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문재인 후보의 아내 김정숙 씨]

▲ 문재인 후보의 부인 김정숙 씨가 지난 12월 8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바티칸 박물관전 개막식에 참석해 도종환 의원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강한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디모테오) 후보의 아내 김정숙(골롬바) 씨는 문재인 후보 공식사이트에서 “웃을 일도, 유쾌할 일도 없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저를 ‘유쾌한 정숙씨’라고 불러주시니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김정숙 부부는 7년 동안 연애 끝에 1981년 결혼했는데, 김정숙 씨는 대통령 후보의 아내가 되고나서, ‘따뜻한 정숙씨’가 되고 싶어 했다. 특별히 아동과 여성들의 안전과 복지에 관심을 지니고 있던 김정숙 씨는 대선 후보의 아내로서 현장을 둘러보며 “사회적 약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와 김정숙 부부는 모두 가톨릭 신자로, 문재인 후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영도의 신선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두 사람의 결혼식도 이 성당에서 올렸고,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문재인의 어머니는 지금도 신선성당에 다니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인 1975년 시위 때 대학 2년 후배인 음대생 김정숙씨를 만났고, 그녀는 이후 문재인 후보의 구속과 군 강제징집이 이어지는 동안 면회를 다녔다. 1980년에 복학한 문재인 후보는 사법시험 2차를 본 뒤 학내 시위에 휘말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다시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었는데, 이 유치장에서 22회 사법고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 후 사법연수원 시절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 지난 11월 24일 문재인 후보가 부인 김정숙 씨와 세검정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캠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안철수 후보의 사퇴 선언 이후에 복잡한 심경이었을 지난 11월 24일 김정숙 씨가 문재인 후보와 함께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세검정성당을 찾았을 때의 심정을 먼저 김정숙 씨에게 물었다. “남편과 함께 성당에 갔는데, 남편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며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고 전했다. “저는 남편의 진심이 국민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믿음을 다지고요.”

-문재인 후보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는지요. 함경도에서 거제로 상륙한 피난민이셨다는데, 당시 힘들게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정숙: 시부모님은 남한에 아무도 없던 상태로 피난을 내려오셨어요. 거제도에 도착했는데, 한 달 정도만 머물다 다시 고향으로 가실 줄 알았기 때문에 냄비 하나 없는 상태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지요. 이후로도 살림이 계속 어려웠죠. 문 후보는 수업료가 없어 학교에서 쫓겨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바닷가에서 놀았다고 해요.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집에도 못가구요. 그만큼 가난이 심했었어요.

처음 남편이 성당을 찾게 된 것도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성당을 열심히 다니게 되었고 수녀님들이 너무나 잘 돌봐주셨기에 마음을 붙이고 믿음을 키워갔다고 합니다. 힘들던 유년시절에 문재인을 돌봐줬던 성당과 수녀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는데 큰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 문 후보는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였나요?
- 김정숙: 한 마디로 믿어주고 지켜봐주는 아빠에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했습니다. 싫다는 걸 강요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도 요즘 말로, 남편은 ‘딸바보’입니다. 시험공부로 밤을 새는 딸이 무섭다고 하니까 옆에서 졸면서 같이 있어주는 아빠였으니까. 고민 있으면 아이들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한테 털어놓을 정도로 자상한 아빠지요. 저 상황엔 좀 엄하게 하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기도 한데 절대 큰 소리 내거나 강요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 지난 총선 때 트위터에 공개된 문재인 후보와 김정숙 씨의 결혼식 사진.  (사진제공/문재인캠프)
- 지금까지도 남편인 문 후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남편과 남성으로서 문재인 후보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 김정숙: 제 이상형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결혼해서 함께 인생을 만들어 나가려면 이상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변치 않는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남편은 가족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남성으로서의 매력은, 나이 먹을수록 분위기가 더 나는 것? 젊을 때 이목구비가 너무 크고 진하다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부드럽고 멋스런 분위기가 나서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 보여요. 50대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란 말도 있는데 남편이 잘 살아왔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또 한 가지는, 말수는 적지만 가끔 말없이 저를 즐겁게 한다는 점이에요. 가령, 등산하다가 예쁜 꽃이 보이면 저한테 꼭 보여준다든가. 말보다는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남자, 그걸 남자로서의 매력으로 꼽고 싶네요.

- 문 후보가 부산 영도 신선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동기와 결혼식(혼인성사)을 이 성당에서 올린 내력은 무엇이었나요?
- 김정숙: 양가가 모두 천주교 신자들이에요. 저희 부부도 영세, 견진, 혼배까지 모두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살던 저는 결혼식을 하기 위해 시댁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지요. 문 후보가 세례 받은 부산 영도 신선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둘이서 결정을 했습니다. 신부 입장에서는 부산으로 내려가 결혼식을 한다는 게 좀 번거로운 감도 없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유신 반대 민주화 운동을 하다 감옥가고, 군대 가고, 고시 공부하러 절에 들어갔던 사람을 면회하고 기다리고…. 파란만장한 오랜 연애 끝에 하는 결혼이라 마냥 좋았던 기억입니다.

- 김정숙 님은 언제 세례를 받았는지요? 성당에서도 활동을 했는지, 그리고 평소 조언을 주고받던 신부님이계셨는지요?
- 김정숙: 저희 집안도 오래전부터 가톨릭집안이라 저 역시 모태신앙입니다. 성당에서는 레지오마리애도 하고 교리교사 활동도 했습니다. 문 후보는 어린 시절 복사를 했다고 들었어요. 오랫동안 함께 해주신 분은 부산에 계신 송기인 신부님입니다. 뵐 때 마다 문 후보와 저에게 건강 잘 지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희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이 정말 감사하지요.

- 문 후보의 옥중 사법고시 합격과 연애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까요.
- 김정숙: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연극의 한 장면 같았던 순간이 있었다면 바로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남편에게 사법고시 2차 합격을 알리러 유치장에 찾아갔던 그 장면이요. 그 기쁜 소식을 문재인 후보에게 전하러 갔지만 3차 시험을 봐야 하는데 과연 유치장에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을 느꼈었죠. 결국 남편은 3차까지 시험을 보고 옥중에서 사법고시 합격을 했습니다.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힘들어도 참고 잘 넘기면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한 이유겠죠.

- 문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나가기로 결심할 때 가족들의 반응과 심경은 어떠하셨는지요?
-김정숙: 처음에는 반대를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두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출마 결심을 하기까지 남편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믿는 가족들은, 남편이 그동안 함께 살아온 날들을 통해 보여준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에 남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지요. 변화를 원하는 국민이 불러낸 문재인 후보. 그 책임감으로 끝까지 잘 해내리라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어려운 자리에 있는 만큼 우리 아이들과 저도, 온 가족이 함께 할 것입니다.

▲ 바티칸 박물관전 개막식에 참석한 이용훈 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수원교구장)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정숙 씨 (사진제공/문재인갬프)

- 마지막으로, 문 후보가 어떤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시는지, 또 당선된다면 어떤 퍼스트레이디가 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 김정숙: 문재인 후보는 밤새워 시험 공부하는 딸을 위해 같이 밤을 새주던 아빠였어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을 위해 밤을 새는 든든한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요? 문재인 후보는 중학교 때, 몸이 불편한 친구의 가방까지 양손에 들고 다녔던 친구이기도 했지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의 짐을 함께 들어주는 따뜻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아픈 자식에게 더 마음 가는 엄마의 마음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성악을 전공했거든요. 문화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문화 발전에도 뭔가 제가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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