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파노라마 -4]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인하여 안타깝게 나세르 호수 속으로 수장(水葬)되어버린 수많은 이들의 애달픈 사연과 함께, 이집트 아가씨와의 사랑 때문에 엽기적인 도주행각을 벌이다가 가족들과 전혀 예기치 못한 이별을 감수해야만 했던 누비아 화공의 가슴 아픈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드디어 신전내부에서 내가 원하던 사진촬영을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아스완으로 향하는 막배가 출항을 서두르고 있었다.

열흘 후에 멤피스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황급히 선착장으로 달려가, 뱃전에 오르자마자 방금까지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주었던 누비아 화공과 그의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득히 담아서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인샬라, 인샬라~.

엇,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모든 일이 신의 뜻대로 되기를’라는 의미를 지닌 이슬람식 작별인사를 건네면서, 낙타가 그려진 원색 보자기를 휘날리며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흔들어대는 나를 향하여, 누비아 화공과 그의 친구들은 한사코 경건한 자세로 가슴에 십자성호(十字聖號)를 그으며 “Cross your heart”라고만 되뇌는 것이 아닌가.

▲ 누비아 마을 전통가옥 벽면에 그려진 아부심벨 축제 광경. ⓒ수해

암튼 뜬금없이 보여주는 누비아 친구들의 경건하기 그지없는 태도는, 순간적으로 나를 머쓱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은근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방금까지 나를 헌신적으로 도와준 건 도와준 거고,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페리호 갑판 위에서 졸지에 웃음거리로 만들다니. 그들이 잠시나마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춰서 아랍인 특유의 과장된 제스처로 작별의 인사를 건넸으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배를 움켜잡고 웃지는 않아도 되련만은. 자기들이 무슨 고행의 가톨릭(Catholic) 수도승도 아니면서 경건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묵묵히 가슴에 십자가만 그어대니까, 상대적으로 나의 행동만 더욱 과장되어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디 두고 보자. 멤피스에서 다시 만나면, 그땐 교묘한 방법으로 왕창 골탕을 먹여버려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때까지 나를 쳐다보며 폭소를 멈추지 않는 짓궂은 여행자들의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손으로 얼굴을 절반쯤 가린 채 아부심벨 선착장 쪽을 힐끔거리며 뒤돌아보자, 람세스 2세의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던 야망이 통째로 담겨있는 거대한 암굴신전도, 고행의 수도승을 연상시키던 융통성 없는 누비아 화공과 그의 친구들의 모습도, 광활한 우주의 한 점 티끌이 되어 속절없이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다.

▲ 나일 강의 흰 백합, 펠루카. ⓒ수해

나세르 호수의 푸르른 물살을 가르며 섬과 섬 사이를 교묘하게 누비면서 질주하는 페리호를 타고, 다시 아부심벨에서 아스완으로 향하는 길. 내내 방금 보여준 누비아 친구들의 경건하기 그지없는 태도와 그들이 줄기차게 가슴에 긋고 있던 십자성호가 상징하고 있는 의미에 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느라고 여념이 없는 사이, 어느덧 한 송이 갓 피어난 백합 같은 새하얀 돛폭을 휘날리며 나일 강 물살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펠루카(Felucce, 이집트 나일 강에 떠다니는 전통적인 흰 돛단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거대한 페리호는 나일 강의 첫 번째 여울목에 자리하고 있는 아스완 선착장에 당도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나일 강에는, 아스완과 수단의 국경 지역 사이에 물살이 거센 여섯 군데의 여울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터랙트(Cataract)’라고 불리는 이 급류지대에는 낙차가 심한 폭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바닥에 큰 바위가 많고 물살이 거세어서 펠루카와 같은 재래식 소형돛배는 지나다닐 수가 없다.

