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소녀는 열여섯 살이고 말기암 환자이다. 무엇이 연상되는가? 소독약 냄새, 수술 자국… 파리한 얼굴로 병실 침대에 기대앉아 팔에는 여러 개의 링거 줄을 꽂은 모습? 빡빡 민머리에는 모자를 쓴 헐렁한 환자복과 핏기 없는 표정? 곁에 눈물자국에 짓무른 채 간병중인 가족이라도 앉아 있으면 우리가 익히 보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일 터다.

삶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는 것

 
허나 영국 소녀 테사(다코타 패닝 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파도 안 아파도 삶은 충만해야 한다. 영화 <나우 이즈 굿(Now Is Good)>은 그런 테사의 이야기다. 악성 림프종에 걸렸다고 해서,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열여섯 살이 갑자기 노인이 되는 건 아니다. 테사는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모든 삶의 경험과 감각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한다. 또래들과 똑같은 말썽과 실수의 기억을 갖고 싶어 한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

테사에게는 살아 있다는 실감이야말로 그날그날의 목표다. 심지어 도둑질을 단짝친구 조이와 공모해 실행하고 날아갈 듯이 즐거워한다. 아쉽게 성공을 못해서, 경찰관 앞에서 혼나고 아버지가 불려오고야 말았지만. ‘아픈’ 아이에게 미디어가 응당 기대하곤 하는 일찍 철든 모습 따위는 없다. 삐딱하게 굴고 불량스런 일탈로 어른들의 걱정거리가 돼보는 건 물론, 찐한 연애와 무면허운전 및 금지 약물까지도 다 해보고 싶은 게 소원이다. 그게 사는 거고 현재를 즐기는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병실에 누워 있기를 거부하고 자연요법을 택한 테사는 나름 지역사회의 유명인이다. 병원 치료는 최소한의 것만 받는다. 비록 학교를 다니지는 못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바쁜 일과가 있다. 그래서 말기암인데도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병마와 싸우는 용감한 소녀’라는 취지의 라디오 생방송 인터뷰에도 나가게 되는데, 목록 일부를 털어놓으며 방송국을 경악시킨다. 진행자가 놀라 급히 마이크를 끌 정도였다. 하지만, 아픈 것만 빼면 그게 십대 아닌가. 테사는 자기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현재가 꼭 그렇게 최악인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사랑이, 진짜 가슴 뛰는 사랑이 너무 하고 싶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아 이대로 죽을까 걱정이다.

내일 죽더라도, 사랑만은 포기 못해

테사의 아버지(패디 콘시다인 분)는 원래 회계사였지만 딸의 발병 이후로는 종일 집에 있다. 딸을 돌보는 게 일과다. 요리와 정원 가꾸기, 가든파티도 열심히 한다. 십대 딸을 염려하고 보살피는 모습은 다른 아버지들과 과히 다르지 않다. 가끔 응급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늘 주시하고 있다는 게 좀 잔소리쟁이처럼 보일 뿐이다. 아버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딸이 심각한 상태라는 걸 회피하려는 엄마와는 달리 열성적이다. 딸과 아주 오래오래 같이 살고픈 아버지는 수시로 상처받고 혼자 울기도 많이 하지만 늘 자상하고 따뜻하다. 그런 아버지가 곁에 있지만, 테사는 비밀리에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끊임없이 저지른다.

역대 최고의 사랑스러운 여섯 살이었던 <아이엠 샘>의 꼬마 다코타 패닝은, 명랑한 고집쟁이 테사로 훌쩍 자랐다. 삶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라는 테사의 확신은 견고하다. 관객은 어느새 건강 회복이 아니라 테사가 일상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길, 그리고 마침내 그 응큼 발칙한 소원들을 어떻게든 원대로 이루길 응원하게 된다. 진심으로.

드디어 옆집으로 이어진 정원에서 테사는 아담(제레미 어바인 분)을 만나게 된다. 아담도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일 년 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완전히 무기력해졌다. 대학에는 합격했으나 휴학한 채 집에 칩거 중이다. 그러던 아담이 “나를 보고 기절한 첫 번째 여자”인 테사와 망설임 끝에 어렵사리 연애를 시작한다.

물론 죽을 만큼 힘들다. 상처받을 거라고 말리는 부모들과 세상과, 무엇보다 이별이 두려워 미칠 것 같은 자신의 불안과 싸우며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사랑한다. 사랑만이 사람을 두려움에서 일으켜 세운다. “너 때문에 세상으로 나갈 힘을 얻었고, 그걸 너만은 알아줘야 한다”는 아담의 눈물겨운 바닷가 절벽의 고백은, 왜 테사가 그토록 사랑을 애타게 원했는지 깨닫게 한다.

 
병원에서 죽지 않을 권리

안타깝지만 끝은 예정대로 흘러간다. 영화 <나우 이즈 굿>은 치유의 기적을 얘기하지 않는다. 유일한 기적이라면 벼락처럼 진짜 사랑이 찾아왔다는 점이다. 그 사랑의 정점에서 갑작스레 악화된 병, 서서히 다가오는 마지막을 그대로 보여준다. 슬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목록에는 이제 “너랑 있기... 너랑 있기... 그냥 너랑 있기”뿐이라는 테사의 시간은 점점 짧아지다 못해 붙들 수조차 없어진다.

테사의 마지막은 존엄하다. 마지막까지 집에서, 내 방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누리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파견 나오는 간호사 언니는 적절한 조치와 함께 ‘앞으로 남은 며칠의 일들’을 일러주고, 테사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의 손때가 묻은 가구들과 정원 의자에 앉아 주사와 진통제를 맞을 수 있는 테사. 내 침대에서 고이 잠들 수 있는 테사.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화책을 읽어주던 숱한 정겨운 밤들처럼, 그들 가족은 그렇게 침대 주변에 앉아 인사를 나눈다. 가장 높은 나무 위에 올라 숲을 내려다보던 날과 가장 멀리 가는 파도를 바라보던 순간과 함께 이 또한 테사가 안고 갈 소중한 기억이다.

극장을 나설 때까지 이 아름다운 사람들 때문에 울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테사가 부러워 눈물이 났다. 쓰라린 눈물이었다. 저런 공공의료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성장소설이고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실제 상황이 어떤지는 몰라도 일단 <나우 이즈 굿>의 전개과정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판타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복지국가’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집에서 종일 딸을 돌본 지 4년째지만 조금도 가난해지지 않은 아버지, 언제 어느 때고 병원에서 부담 없이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는 환자, 집에서도 병원 못잖은 의료서비스를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나라.

감히 꿈꾸어 볼 수나 있을까? 병원 시트가 아닌 집에서, 돈 안 내고(!) 모든 가능한 치료를 성심껏 받으며 평화로운 마지막을 맞이하려면, 지금 여기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기다리면 언젠가는 주어질 수 있는 것일까. 진정으로 소망하면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하루라도 그런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보고 싶다. 마음 놓고 아파도 되고 병들어도 사람답게 앓을 수 있을 때만, ‘나우 이즈 굿(Now is Good)'이라는 깨달음은 생의 환희가 될 수 있다.

 
 
김원 (로사, 문화평론가)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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