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권용준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시기를 꼽는다면 17-18세기의 바로크와 로코코시대일 것이다. 바로크 시기는 유럽에서 절대군주제의 확립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때로, 그 예술의 양상이 웅장하고 장엄한 남성적 이미지가 그 특징이다. 반면 그 뒤를 잇는 로코코는 ‘조약돌’이라는 어원이 말하듯,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여성적 이미지의 화풍으로 당시 귀족들의 취향을 대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바로크 시기의 예술적 특징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미술사상 가장 많은 거장들이 다양한 국가에서 서로 다른 개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루벤스와 렘브란트, 푸생을 비롯해 피터 브뤼겔과 반다이크, 프랑수아 부셰 등의 거장들이 단박에 떠오른다. 지금 이들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잔치가 열리고 있으니, 바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미술거장전>이 그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플랑드르 등지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거장 50인이 선을 보이는 잔치이다. 


우선 이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루벤스와 푸생, 렘브란트의 비교이다. 우선 루벤스는 플랑드르의 화가로 예술계에서 예외적으로 부와 권력을 손에 쥐었으며 왕실과 귀족, 여인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사람이다. 그는 서양미술사상 색이 예술의 진실임을 천명한 화가로, 화려한 색감을 중심으로 신화와 성서의 이야기를 주 소재로 삼았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기괴하고 과장된 모습이지만, 그 화려하고 감미로운 색채감으로 인해 그 괴상함은커녕 오히려 무한한 관능의 세계로 관객을 빠져들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이에 반해 푸생은 회화의 진실은 인간의 숭고한 사유와 고결한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라 하여, 루벤스와는 전혀 다른 화풍을 이룩하였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어떠한 관능도 애욕도 없이 엄격한 데생과 차가운 색조를 중심으로 준엄한 도덕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 그 데생이 푸생의 회화 언어인 것이다. 그림의 주제도 대부분 인간에게 도덕적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이야기로 한정되어 있다.

이처럼 푸생이 엄격한 화풍을 통해 도덕적 가치를 실현했다면, 루벤스는 화려하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관능의 세계를 표현했던 것이다. 루벤스를 색의 화가라고 한다면, 푸생은 데생의 화가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이런 다름은 결국 서양미술의 역사를 색과 형태의 갈등으로 달구게 된다. 바로크에 뒤이은 로코코는 루벤스의 산물이며, 그 후의 계몽주의와 신고전주의는 푸생의 사유이다. 또 낭만주의는 루벤스 풍이며, 사실주의는 푸생 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에 비해 렘브란트는 인간 내면의 심리를 오묘하게 묘사하는 필치를 보인다. 색과 데생이라는 조형적 측면보다는 그 회화적 요소들을 적절하게 조합시킴으로써 인간이 순간적으로 취하는 마음의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나이 든 여인의 초상>에서 이런 조형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렘브란트는 테네브리즘이라고 하는 빛에 의한 명암법을 집대성했기에 ‘빛의 화가’라 불린다. 그의 그림에서 이 빛의 효과를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일 것이다.

렘브란트, <자화상>. 1669년. 캔버스 위에 유화, 86 x 70.5 cm.

특히 렘브란트 전시실의 애칭으로 표현된 그의 자화상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미화시키거나 순화시키는 등 전혀 가공을 하지 않은, 그 순간 외모 뿐 아니라 마음상태에 있어서도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그 삶이 루벤스의 것과 비교가 많이 되는 만큼, 나이 들수록 불행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간 그 흔적이 자화상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처럼 렘브란트는 인간의 내면에 녹아 스며든 감정의 은밀함을 조형적 화필로 드러낸 유럽 화단의 위대한 거장이다.


이런 바로크 화가들의 뒤를 잇는 주목할 만한 화가로 프랑수아 부셰를 들 수 있다. 헤라클레스가 침실에서 한 여인과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순간을 그린 그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가 보여주듯, 서양회화사에서 여인의 누드를 가장 아름답고 관능적으로 그린 사람이 바로 부셰로, 프랑스의 로코코 화단을 이끈 사람이다. 로코코란 귀족들의 풍류와 놀이문화를 노래한 예술로, 서양미술사상 가장 아름답고 감미로우며 화려한 이미지를 창출한 화풍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친 에로티시즘으로 인해 제들마이어와 같은 사가들의 질시를 받기도 했지만, 순수한 미술의 관점에서는 그 표현의 아름다움에 경도되지 않을 수 없다.

이외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의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지만, 무엇보다도 이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으로, 바로크 예술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로코코의 순수 미학적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미술거장전: 렘브란트를 만나다> 전시안내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를 비롯한 브뤼겔, 반 다이크 등

17,18세기 서양회화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난다.

9개 섹션으로 나눠 회화 50점과 렘브란트의 에칭 26점이 전시된다.

전시일정 : 11월 7일부터 내년 2월26일까지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권용준/ 안토니오, 한국디지털 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미술비평가,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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