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언니~”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 명원 씨다. 삼년만이다. 걱정 반 반가움 반에 당장 만나자고 했다.

처음 그녀를 만난 곳은 노숙인 쉼터다. 쪽방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가톨릭 예비자 교리반에서 유일한 여성 노숙인이었다. 남성 노숙인 틈에서 끼인 홍일점인지라 특별히 관심이 가서 이것저것 잘 챙겨주었다. 거칠고 험한 세계에서 살아남느라 다져진 배짱과 뻔뻔스러움은 기본이고 황당한 억지에다 막무가내로 떼를 쓸 때는 자주 교리실을 ‘멘붕’ 상태로 몰고 가곤 했다. 뜬금없이 불쑥불쑥 던지는 앞뒤가 안 맞는 해괴한 질문들로 끈질기게 늘어지는가 하면 성경과 불경의 여기저기를 유연하게 인용하면서 퍼즐 맞추듯이 짜깁기하는 독특한 성경해석(?)은 그동안 얼마나 개불천(개신교 불교 천주교)을 오가며 이력을 쌓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혈질에다 억센데다 막가파인 그녀를 감당하고 제지하기가 쉽지 않아서 고민했는데 자연계에 천적이 있듯이 구세주 박 씨가 바로 그녀를 견제하는 유일한 천적이었다. “썅! 망할 년 니가 선생님이야?!” 보다 못한 박 씨가 한창 열을 올리는 그녀의 괴변을 가로막으려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는 순간 명원 씨는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숨는다. 쪽방촌에서 쉬쉬하는 박씨의 포스 앞에서는 여자 깡패 명원씨도 꼬리를 팍 내리고 침묵 모드로 들어간다.

 ⓒ 김용길

명원 씨가 예비자 교리에 나와서 세례를 받으려는 이유는 순전히 ‘밥’과 ‘방’ 때문이다. 그녀의 소원은 전 남편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사는 것이다. 만일 불교든 개신교든 천주교든 어느 쪽이든 부엌 딸린 방 한칸만 얻어 준다면 상관없다는 것이 그녀의 속마음이다. 사실 오전에는 쪽방촌의 교회에 들러 예배를 보고 오후에는 미사와 예비자 교리를 하러 오는 것도 ‘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그녀의 소원은 전 남편이 아이들을 입양 보내기 전에 데려와서 같이 사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3평 쪽방에는 명원 씨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천적 박 씨의 말에 의하면 ‘기둥서방’이라고 한다. 어느 날 교리반에 명원 씨가 안 보여서 박 씨를 앞세우고 그녀의 쪽방을 찾아갔다.

“누구야!”
술에 취해 냅다 고함을 내지르는 중년의 사내, 기둥서방 김 씨다.
“씨팔 무슨 죽을 놈의 교리야 교리는!교리가 밥 먹여주냐!”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가끔 명원 씨의 눈 두덩이가 퍼렇게 멍든 이유를...

강원도 산골에 살던 15살 중학생 명원이는 집을 나왔다. 아버지의 주폭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는 명원이보다 먼저 집을 나갔다. 차비도 없이 서울로 와서 역 앞에서 이틀간 노숙을 했다. 배가 고팠다. 3일째 키가 작은 ‘가죽점퍼’가 다가왔다. 밥을 사줬다. 일자리도 준다고 했다. 미아리 근처 어딘가 식당이라고 했다.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대도시를 벗어난 외진 곳에 이르니 ‘빨간 불빛이 나오는 집들’이 있었다. 작은 방으로 인도됐다. 잠시 기다리니 나이 든 여자가 따뜻한 밥상을 차려왔다. 가죽점퍼는 보이지 않았다. 애원했다. 집에 보내달라고. “이년아 진작에 얘기했어야지 몸값으로 얼마를 냈는데”

지옥 같은 생활에서 명원 씨를 구해준 남자가 나타났다. 남편이다. 둘은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깐 시부모의 냉대가 심했다.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남편도 예전 같지 않았다. 결국, 남매를 낳고 쫓겨났다. 그 때의 충격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서울역을 떠돌아다니다가 만난 노숙인 김 씨가 기둥서방이 되었다. 주폭꾼이지만 그래도 그녀를 노숙인들 틈에서 지켜준 은인이자 수호천사라고 여기며 살았다.

명원 씨는 큰 짐 보퉁이와 함께 아이 둘을 데고 나타났다. 다섯 살, 일곱 살의 남매다. 지금 시댁에서 아이들을 빼앗다시피 해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남편은 재혼하면서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니 키울 수 없다고 책임을 회피했고 보육원이나 입양을 보내겠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을 찾아왔다고 한다. 당장 아이들이 있을 곳도 없고 기둥서방 김 씨의 반응도 걱정 돼서 나는 대책도 계산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고 그녀를 막 질타했는데 내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명원 씨의 얼굴은 활짝 폈다.

저녁에 우리는 육삼빌딩으로 갔다. 아이들을 환영한다고 내가 크게 한턱 쏘기로 했다. 대식가인 명원 씨를 위해서 뷔페식당으로 갔다. 눈앞의 산해진미를 두고 이 가족들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되었다. 역시 아이들도 엄마를 닮아 위대(胃大)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전망대로 갔다. 서울의 야경이 휘황찬란했다. 저 멀리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이 이 가족들을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저렇게 많은 아파트 속에서 이 도시 어디에도 자신의 방 불빛이 없다는 것에 절망하지 않기를. 기둥서방 김씨가 이 길 위의 세 식구를 내쫓지 말고 아버지가 되어주길. 명원 씨가 세례를 받을 즈음엔 부엌 딸린 방 한 칸이 기적처럼 찾아오길.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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