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판화가 이철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그 시작은 문재인일 것입니다.” 지난 18대 대선 유세기간에 판화가 이철수는 문재인 후보의 이 구호에 자신의 판화를 더해 문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 그를 만나러 제천시 백운면 자택을 찾았을 때 연일 계속되는 추위로 주변에 쌓인 눈은 녹지 않고 고스란히 하얀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철수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이유는 문재인 개인에 대한 호감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메시아도 아니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장본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벼랑 끝에서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박했다”는 것이다.

 ⓒ한상봉 기자
“밖에 없는 위로를 안에서 찾는 것도 희미하지만 ‘길’이다”
“노예로 오래 산다고 모두가 스팔타쿠스가 되는 게 아니다”

문재인 캠프에 멘토로 참여하는 것은 거절했지만, 마음으로는 문재인을 거들고 싶었던 이철수가 선택한 것은 응원엽서였고, 이 엽서는 홈페이지인 ‘이철수의 집’에 올리지 않고 새롭게 시작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세상에 전달됐다. 대선 결과가 그의 이런 바람과 기대를 담아내지 못했음에도 그는 ‘멘붕’에 빠지지 않았다.

“국민이 안정을 선택한 것 같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고, 나 역시 내가 믿는 대로 성심껏 노력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역사를 연출하거나 기획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이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결과는 참담했지만 멘붕까지는 아니다. 천천히 개표결과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시 일상적 감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여겼다.”

이철수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정혜신 박사가 ‘번호표를 받아놓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목소리가 아직도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위로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이럴 때 한가하게 마음공부 타령을 한다고 내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위로를 자기 안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바깥 관계 안에서 찾으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세상에 등 돌리고 앉아 있으라는 게 아니다. 밖에 없는 것을 안에서 찾는 것도 희미하지만 ‘길’이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닌 벼랑 끝 세상’에서 이철수는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도 마음이 황폐하고,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모르는 이의 마음도 황폐하다면서, “돈 없이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세상에서는 자존감을 찾기도 어렵고, 희망이라고는 없는 전쟁보다 못한 삶”이라고 지적했다. 저마다 트라우마가 깊어진 세상이다.  그는 “모두의 마음에 금이 깊게 가 있는 것 같다. 그릇에 금이 가면 안에서 때워야 할까? 아니면 밖에서 금을 때워야 할까? 그릇 안에서 땜질을 해야 물이 새지 않는 것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이철수 작가의 작업실에 놓여 있는 부처. 마음 닦는 일이 세상 닦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성인들의 목소리다.  ⓒ한상봉 기자

그렇다고 “국민이 더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식의 이야기를 이철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통을 많이 받는다고, 세월이 흐른다고 저절로 각성이 일어난다고 믿는 것은 아무 근거없는 막연한 생각이라는 입장이다. “노예로 살면 노예가 된다. 노예로 오래 산다고 모두가 스팔타쿠스가 되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여인이라도 생겨야 다시 일어나 볼 엄두를 낸다”고 말했다. 이철수는 상처가 깊으면 저절로 치유된다는 식으로 ‘더 당해 보라’는 투의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성찰’이다. 세상에 대한 성찰뿐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 즉 ‘마음공부’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만큼 요긴하다고 이철수는 믿는다. 더 긴 호흡으로 싸우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스릴 일이다.

“좋은 어른에게 줄을 서라”
아웃사이더는 다른 세상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최근에 판화가 이철수는 원불교의 경전인 <대종경>을 묵상하며 판화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원불교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종단 측의 의뢰를 받아 작업 중이라고 했다. 처음엔 원불교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종단 내 반대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철수의 내공을 믿고 맡긴 모양이다. 그는 본래 ‘빈민의 대부’였고 지난해 봄에 선종한 허병섭 목사가 맡고 있던 동월교회의 벽화를 그렸으며, 1970년대에는 천주교 원주교구와 인연을 깊이 맺는가 하면, 줄곧 불교에서 영감을 받아온 자칭 ‘모든 종교를 넘나드는’ 작가다.

