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금자씨의 어린이카페 이야기]

까사미아의 최고 학년은 중학교 2학년입니다. 어린이카페인 까사미아에 중딩들이 오는 연유는 단골로 드나든 초딩6이 이제는 중딩2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간혹 까사미아를 방문하는 성인들은 중학생도 놀러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는 가 봅니다. ‘공부는 언제하고 이곳에 놀러오다니’ 하는 표정입니다.

▲ 큘로 아저씨에게 정중히 인사한 후에 "배고파요, 스파게티 곱배기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 중딩2 ⓒ김용길 기자

까사미아를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초기에 떼로 몰려와서 아저씨와 아줌마의 마음과 몸 고생을 많이 시킨 그룹들 중의 하나가 바로 욱이 그룹입니다. 초딩 때 같은 반 친구들, 같은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떼 지어 몰려와 놀이교재들은 있는 대로 다 늘어놓고, 보던 책들을 널브러뜨리고 간식 먹고 바로 튀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그래도 나름 교통정리하려고 노력한 녀석이 바로 욱입니다. 초딩 때는 천방지축이었던 아이들이 중딩이 되고나서는 많이 침착해지고 의젓해졌습니다. 세월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성숙하게 하는 가 봅니다.

까사미아 단골인 욱, 희, 성이가 중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열심히 놀러옵니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녀석들의 입소문을 듣고 여중생들도 남친과 함께, 때로는 여친끼리 따로 까사미아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빼빼로 데이’에는 여친에게 바칠 빼빼로를 한가득 채운 종합선물세트 크기의 선물을 신주단지 모시듯 가슴에 품고 까사미아 문지방을 넘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아줌마에게 빼빼로 과자 좀 달라고 했더니, 역시나 콧방귀를 뀌며 못들은 척하더라고요. 포장지 위에 적은 여친 이름 옆에 웬 하트 무늬를 그리 많이 그리는지. ‘고 녀석들~ 참! 한창 좋을 나이지.’ 어~ 이 말은 어릴 적에 어른들에게 많이 듣던 말인데, 이제는 아줌마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지 뭡니까.

아이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면 다들 꿀 먹은 벙어리인데, 욱은 차근차근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합니다. 자신의 일상사를 자연스럽게 풀어놓습니다. 엄마 때문에 열 받은 이야기, 전도사에게 주먹을 날리고 교회를 종친 이야기, 학교에서 교사에게 대들었다가 벌점 받은 이야기, 포경수술 이야기 등등.

“학교도 가기 싫고, 교회도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는 욱이가 어떻게 까사미아에는 자주 오는 거야?” “아저씨, 아줌마가 저희에게 잘 해주시잖아요. 맛있는 스파게티도 먹을 수 있고요.” 그런 욱에게 친근감이 생깁니다.

▲ 까사미아 마당 전체를 덮은 눈을 치라고 하면 벌써 도망 갔을 녀석들이 놀이 삼아 설렁설렁하니 재미있나보다. ⓒ김용길 기자

하루는 큘라 아줌마가 무슨 말을 했는데 욱과 같은 교회 다니는 희가 잘못 알아듣고 “포경?”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누구는 얼마 전에 포경수술을 했는데, 엄청 아파서 고생하고 있다나. 나는 방학 중에 할까?”라며 킥킥 대고 웃었습니다.

아줌마는 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 “너희들 교회에 다니니 성서를 읽어 보았겠네. 포경에 대해 성서에 나오는데 아는 사람?” 다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고 시선이 모두 아줌마에게 쏠렸습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할례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포경수술이야. 할례는 성인입문식에 해당하는 거지.” “왜 그 수술을 해?”하고 욱에게 묻자, “여자들이 그래야 좋아한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성’은 생식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인간성의 여러 면과 관계된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또한 성은 어두운 곳에서 비밀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석상에서 건강하게 나누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맛있는 간식이 들어오면 전화 할 테니 핸폰 번호 알려달라고 했더니, 서슴없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며칠 후, “명청(욱의 애칭, 명랑 청소년)아! 특별 간식 먹으러 와라, 큘라 아줌마”라고 문자를 날렸더니, 바로 “O.K.!” 라고 답신이 왔습니다. 간식을 먹으러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쏜살같이 달려왔습니다.

한번은 간식을 준비하는 동안 책을 읽으라고 했더니, “제 나이에 책 읽게 됐어요?”하며 욱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큘라 아줌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어이가 없는 사람은 아줌마인데 말이죠. ‘그럼, 책은 누가 읽나? 초딩이…’ 그들에게 책 읽는 것도 공부처럼 따분하게 여겨지나 봅니다. 그 이후로 중딩들에게 책 읽으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초딩들에게는 읽으라고 권하지만요.

▲ 그 어느 때보다 지진한 표정으로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고 있는 훈 ⓒ김용길 기자

욱이와 같은 반 친구여서 까사미아를 알게 된 훈은 중딩2 때부터 놀러옵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얼굴선과 행동에서 소위 말해 여성성이 많이 묻어납니다. 친구들은 핸폰 게임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훈은 주방에 들락날락 거리거나 아줌마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하여 왔다 갔다 합니다. 한 번은 저녁 찬거리로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고 있었는데 심심했는지 아줌마 주위를 기웃거렸습니다. “훈! 집에서 엄마 도와주니?” “간혹 설거지해요.” “그래? 고구마순 껍질 벗겨볼래? 재밌어.” 훈은 슬그머니 옆에 앉아 열심히 껍질을 벗겼습니다. 큘로 아저씨는 마당 한쪽으로 이미 치운 눈을 다시 정리하겠다며 구와 함께 밖으로 나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며 신나게 눈 쓸기 놀이를 했습니다.

김려령 소설의 주인공 ‘완득이’처럼 공부에는 관심도 열의도 없는 청소년들에게 다른 모든 관심을 끄고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중딩2를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생의 에너지를 가슴에 가득 품고 하루하루를 버거워하는 그 녀석들.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청소년이여! 절망하지 말고 씩씩하게 커다오!’

최금자 (엘리사벳,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 대표,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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