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교서를 분석한다 1] 의미 있는 사목교서가 되기 위한 요소

교구별 연두 사목교서의 정기 발표는 1990년대부터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이 되면 교구장들은 사목교서(pastoral letters)를 발표한다. <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사목교서는 “교구장 주교가 교리, 신앙, 규정 등에 관하여 자신의 교구 내 모든 신자들, 즉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에게 내리는 서한 형식의 공식 문서”로서 “주교 고유의 사목권과 교도권의 표현”이다. 사목교서 가운데 한 해를 시작하면서 대림시기에 발표되는 연두 사목교서는 한 해 사목 목표와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신치구(<한국천주교 교구장 연두 사목교서의 역할>,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 19쪽)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회에서 주교 사목교서가 처음 발표된 것은 1857년 “장주교윤시제우서(張主敎輪示諸友書)”이다. 그 뒤로도 필요에 따라 공동 사목 교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지만(이를테면 1950년 2월 23일에 발표된 주교단 연합 교서 “새남터 순교 기념탑 건설에 대하여”), 연두 사목교서가 해마다 발표된 것은 1980년대 뒤의 일이다. 한국 천주교 200주년 행사(1984년)와 제44차 세계성체대회(1989년)를 준비하면서 주교단은 공동 사목 교서를 해마다 발표하였다. 1990년 뒤에는 연례 공동 사목 교서가 본당 사목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교회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평가되면서 교구별로 연두 사목교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신자들이 교구장 사목방침을 잘 모른다

교구장 연두 사목교서는 그 해 교구가 힘을 기울여 해야 할 바를 밝히고 있다. 실천하려면 먼저 알아야 하는데, 각종 조사를 보면 신자 대부분 교구장 사목 교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 이루어진 전국 조사인 가톨릭신문 창간 80주년 기념 신자 의식 조사 보고서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2007년)에 따르면, 교구장 사목 방침에 대한 인지도는 낮은 편이었다. ‘전혀 알지 못 한다’는 응답이 30.1%, ‘거의 모르는 편’이라는 응답이 28.6%로 절반이 훨씬 넘는 58.7%가 교구장 사목 방침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매우 잘 안다’는 응답은 2.5%, ‘어느 정도 안다’는 응답은 14.7%로 17.3%만이 교구장 사목 방침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구역장·반장도 마찬가지이다. 1996년 인천교구 사목국 의뢰로 우리신학연구소가 수행한 <소공동체 사목계획 수립을 위한 구역장, 반장 의식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구역장, 반장의 43.5%만이 교구 사목 지침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하였다(잘 4.0%, 어느 정도 39.5%).

사목교서 작성 과정, 개선되어야

서울대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가 의안 준비를 위해 실시한 교회운영 관련 성직자 대상 설문조사(2002년) 결과를 보면, 사목교서에는 교구 장기 비전과 목표를 바탕으로 사회 현안과 교회 현실에 대한 분석과 대안 제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교구장 사목 교서에 담아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교구의 장기 비전과 목표’(54.8%), ‘사회 현안에 대한 복음적 식별과 대안 제시’(13.6%), ‘교구 현실에 대한 객관 분석과 대안 제시’(10.6%), ‘사목 분야 전반에 대한 방향과 지침 제시’(7.5%), ‘현재 각 본당에서 집중해야 할 사목 과제’(6.5%), ‘신자들의 신앙생활 쇄신에 대한 권고’(3.5%), ‘교구민들의 바람에 대한 교구장의 사목 방침’(1.5%)을 꼽았다.