이철수는 <대종경>을 두어 차례 묵독하면서 얻은 지혜 가운데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대종사 소태산은 “제일 제도(전도)하기 어려운 사람은 마음에 어른이 없는 사람, 염치없는 사람, 악을 행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철수는 ‘마음에 어른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에 놀랐다.

“어느 종교든 마음공부를 할 때 ‘먼저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그릇이 팍삭 깨지고 나면 물이 줄줄 새는 것처럼 어리석은 마음이 사라지길 기대하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나? 미묘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지켜보는 게 마음공부지.”

이철수는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 죽어가고, 멘붕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내 안의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내 안에 있는 어른에게 기대기도 하고, 투정도 하고, 어리광 부리고, 야단맞기도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현주 목사는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어리광도 부리고 따져 묻고 꾸중을 듣기도 하는데, 이런 분이 ‘내 안의 어른’이다. 아프면 그 앞에 가서 울고, 궁금하면 묻고, 겸손하게 조언을 부탁할 수 있는 존재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꼭 예수일 필요는 없다. 내 밖의 어떤 사람일 수도 있다.

▲ 이철수는 요즘 원불교의 <대종경>을 묵상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처음 만난 어른이 자신에게는 이현주 목사였다는 이철수는 “이현주 목사를 만나서 권정생과 장일순을 알게 되었고,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사람들에게 줄 서라”고 주문한다. ‘어른’이 될 만한 사람에게 줄을 대고 그의 곁에 있으면 ‘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언행을 조심해 ‘나도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했다.

이철수에게 ‘그 사람’은 마음에 담아둔 ‘내 안의 어른’일 텐데, 이철수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아웃사이더’였다고 전했다. 그들을 만나 '다른 세상의 풍경'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철수는 여러 종교 담론을 접한 자신을 ‘개구멍받이’라고 표현했다. 불교를 알려면, 절 마당에만 들어가면 되지, 꼭 일주문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제도 안의 종교인들이 더 진리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말인데, 이철수는 “오히려 라이센스가 없어서 자유로웠다”고 말했다. 세례증명서나 법명을 받지 않아도 진리의 그늘 안에 들어갈 수 있고, 오히려 제도종교의 관습에 얽히지 않아도 되니, 더 깊은 진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철수는 <대종경>에 대한 탐색을 마치면, 복음서를 앞에 두고 판화작업을 해 볼 요량이라고 소개했다. 마애석불처럼, 바위를 깎아서 가톨릭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이철수. 본인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지만, 복음서를 묵상하며 바깥사람의 시선으로 다른 색깔의 하느님을 보고 싶다 했다. 실상 이철수에게 성속이 따로 없고, 종교의 경계가 따로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이어 이철수는 요즘 작업하는 소태산 대종사의 일화를 소개했다.

원불교 초기에, 교당에 창부가 드나드니 교당의 평판이 나빠질까 걱정해서 교인들이 소태산에게 창부의 출입을 금하자고 제안한 모양이다. 이를 듣고 소태산은 “어찌 (마음)공부하는 너희가 그런 말을 하느냐. 교당의 문제가 곧 사회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가 곧 교당의 문제인데, 더러운 것을 밖(사회)에 내놓고 깨끗한 것만 취하는 것이 어찌 종교가 취할 태도냐”고 야단쳤다고 한다. 세상과 교당이 다르지 않음을 꼬집은 것이다.

이철수는 소태산이 “위인을 사진 박아 기념할 수는 있지만 경배해서는 안 된다”며 “진리와 관계할지언정 나 때문에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철수는 이런 태도라야 자유롭게 ‘어른’을 만나고,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게 아닌지 물었다. 그는 “그런 어른을 마음속에서 만나면 ‘지금 여기’에서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벼랑 끝 세상에서도 스스로 위로하며 희망을 건져올릴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레 제안했다.

기자가 판화가 이철수의 시골집에 찾아갔을 때 마침 와 있던 어느 건축가 부부는 지난 밤 이철수 부부와 대선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와 다짐을 새롭게 했다고 전했다. 문득 '여전히 삶은 계속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철수는 지금 우리 사회를 '벼랑끝'이라고 말했다. 마음을 다독거리며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게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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