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떠오른 아침 해는 박근혜 씨에게 초점을 맞추어 주었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선거기간 내내 그의 목을 둘러쌓던 붉은색 목도리는 분명 수많은 사람들에게 승자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건 불편한 진실이기보다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밤을 지새운 탓인지 입은 텁텁하고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화두는 하나였다. 21세기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그가 독재자(Strongman)라고도 불린 선친인 박정희의 전철을 밟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수많은 피를 흘린 대가로 이룩한 민주주의(Democracy)는 처음부터 그랬지만 왕정의 변형이 아니라 철저한 민중들(demos)의 지배(cratia)이기 때문이다. 즉, 국민들이 박근혜 당선인의 목을 보호한 목도리의 붉음에 길들여질 것인지 아니면 그를 지지했든 혹은 다른 입후보자를 지지했든 그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요구에 그가 길들여 질 것인지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 ⓒ민중의소리

박근혜와 국민, 누가 누구에게 길들여질 것인가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만난 여우와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어린 왕자가 재촉하는 ‘길들여짐’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여우는 그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그 하나, 사람들에게 ‘길들여짐’이란 그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굴레 속에서 학습된 상태를 말한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우린 우리가 길들인 것밖에 이해할 수 없어.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것을 이해할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아.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진 물건만 산단 말이야. 그러니 어딜 가도 우정을 살 수 있는 가게는 없어. 사람들에겐 이제 친구도 사라질 거야” 라고 한다.

또 하나의 ‘길들여짐’은 인연을 맺는 것이라고 여우는 이야기한다. “넌 아직 나에게 수많은 다른 꼬마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꼬마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 난 네가 필요 없어. 물론 너에게도 내가 필요 없겠고. 너에겐 내가 다른 수많은 여우들과 똑같은 여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가 필요하게 된단 말이야. 넌 나에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될 테니까….”

대통령 당선인이 된 박근혜 씨는 그동안 여우가 말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굴레 속에서 학습된 상태’이다. 그러기에 그는 스스로 길들인 것밖에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일정 속에서 더 이상 어떤 것을 이해할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 역시 불편한 진실이기보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이른바 ‘성공하지 못한’ 전임 대통령들과 현재의 대통령은 여우의 우려처럼 스스로에게 길들여졌을 뿐이었다.

여우가 말한 ‘진정한 길들여짐’처럼 대통령은 이제 국민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이어야 한다. 그 인연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인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목도리를 풀어야한다. 권력이 품은 아이콘 빛깔, 그것이 붉은색이든 노란색이든, 하늘색이든, 오렌지색이든, 보라색이든 그 빛깔을 내려놓고 국민 즉 민중의 요구 속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만든 굴레의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작금에 펼쳐진 기쁨과 희망, 슬픔과 눈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한 정당, 한 정파, 한 이념을 가진 이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모든 것의 자리에 선다는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자신과 다른 빛깔의 국민들과도 인연을 맺어야

박근혜 당선인에게 한국주교회의는 축하메시지를 통해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민들의 노고에 힘입어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루었고, 또 밤낮으로 땀 흘려 일한 근로자들, 민주주의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분열과 반목 속에 상처받은 국민들 마음을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 당선인이 분명히 새겨들을 말이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또 말했다. 자신은 빵을 먹지 않아 밀은 자신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그러기에 밀밭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 당선자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굴레 속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하여 여직 밀로 만든 빵을 먹지 않았다면 빵을 먹음으로서-새삼스럽게 순대나 오뎅, 붕어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밀과 밀밭과의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며 노란 목도리, 보라색 목도리에 응어리진 마음들과도 인연을 맺어 그곳의 국민들과 ‘사랑’이라는 단어에 길들여져야 할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수도 없이 되뇌었던 “국민에 의한, 국민의, 국민을 위한” 정치를 새롭게 한다고 했을 때 박 당선자가 믿고 있는 국민은 도대체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어린왕자의 마음으로 여우에게 물어서 진정 국민을 만나야 할 것이다. 신앙인에게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야 하듯 18대 대통령 당선자인 박근혜 씨도 국민에 의한 길들여짐과 삶이 분리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유철 (한국작가회의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대표.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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