되니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회사의 사업 영역은 집수리를 기본으로 하면서 건축, 인테리어, 태양광발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묻어났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움직이길

윤태호 씨는 “작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결과에 실망해 ‘멘붕’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주위에 꽤 있다”면서 “저도 참 실망스러웠지만, 이 기회에 <지금여기>의 다른 독자들과 함께 공감하고 저도 위로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꿈꾸고, 하나하나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을 해나가면 좋겠어요. 많이 지친 분들은 이참에 여행을 다녀오실 수도 있고, 공부를 좀 더 할 수도 있겠죠. 앞으로 4~5년 후만 보지 말고 20~30년 후를 생각하며 지금 그것을 시작하자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머지않아 회사의 경영진에 참여하게 될 예정이라는 윤태호 씨는 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 기업 최고경영자 과정’에 참여하는 등 자신의 능력을 가다듬으며 앞날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꿈은 사회적 기업가로서, 정부나 대기업에 의존하기보다는 시민 스스로 돕는 경제조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보수 신자’이자 ‘작고 착한 기업’을 이끄는 경영인으로서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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