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제8차 심포지움에서 교회 민주화 문제를 다뤄

지난 10월 29일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원장 함세웅 신부)이 주최한 심포지움에서 한국교회의 민주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심포지움은 ‘민주화 여정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오후 2시부터 진행되었는데,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진단 분석하는 가운데 1987년 이후 교회가 민주화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지경이 되어 이제 교회 안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사회 복음적 요청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날 제1발제는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이하 연구원)의 기획위원인 김인국 신부(청주교구 금천동 성당), 김일회 신부(인천교구 환경 노동사목 전담), 김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맹제영 신부(의정부교구 덕소성당), 오민환(연구원 상임연구원)이 공동으로 연구하여 발표하였으며, 이어서 안승길 신부(원주교국 부론성당)의 제2발제가 이어졌다. 논평자로는 이덕우 변호사와 황창희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가 참여하였다.


한국교회는 역사와 민족공동체 앞에서 참회하여야

함세웅 신부는 기조강연을 통하여, 안중근 의사와 삼일독립운동 당시 용산신학교 학생들이 제도교회의 고위성직자들에 의해 상처받은 경위를 밝히고 신사참배 등 부일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교도권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민족과 함께 걸어오지 못한 제도교회의 책임자들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음을 밝혔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일제 강점기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새기지 못한 점, 독재정권하에서 인권회복과 민주화 여정에 함께 하지 못한 점, 조국분단 상황에서 일치와 화해를 위해 신앙인답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점, 이 모든 민족사적 결함과 죄를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역사와 공동체 앞에서 진지하게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수구언론에 휘둘리는 고위성직자

한편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교회를 진단한 제1발제는 생명평화, 언론, 교육, 통일 등의 주제를 둘러싸고 한국교회가 어떠한 입장을 취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진단하였다. 김일회 신부는 이 자리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운동,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둘러보면서, 가톨릭교회의 공식교리가 생명존중과 평화주의의 입장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교회는 대부분의 사안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김인국 신부는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약자들의 아픔과 양심세력의 외침을 대변하던 교회가 특히 1997년 정권교체를 기점으로 현실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고 수구언론의 농간에 휘말려 예언적 말씀 선포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고 진단하였다. 그 사례로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을 곡해하여 이용하는 수구언론의 행태를 고발하고, 그 빌미를 준 고위성직자들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지적하였다. 교회는 그동안 사립학교법이나 황우석 사건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교회의 이해관계에 맞물린 사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지를 분명히 표명하였으나 정작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정위평화위원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주교들이 줄곧 침묵을 지킴으로써 수구언론의 입장에 동조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김 신부는 지난 20년간 가톨릭교회가 “밖으로는 교회의 말씀이 세상의 말들에게 휘둘리는 폭행을 겪고, 안으로는 자생적으로 피어나는 말씀의 싹을 분지르는 잘못을 범해 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톨릭 교육에 자기 정체성이 남아 있는가

김정용 신부는 가톨릭 교육이 길을 잃어버렸다고 전제하고, 가톨릭계 학교들이 시장주의와 경쟁주의, 입시중심 교육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결국 ‘가톨릭’ 교육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진단하면서, 이런 마당에 사립학교법을 둘러싸고 ‘시학운영의 자율성’에 초점을 두고 반대운동을 하거나 때로 투명성,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미 우리 가톨릭교육은 다른 학교와 차별성을 갖는 고유한 특성이나 지켜야 할 학교 이념 자체가 이미 실종된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신부는 먼저 가톨릭학교의 존재이유 자체를 살펴보아야 하며, 대조사회로서의 학교공동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주안점은 기존교육의 장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에 대한 일차적 관심 속에서 이들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대안학교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심포지엄에 참석하지 못한 맹제영 신부를 대신하여 발표를 한 김정용 신부는 민족화해 사목과 관련하여, 한국교회의 사목은 평화통일론에 기초한 민족교회운동이 대세이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몇몇 주교와 한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지도자들이 흡수통일론에 기초한 재건주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을 우려하였다. 이들은 대북지원사업에 무관심하며 대신에 새터민 지원사업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고, 북한 교회를 어용교회와 지하교회로 나누어 남한교회의 주도로 북한 지하교회 육성을 꾀하는 비현실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칭송만 있는 교계언론, 새로운 언론이 필요해

두 번째 발제에서 안승길 신부는 이런 한국교회의 문제를 종합 진단하며 해결책을 모색하였다.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한국교회 역시 민주주의에 근거한 상식이 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이런 교회발전을 위해 기존의 교계언론을 넘어서는 독립적 언론이 반드시 필요하며, 세상의 징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현재 한국교회 기관지인 평화신문과 방송, 가톨릭신문과 여타 교회잡지들은 교회의 공지사항이나 교도권의 지시를 보도하는 게 대부분이며, 교회의 진솔한 자기반성과 쇄신요구를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위성직자의 문제는 칭송만 있을 뿐 문제는 감추어지기 마련이어서 정보화 시대인 요즘엔 더 의혹과 불신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인 자리에 있는 이들에 대한 감시기능을 하는 언론을 통하여 공동선을 요구하는 사회적 요구를 교회도 수용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안승길 신부는 교회 민주화를 위한 쇄신의 과제로 먼저 성직자들의 쇄신을 요청하면서 (1) 하느님 백성의 투표를 통하여 교구장 및 교회행정 담당자를 선출할 것, (2) 주교직(교구장) 선임과정을 공개하고, 교구장을 선출해야 하며 임기를 제한해야 할 것, (3) 교구간 불균등한 재정 및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구간 장벽을 낮추고, 교구는 유지하되 사제들을 초교구적으로 이동 배치할 것, (4) 한국교회 최고 교권자들은 시대의 징표와 흐름을 인식하고 현장에 투신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생생한 실천을 내포하는 교도권으로 거듭날 것, (5) 제도교회는 사목을 통치나 권력이 아닌 봉사로 이해함으로써 신자들에게 무조건 순명을 요구하는 우민화정책을 포기할 것, (6)) 남한교회 중심의 성장주의, 팽창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북한의 신앙공동체 역시 참 가톨릭교회임을 인정하고 대화상대로 삼아 교류할 것을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안승길 신부는 “교회쇄신은 민주주의 정신과 융합하지 않으면 민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고 하면서, 교회가 성직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민중)을 위한 것이고, 그 백성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구원이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그동안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논의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이제는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여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오히려 교회의 민주화와 쇄신을 강력히 주문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한상봉 200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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