이집트 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유람선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는 아스완 선착장에 당도하자, 뱃사공으로 보이는 어떤 아랍인 두 명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혹시 펠루카를 타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펠루카의 우수한 성능과 세련된 운항 스케줄에 관하여서 이런저런 달콤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땡! 성의는 고맙지만 일단 모든 설명은 생략하고, 무조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선착장 맞은편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엘레판티네 섬으로 건너가자고 말했다. 고대 이집트 왕조시대에 남부 국경지역의 주요한 군사기지 및 교역 거점이었던 이 섬은, 바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 강의 신화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믿었던 최고의 성역(聖域)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천상의 강’이라고 부르며 신성시하는 나일 강의 근원이, 바로 이 엘레판티네 섬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믿었다. 엘레판티네라는 지명의 어원은, 이 섬이 고대 이집트 왕조시대에 순금과 화강암과 함께 아스완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교역필수품이었던 상아(Elephant, 코끼리)의 집산지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엘레판티네 섬의 암굴 분묘군. ⓒ수해

파피루스 우거진 강변을 따라서, 흰 돛폭을 유유히 휘날리며 엘레판티네 섬으로 향하는 펠루카 위에서 바라보는 한낮의 나일 강 정경은, 며칠 전 밤에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아스완 선착장을 출발한 낡은 흰 돛단배가 이윽고 엘레판티네 섬의 작은 선착장에 당도하자, 먼저 물이끼가 잔뜩 끼어 있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어딘가 모르게 동양적인 분위기를 물씬 발하는 아스완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아스완과 누비아 지방에서 발견된 고대유물들을 다수 전시하고 있는 아스완 박물관은, 때마침 내부공사가 한창이었다.

한동안 잠정적인 휴관(休館)상태에 돌입하고 있음을 알리는 사과의 팻말이 정중하게 걸려 있는 출입문 앞에 서서 망설이다가, 아쉬운 마음을 대강 추스르고 밖으로 나와 누비안 마을 뒤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걸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통 짙붉은 모랫더미로 뒤덮여 있는 암산을 향해 걸어 올라가 보자, 엘레판티네 섬 중턱의 완만한 구릉을 따라서 일렬로 도열하고 있는 ‘귀족의 무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자연 상태의 화강암을 깎아서 만들어놓은 암굴분묘(岩窟墳墓)였다.

내세(來世)를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은 뒤에 반드시 부활(復活)할 것이라는 확신 하에 만들어놓은 미라(Mummy)와 함께, 그들의 내세관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암굴무덤 속의 벽화들을 차례로 둘러 보고나서, 다시 ‘바람의 아버지 탑’이 자리하고 있는 암산 정상을 향해 걸어올라 갔다.

아스완 시내가 한눈에 조망되는 바위산 정상에 오르자, 저 멀리 금빛노을이 무너져 내리는 폐허의 크눔(Khnum, 숫양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는 고대 이집트의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신전 너머로, 유난히 높이 치솟은 콥트 교회(Coptic Church)의 첨탑 위에서 눈이 부시도록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은빛 십자가 한 쌍이 화살처럼 아프게 시야에 들어와 박혔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아부심벨 선착장에서 헤어진 누비아 화공과 그 친구들의 모습이 뇌리를 확 스치고 지나가면서, 갑자기 선명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선착장에 서서 가슴에 하염없이 십자성호를 긋고 있던 누비아 친구들은, 바로 콥트교도들이었단 말인가.

▲ 엘레판티네 섬 정상에서 바라본 콥트교회 전경. ⓒ수해

이집트 고고학 당국의 끈질긴 집념과 연구결과에 힘입어, 최근까지 발굴조사가 이어지고 있는 엘레판티네 섬의 고대 주거(住居)유적과 현재의 주거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새로운 생활공간을 창출해내고 있는 크눔신전 주위로, 금빛 노을이 무너져 내리는 곳마다, 모든 사물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활기를 띠며 부활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샤를 보들레르의 천재성을 충분히 입증해주는 한편의 시(詩)가 저절로 되뇌어졌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에 살아 있는 기둥들은
때때로 어렴풋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인간이 상징의 숲을 통해 그곳을 지나가면
그 숲은 다정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광막한
어둡고 그윽한 조화 속에서
저 멀리 어울리는 긴 메아리처럼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합한다.

어린아이 살결처럼 신선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목장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또 썩고, 짙은 독한 향기들도 있어
호박,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들로 퍼져 나가
정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한다.
 

 
 
수해 (기행문학가)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명상사원과 문화유적지를 순례하다가,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지은 책으로 시집《산 두고 가는 산》과 동아시아 기행 에세이《예정된 우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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