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내 사랑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동안 너무 행복했어
너를 만나고 즐거웠던 시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름다웠던 우리의 시절들을

조상의 조상의 조상, 그 조상부터 살아왔던 터전
금모래가 햇살에 반짝이고 새들이 날아오던 강
먹이는 지천이었고 맑은 물에서 헤엄치며
아무 근심 없이 행복한 세월이었지
사람들도 그 강에 기대어 강과 더불어 살아갔어

그런데 어느 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이런 것일까?
내가 살던 강이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어버렸어
강철로 된 외뿔 달린 괴물군단이 쳐들어와 강을 파헤치기 시작했어
그 예쁜 금모래를 다 파내어 강변에 산맥을 이루도록 쌓아놓았지
강바닥이 6, 7미터 아래로 내려갔어
그리고는 여기저기 콘크리트로 거대한 댐을 쌓기 시작했지
우리의 종말이 예감되었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이 땅엔 화강암이 많고
화강암은 세월에 풍화되어 모래가 되지
모래 한 알에는 수많은 미세한 구멍이 있어서 유해물질들이
그 구멍을 통과하면서 정수가 된다나봐
말하자면 모래는 천연정수기인 셈이지
이 땅의 강은 모래가 지천이어서
산업화에 따른 그 많은 오염물질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맑은 강을 지킬 수 있었던 거야
또 모래는 물을 머금었다 조금씩 뱉어내서
갈수기에도 강엔 물이 마르지 않는 거야
그런데 그 좋은 모래를 다 퍼내고
강을 살린다는 거야
그리고 물을 가둬두면서 홍수나 가뭄에 대비한다지?
비가 많이 와 물이 넘치면 일제히 수문을 개방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수가 있지?

그렇게 강을 깊게 파낸 덕분에
주변 농지는 침수되거나 지하수 고갈로 말라버리고
온갖 생명이 깃드는 아름다운 생명의 보고인 습지는
삭막한 콘크리트 광장으로 변해버렸어
그 참담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그동안 외뿔 달린 괴물들의 난도질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겨우 목숨을 유지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어
물은 점점 썩어 악취가 나고 시야는 가려져 한치 앞도 보이지가 않아
무엇보다 숨을 쉴 수가 없어

누가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을까?
물을 가두면 물이 썩는다는 것도 모르는 인간들을
그 물에 기대어 사는 수많은 뭇생명을 다 죽이고
혼자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아무리 모래를 퍼내도 모래는 계속 쌓인다는 것도 모르는 인간들을
본류에 모래가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지천의 역행침식을 막기 위해
또 다시 수많은 지류를 콘크리트로 발라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제 어머니 같은 강을 저렇게 무참하게 유린하고 절단 내는 인간들을
그 혹독한 대가를 두고두고 치를 인간들을
먼 훗날 가슴을 치며 후회할 인간들을
저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들을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
형제들의 시신이 점점 물 위로 떠오르고 있어
수십만 수백만은 될 것 같아

점점 숨이 가빠와
너무 고통스러워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어

이제 죽어 헤어지면 우리는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주 먼 훗날
어쩌면 저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더미가 무너지고
다시 맑은 모래 강이 흐를까?
그래서 강변에 금모래가 반짝이고 새가 날아올까?

그래도 다시는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아 이 한반도 땅에
아니, 이 초록별 지구에는 더 이상….

안녕 내 사랑

윤병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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