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그간 어데 댕겨온겨?” 골목을 막 들어서는데 샐리가 반색을 하며 반긴다. 어지간히 기다린 눈치다. 내 팔목을 잡아끌고 모퉁이로 가더니 봉투를 연다. 영호가 보낸 성탄카드와 가족사진이다. 샐리의 쪼글쪼글한 얼굴에 덕지덕지 바른 분가루가 오늘따라 화사하게 빛난다.

매일 무료진료소로 출근하는 길에 나는 일부러 이 쪽방골목을 선택한다. 큰 길을 놔두고 굳이 좁고 어두컴컴하고 꼬불꼬불한 이 골목을 지나가는 이유는 그녀 때문이다. 샐리 할머니는 삼십년 넘게 이 골목의 터줏대감이자 원주민이다. 직업은 ‘삐끼’ 베테랑이다. 고객은 이 골목을 지나가는 모든 성인 남자들, 영업 전략은 무차별 공격 마케팅이다. 문제는 어쩌다 길을 잘못 든 진료소 방문객들이다. 점잖은 분들이 그녀에게 팔을 잡히면 난감하다. 이럴 때 내가 출동해서 해결해야한다.

▲ 구례성당, 2012 ⓒ박홍기

이때 잡은 물고기를 놓치는 그녀의 허탈한 심정은 오죽할까. 이러다보니 나는 그녀의 영업을 방해하는 눈에 가시가 되었다. 카~악 가래침 뱉기, 째려보기는 물론 공치는 날은 내 머리채라도 잡을 듯한 기세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앙숙지간이 되어 이 골목에서 십년을 지냈다.

샐리와 나의 냉전은 우연한 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늦은 밤, 지름길로 간다고 서두르다가 골목길의 하수구 뚜껑 사이에 내 발이 빠진 것이다. 그날도 샐리는 우산을 쓰고 영업 중이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그녀뿐. 내 비명소리에 그녀는 쏜살같이 손전등과 막대기로 무장하고 나타났다. 날쌔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하수구 뚜껑을 빼더니 내 발을 건졌다. 신발까지 건져 내던지며 “싸게 꺼져!”

그날 이후 샐리의 스타일, 노랗게 물들인 머리, 울긋불긋한 화장, 아슬아슬한 노출, 천박하다고 느꼈던 그 스타일이 정겹게까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골목입구의 삼백 원짜리 자판기 커피와 붕어빵을 서로 먼저 쏘겠다고 덤비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샐리가 동두천에서 이곳 쪽방까지 오게 된 것은 남동생 영호 때문이다. 동두천에서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영호는 중학생이었고 그녀는 열아홉 살이었다. 남매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그녀가 먼저 고아원을 나와 식모살이, 염색공장, 식당을 전전하다가 술집, 다방을 거쳐 수입이 좋다는 이 길로 들어섰다. 영호를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간절한 소원 때문이다. “갸가 겁나게 공불 잘해버렸응께”

영호는 천재였다. 전교 1등은 도맡았다. 영호의 꿈이 커 갈수록 그녀는 초조했다. 다방에서 술집으로 그리고 윤락으로 동생을 위해 그녀의 직업도 위험한 업그레이드를 했다. 그러나 행복했다. 고생도 기쁨이었다. 영호를 위해서라면. 영호의 꿈도 진화했다. 일류대학을 거쳐 미국유학, 결혼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망신창이가 되었다. 결핵에 걸린 것이다. 영양실조와 과로가 원인이었다. 의사는 요양을 권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영호의 뒷바라지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연구소에 취직을 한 뒤 결혼을 한다고 초청했을 때도 그녀는 가지 않았다. 결국 한 쪽 폐를 잘라내고 숨이 차서 한 발자국을 옮기지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핵요양원에서 몇 년을 지내야 했다.

결핵 요양원을 나오자 빚만 남았다. 다시 서울역에서 ‘삐끼’를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영호는 푸른 눈의 아내, 아들, 딸의 사진을 부지런히 보냈지만 그녀는 가족이 될 수 없었다.

요즘은 좋아하는 자판기 커피를 권해도 샐리가 시무룩하다. 재개발로 쪽방이 헐린다는 소문 때문이다. 곧 철거통지서가 날아 올 것이다. 걱정이 돼서 “샐리 갈 데 있어?” “걱정도 팔자제!” 겉으로는 당당하지만 갈 데가 없다는 것을 안다.

사진 속에서만 살아있는 동생 영호는 이미 샐리에게는 먼 나라 사람이 되었다. 자신 때문에 동생이 피해를 볼 거라고 믿는다. 더러운 삶이기 때문에 끝까지 숨어 살 것이라고 맹세했단다. 그런 그녀와도 이제 헤어질 날이 다가온다.

올 성탄이 그녀와 보내는 마지막 성탄이 될 것이다. 되짚어보니 지난 십년동안 샐리에게 성탄축하카드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의 삶을 통하여 내가 깨달은 것이 있으니 우리가 몸을 팔지 않았고 ,우리가 포주질 하지 않았고 ,우리가 뚜쟁이질 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우리 부모와 우리 형제가 그렇게 번 돈으로 밥 먹고 학교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동생 영호를 포함해서.

그녀에게 줄 성탄 카드를 준비하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이 겸손하고 착한 샐리에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찾아오길 기도한다. 뒤늦게나마 그 희생에 경의를 표하면서.

저런 게 하나 있음으로 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지

아무 쓸모없는 듯
강폭 한 가운데에
버티고 선
작은 돌섬 하나

있음으로 해서,

에돌아가는
새로운 물길 하나 생겨난 거지 

(정세훈, 저런 게 하나 있음으로 해서)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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