이 조사에서 사제들은 현재 교구장 사목 교서 작성 과정에 가장 많이 의견이 반영되는 사람으로 교구장(52.8%)과 교구청 꾸리아 사제(26.1%)를 꼽고 있다. 이는 ‘교구청 꾸리아 사제들이 교구 현안을 중심으로 초안 작성→교구장 인준’이라는 현재 사목교서 작성 방식을 반영하고 있는 결과이다. 반면 누구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게 바람직하냐는 질문에는 본당 사제(48.2%), 교구장(33.2%), 지구장 사제(7.5%), 평신도 지도자(4.5%), 교구청 꾸리아 사제(3.0%)의 순이었다. 곧 본당 사제는 현재 사목교서 작성 과정에서 자신들이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며 적극 참여하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수도자 대상 설문조사(2002년)에서는 평신도 지도자(27.1%), 본당 사제(26.7%), 수도자(14.3%), 교구장(14.2%)의 순으로 나타났다. 곧 사제보다 평신도 지도자 의견을 더 반영해야 한다고 했고, 사제 대상 조사에서는 전혀 반영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조사된 수도자 의견도 반영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교구장 사목 교서의 바람직한 작성 과정에 대한 의견에서도 드러난다. 사제들은 바람직한 방법을 ‘지구 사제 모임을 통한 의견 수렴→사제평의회 초안 작성→교구장 인준’(65.3%)을 가장 많이 꼽았고, 수도자들은 ‘별도 소위원회가 각계 의견 수렴 뒤 초안 작성→ 교구장 인준’(48.0%)과 ‘지구 사제 모임을 통한 의견 수렴→사제평의회 초안 작성→교구장 인준’(46.5%)의 순으로 꼽았다.

교구장 사목교서가 본당에서 실천되려면

위 조사에 따르면, 사제의 53.2%가 교구장 사목교서를 본당 사목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매우 적극 8.0%, 적극 45.2%). 2명 가운데 1명의 사제만 사목교서를 본당 사목에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본당 사목에 대한 교구장 사목 교서의 도움 정도는 57.3%가 도움이 된다고 했다(매우 3.0%, 어느 정도 54.3%). 본당 사목에 반영하는 비율과 도움 된다는 비율이 비슷한 수준이다.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날까? 교구장 사목교서를 본당 사목에 반영하지 않는 이유로 ‘현재 본당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가 42.7%, ‘현실성과 구체성이 없어서’가 32.9%, 작성 과정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11.0%였다. 곧 사목교서가 현실성과 구체성을 갖도록 하고, 작성 과정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각 본당의 교구장 사목 교서 실천에 대한 평가 필요성에 대해서는 60.8%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매우 12.1%, 어느 정도 48.7%). 평가는 실천을 강제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앞으로 사목 교서를 작성할 때 객관 기초 자료를 삼을 수 있다.

의미 있는 사목교서가 되기 위한 10가지 요소

사목교서는 “주교 고유의 사목권과 교도권의 표현”이기에 교구장 주교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이다. 사목교서가 어떻게 작성되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실천되는가는 그 리더십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사목교서가 의미 있게 작성되고 실천되기 위한 요소들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1) 복음 충실성 : 사목 비전과 목표가 복음 정신에 충실한지를 성찰하고, 혹시 비복음 요소가 담겨 있지 않은지 검토한다.

(2) 열린 참여 : 작성 과정에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통로와 절차를 마련한다.

(3) 시대 성찰 : 세계나 한국 사회의 흐름과 시대 요청을 충분히 성찰하고 이에 대해 응답하도록 한다.

(4) 지역 특성 : 교구별로 관할 지역의 사목 특수성을 감안하여 의제를 선정하고, 지역사회에도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한다.

(5) 목표 구체성 : 비전과 목표를 뚜렷하게 제시한다.

(6) 구체 실천 방안 : 제시한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 방안이나 세부 사목 방침, 실행 주체, 앞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 근거 등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또한 실천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평가를 하여, 다음 사목교서 작성 때 그 평가 결과가 반영되도록 한다.

(7) 실현 가능성 : 달성 가능한 수준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그 기준 근거도 이치에 닿아야 한다.

(8) 연속성 : 한 해에만 단기로 해당되는 사안이 아닌 중․장기 안목으로 지속되어야 할 사목 방침에 대해 그 단계별로 뚜렷하게 방향을 제시한다.

(9) 통합사목 : 특정 사목 영역에만 편중되지 않고, 교회가 다루어야 사목 분야별(새복음화, 재복음화, 사회복음화, 인프라 등)로 균형감 있게 방향 제시를 하고, 각 사목 대안이 통합성을 가지도록 한다.

(10) 호소력 : 교회 구성원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효과 있게 설득. 더불어 사목교서가 구성원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 방법도 모색한다.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200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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