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신학을 펼치는 황종렬 박사

“와서 보시오”(요한 1,46). 글을 준비하면서 원칙으로 세웠던 말씀이다. 시대의 징표를 찾는 분들의 말씀과 삶을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충매체를 통해 걸러진 내용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나오는 것들, 때에 따라서는 거칠고 불편해 보이는 알맹이를 건져내서 전하고 싶었다. 이 원칙 덕분에 새 하늘 새 땅을 취재하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동쪽으로는 삼척에서 서쪽으로 영광까지 대부분 장거리 여행이다. 여차하면 이삼일씩 묵으며 취재를 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취재원을 찾는 일보다 동행해줄 형제를 찾느라 애를 더 많이 먹는다. 다행이 이번 취재는 쉽게 해결되었다.

신학자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복음적 가치관으로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황종렬  박사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생태영성과 토착화’라는 강의를 맡고 있다. 자택인 원주로 찾아가 볼까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와서 보시오”라는 원칙을 깨기로 했다.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시간을 내어 준다기에 신학교 구내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환하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카페에 들어선 황종렬 박사는 아침에 지갑을 놓고 오는 바람에 버스를 놓쳐 늦었다며 죄송하다는 인사 먼저 건넸다.

▲ 황종렬 박사의 관심사는 신학을 한국의 현실에 맞추어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작업이었다. 한국신학의 방법론과 실천이라고 표현했던 그의 연구주제는 이른바 토착화된 신학을 찾는 길과 다르지 않다. ⓒ박현동 블라시오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 해석하기

황종렬 박사는 잡지에 나올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2005년에 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받는 분이 자격이 없다면 누가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가톨릭 학술상운영위원회가 밝힌 그의 수상이유는 한국적 전통과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에 모두 충실해야 하는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꾸준하게 한국적 신학 연구를 모색해왔다는 것이다. 한국적 신학이라니! 그동안 생태이론가로 알고 있던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그는 1980년 가톨릭대학교 신학과 3학년으로 편입을 하면서 신학탐구 여정을 시작하였다. 장차 장애가 있는 청소년들과 같이 살려는 원의를 세우고 나서 보니 사람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신학에 먼저 손을 댔다. 신학공부를 하면서 영어와 국민윤리 교직까지 이수하고 교사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를 채용해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교직의 꿈을 포기하고 신학연구를 업을 삼기로 했다.

황종렬 박사의 관심사는 신학을 한국의 현실에 맞추어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작업이었다. 한국신학의 방법론과 실천이라고 표현했던 그의 연구주제는 이른바 토착화된 신학을 찾는 길과 다르지 않다. 그의 관심은 자연히 한국 역사에 쏠리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기 이전에도 이미 한국인들이 하느님과 관계된 역사를 살아왔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만났고 살아왔을까? 또한 역사와 삶의 자리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만날 때 어떻게 하면 두 정체성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결국 과거와 현재를 신학의 현장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이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요구하는 토착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시대의 요구에 신앙으로 응답했던 인물들을 발굴해냈다.

▲ 황 박사는 평신도나 사제나 주교나 수도자나 순명에 중요성을 회복할 것을 요구했다. 순명이란 각자 삶의 자리에 시대의 표징에 충실하게 응답하는 것이다. ⓒ박현동 블라시오

시대의 요구에 응답했던 신앙인, 안중근

황종렬 박사는 마태오 리치, 정약용, 안중근 같은 인물들을 신학적으로 조명했다. 특별히 안중근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신앙과 민족의식이 만날 때: 안중근 토마스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관한 신학적 응답>(분도출판사, 2000년)이란 책으로 간행했다. 그는 안중근을 연구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토로했다.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려는 신앙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들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일제에 협조적이었던 뮈텔 주교 때문에 감정을 상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노출하지 않은 안중근의 자세에서 깨달은 바가 많았다. 안중근은 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비판하고 저항하기보다 깊은 사랑과 순명의 정신으로 감싸 안은 것이다. 1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몰이해와 배척을 받았더라도 다시 교회가 안중근을 찾은 데는 다 이유가 있으며 그래서 안중근이 중요하다고 했다.

