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선교 일기 - 이윤주 수녀]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라는 영화에서처럼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기만 한 시기가 또 찾아왔다. 차가워진 날씨에 흰 눈이 내리고, 질척해진 거리마다 성탄노래가 울리며 수많은 장식용 전구가 저마다의 색깔을 자랑하는 시기가 바로 12월이다. 그런 12월의 풍경에 익숙했던 내가 적도 아래편 남반구로 옮겨와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12월만 되면 유독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선인장조차도 타들어가게 하는 뜨거운 태양 볕과 싸우며 흰 눈은커녕 한 방울의 비라도 내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의 12월을 지내고 있다. 성탄이 가까워질수록 날씨는 점점 더 더워진다. 그러니 시간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수밖에.

선교사로 여러 곳에서 살며 여러 모습의 성탄을 지내왔다. 가는 곳 마다 달랐던 성탄의 모습은 그 문화와 사회가 어떻게 성탄을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또한 성탄의 메시지를 각기 다른 모습과 방법으로 내게 전해주었다. 함박눈도, 귀에 익은 성탄 노래도, 화려한 트리 장식도 없는 이곳 코차밤바로 옮겨와 나는 세 번째 성탄을 맞이하고 있다.

구원의 시기 성탄, 그 앙상한 몸 안에 한 끼 밥을 넣을 수 있다면

성탄과 연말이 가까워지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지방에서 이 도시로 몰려드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게 부쩍 늘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강렬한 갖가지 색깔로 채워진 고유한 복장을 한 원주민들이 외진 산골마을에서 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먼 길을 돌아 이 도시로 몰려와 거리를 채운다. 이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에 갑자기 많이 보이면 그것은 곧, 성탄과 연말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그렇게 이 도시로 몰려든 원주민들은 거리마다 모퉁이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구걸을 시작한다. 노인도 있고, 서너 살 꼬마아이도,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들도 있다. 다들 하나같이 그 거칠고 앙상한 손을 내밀며 동전 한 닢의 자비로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게 해달라고 애처롭게 호소한다.

▲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여인 ⓒ이윤주

그 복장의 고유한 색깔과 독특한 문양으로 그들이 어느 지방에서 온 원주민들인지 금방 알 수 있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면 어떠한 삶을 살다가 왔는지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황무지와 다름없는 척박한 땅에서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었던 그들은 농사를 지을 수도, 일거리를 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가난 속에 배를 주려가며 12월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이 도시로 나온 것이다. 그렇게 12월은, 성탄이 들어있는 12월은 그들에게 구원의 시기가 된다.

나는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왜 그들은 하필 12월에 도시로 나와 구걸을 하는 걸까. 이 원주민들에게는 그저 이 12월이 ‘이유는 모르지만 벌이가 괜찮은 달’일 뿐인가 아니면 특별히 이 시기에 왜 사람들이 지갑을 너그럽게 더 잘 여는지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오는 것일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며 성탄이 주는 의미도 알고 있겠지만, 대부분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이 원주민들에게는 이 12월이 ‘일 년 중의 한 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되기 전에 나에게는 12월이 ‘길 많이 막히고 정신 사나운’ 일 년 중 마지막 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그 존재로서 사랑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며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특별히 이 시기에 많이 겉으로 보이니, 그것을 통해 도움을 얻는 이 원주민들에게도 성탄이 들어있는 12월은 특별하고도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어느 쪽이어도 좋을 것 같다. 그들이 성탄의 의미를 알고 오는 것이라면 그들의 손에 쥐여지는 동전 한 닢 한 닢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특히 이 시기에 더 많이 나누어지고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할 테니 그것도 예수님 보시기에 좋은 일 일 것 같다. 아니면, 예수님이 누구인지 성탄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 왔지만, 그저 사람들의 마음이 더 넉넉해지는 이 시기를 이용해 그들이 그 앙상한 몸 안에 한 끼 밥을 넣을 수 있다면, 예수님도 당신의 탄생이 그렇게 이용되는 것을 싫어하실 것 같지는 않다.

▲ 낡은 라디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꼬마(왼쪽), 공원 분수대 물로 아이를 씻기는 엄마(오른쪽) ⓒ이윤주

그것이 성탄의 또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교인들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니, 성탄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산골에서 먼 길을 돌아 성탄을 이용해 고픈 배를 채우러 온 원주민들에게도 예수님의 사랑은 언제나 충만하다는 성탄의 메시지를 날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체험하면서 말이다.

이 도시에는 화려하고 눈부신 성탄 장식은 없지만, 이 원주민들의 고유한 복장이 보여주는 가지가지의 아름다운 색깔을 즐기느라 이맘 때 쯤에는 항상 나의 눈이 너무나도 즐겁다. 색색 깔의 모자와 치마를 입고 쓰고 낡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어설픈 춤을 잠깐 보여주고는 동전 한 닢을 받으려 그 부끄러운 손을 내미는 네 살 꼬마가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이름을 묻고 손을 꼭 잡아준다. 그 잡은 손 안에 나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이윤주 수녀 (메리놀 수녀회, 볼리비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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