황종렬 박사는 신학자들이 안중근에게 배워야 할 점을 순명이라고 꼽았다. 아니 한국교회 전체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신도로서 주교로서 사제로서 수도자로 각기 교회의 직분에 따른 순명이 뭔지 고민해보고 순명의 의미를 깊게 깨달아야 한다. 거기에서 영성과 투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생태영성가나 생태신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생태영성이니 생태신학자리 하는 말도 필요 없다. 그리스도 영성과 그리스도 신학이면 족하다. 삶의 자리에 시대의 표징에 충실하게 응답하다보니 그의 신학주제가 이쪽으로 흘러왔을 뿐이다. 굳이 자신의 신학에 이름을 붙이자면 한국신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생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생태는 창조와 구원을 매개하는 언어

생태는 하느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연결된 문제이다. 하느님의 계속되는 창조는 생태와 직결된다. 또한 어디서 구원을 이야기 할 것인가? 그러므로 생태는 창조와 구원을 매개할 수 있는 언어라고 황종렬 박사는 설명했다. 그는 외국의 저명한 신학자들의 저서를 번역해 국내에 생태신학을 소개했다. 클라우스 베스트만의 <창조>(분도출판사, 1991년), 숀 맥도나휴의 <땅의 신학>(분도출판사, 1993년), 매튜 폭스의 <원복>(분도출판사, 2001년)이 그가 번역한 작품들이다.

그중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클라우스 베스트만의 <창조>이다. 흔히 생태영성을 하는 사람들을 성경을 인간중심으로 배격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다. 하지만 이 작품은 창세기의 창조설화에서 생태영성을 도출해냈다. 그 역시 철저하게 성경을 바탕으로 생태영성에 접근해왔다고 했다. 영성과 신학의 바탕은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배추밭에서 배우는 생태영성

▲ 황종렬 박사는 역사 안에서 또는 구체적인 일상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내동댕이치는 것은 하느님 구원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표현했다. 신학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찾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박현동 블라시오
황종렬 박사는 생태문제를 전문가들의 용어로 풀어나가지 않는다. 성경에 기반을 두고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용어로 풀어나가려고 노력한다. 또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감수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그 예로 그는 배추벌레와 배추 이야기를 꺼냈다. 남에게 영향을 주고 싶으면 먹혀야 한다. 배추는 자신을 배추벌레에게 먹히게 하고 자신의 색깔로 배추벌레를 물들인다. 자신의 피와 살을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신 예수님처럼 말이다.

남을 살리기 위해 나를 포기하는 일이 숭고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배추벌레에 먹인 배추를 보면 안다. 누더기가 된 배추들은 흐물흐물해져서 비가 오면 녹아버린다. 이렇게 배추밭에서도 그리스도 사건이 발견된다. 그는 또 다른 비유를 들었다. 배추벌레가 팔차선 도로 위에 떨어져 있다고 치자. 그리고 저쪽에는 배추밭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배추벌레는 도로를 건너다 차바퀴에 깔리는 한이 있더라도 배추가 있는 방향으로 간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힘이라는 것이다.

생태나 환경에 대한 담론은 보통 전문가들이 통계나 수치를 동원하여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해결방법을 도출해나가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황종렬 박사는 생태와 환경문제를 영성으로 다가가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숨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면, 저절로 나를 숨 쉬게 하는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는다. 반면에 공기를 오염시키지 말라면서 차를 타지 말라고 요구하면 복잡해진다. 정말 차가 필요한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 참담해지기 때문이다. "이건 해라, 저건 하지 마라"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이것은 또 다른 율법주의에 불과하다. 획일적인 답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 차를 타지 말라는 말을 하기보다 되도록 차를 적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낫다. 각자의 영을 일깨워줘서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하게 해야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한국신학의 원천인 삶의 자리

황종렬 박사의 신학세계는 항상 일상이다. 이는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쳐준 박상래 야고보 신부의 영향이라고 했다. 박상래 신부에게 공관복음 강의를 들으려고 겨울방학동안 희랍어 원문을 읽으며 준비까지 했다. 그때 양식비평이라는 성경해석법을 창안한 독일 성경학자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1862 ~ 1932)이 말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처음 접했다. 성경은 읽혀지는 사람들의 여건과 상황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자리가 다르다는 것은 청중이 다르다는 것이고, 청중이 다르면 당연히 예수 사건에 대한 진술법이 다른 것이다. 이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한국신학으로 종합되었다.

황종렬 박사는 역사 안에서 또는 구체적인 일상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내동댕이치는 것은 하느님 구원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표현했다. 신학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찾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학연구가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그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평신도가 신학을 하는데 제약과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에 매여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어차피 교회의 모자란 부분까지도 다 품고 갈 각오로 들어선 길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신도들의 자질이 높아지지 않으면 교회가 성숙하기 어렵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의 정체성을 깊게 성찰하고 그들의 갈 길을 열어주는 것이 성직자들의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라고 밝히며 대담을 마무리 지었다.

평신도 신학자, 생각해보면 괴이한 호칭이다. 사제 신학자라는 혹은 수도자 신학자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평신도가 신학을 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그리 평범하지 않은 일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황종렬 박사의 지론대로라면 신학은 특별한 일도 우리 일상에서 벌여지고 있는 하느님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신학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황종렬 박사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양한 삶의 자리를 오고 가며 잠든 그리스도인들을 깨우고 있다.

 *이 기사는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서 발행하는 <분도>지 2012년 겨울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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