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우리신학연구소 공동 기획 ‘신앙과 정치’ 좌담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교회도 수많은 말과 글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0월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신자라면 교회의 가치관과 가르침에 배치되지 않는 정책을 선택한 후보를 택해야 한다”고 촉구한 데 이어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인권주일을 맞아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존중하고 겸허하게 국민을 섬길 줄 아는 지도자를 뽑아줄 것”을 당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주요 대선 후보에게 정책 제안서와 함께 질의서를 보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와 공동 세미나를 열어 후보들의 정책공약을 나름대로 평가했다. 이러한 발언과 후보 평가는 정치활동의 목적이 인간의 존엄성 증진과 공동선 실현에 있고, 또한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정당하다”(사목헌장 76항)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그런가하면 “교회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또는 “교회 가르침에 맞는”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 성당 밖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발언하는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을 만날 수 있다. 농성촌이 차려진 대한문 앞이나 강정마을에서 ‘길거리 미사’를 봉헌하고, 직접 시위에 참여하기까지 하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활동은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지만, 그만큼 반대와 비난에 부딪히기도 한다. “예언자적 소명에 충실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송부터 “거룩한 미사를 길거리에서 드리다니, 쯧쯧” 하는 점잖은 비판,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면서 우리나라 해군기지는 반대하는 종북좌빨”이라는 색깔론까지 그 내용도 다양하다.

이처럼 ‘신앙과 정치’ 또는 ‘신앙과 사회 참여’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두루 살펴보고, 교회가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상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평신도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 좌담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우리신학연구소의 공동 기획으로 지난 11월 29일 저녁, 서울 합정동 <지금여기> 사무실에서 열렸다.

ⓒ정현진 기자

사회 : 경동현(안드레아,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참가자 : 최성우(티모테오, 30대), 김재진(바오로, 40대), 윤희재(안나, 40대)
정리 : 강한 기자

경동현(사회) : 간략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재진(이하 김) : 파주 금촌에 살며 고양시에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어요.

최성우(이하 최) : 수원에 살고요. 역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교육 관련 기업에서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윤희재(이하 윤) : 부천에서 살고 금년 5월 중순까지 약 20여 년간 장애인 사회복지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했습니다. 현재는 쉬고 있습니다.

사회 : 올해 2월에 불교의 종교자유정책연구원에서 정교분리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고, 특히 천주교, 불교 신자 층에서 ‘반대’ 응답 비율이 각각 74.7%, 73.4%로 나왔습니다. 천주교 신자의 반대 비율이 가장 높죠. 주변의 신자들을 보시면서 이 정도 수치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은 평소 신앙과 정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요?

교회에서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

김 : 교회가 보수화됐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는 하죠. 교회의 지난 역사 속에 평신도보다는 성직자들이 더 보수적이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보면 많은 사제나 수도자들은 시대적 소명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것 같아요. 반면 평신도들의 보수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이나 의견이 나오면 아주 거북해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때 말하는 대표적인 논리가 “교회에서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정치 얘기는 더 많이 하시고, 폭력적으로 주장하기도 하지요.

최 : 저는 이번 좌담회 주제를 ‘신앙과 정치’라기보다는 ‘신앙과 사회 참여’로 이해했어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 참여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신앙인의 정치 참여’라고 하면 ‘정치권에 입문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를 들면 추부길 목사는 정무직공무원으로 이명박 정부에 참여했잖아요? ‘신앙과 정치’라고 하면 이처럼 ‘정치 참여’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도 이러한 느낌 때문에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 게 아닐까요?

상대적인 차이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나이 많은 분들은 4대강이나 강정마을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관해 말하기를 꺼려하십니다. 세대별로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제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말하면 교회 내 젊은이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공감해주었어요.

▲ 윤희재 씨 ⓒ정현진 기자
윤 : 교회가 어디에 관심을 갖고 중심을 세우느냐에 따라서 신자들이 따라갈 수 있는데, 교회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본당 신부님, 수녀님들이 사회적 이슈와 소외 계층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습을 조금만 보여줘도 신자들이 더 많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부천만 해도 여러 본당이 있는데, 본당별로 미사를 참례한 적이 있어요. 신부님들 중 강론대에서 사회적 이슈에 관해 신자들과 소통하시는 분은 8개 본당 신부님 중 한 분 정도였어요. 이런 분위기니까 신자들은 각자가 알아서 찾아 나서지 않으면, 성당과 내 집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가르침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교회가 ‘사회’에 대해 신자들에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신자들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

사회 : 신자들이 교회의 사회 참여에 관심이 없는 것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얘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시나요?

김 : 의정부교구에서는 재작년에 처음으로 사회교리학교를 열었어요. 저는 신앙생활을 늦게 시작하다 보니 사회교리라는 개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어느 누구도 사회교리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의미에 대해서도 본당에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 공동체가 가장 집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일 수 있는데 신자들은 잘 모르는 거죠. 성직자와 신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윤 : 신자들을 보자면, 솔직히 저는 사회 문제에 아예 관심이 없는 신자들을 더 많이 만났어요. 심지어 제주도가 고향인데도 자기 고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저보다 더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놀랐습니다. 오히려 강남 길거리 미사(예수회 정만영 신부의 제안으로 3월 13~30일에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앞에서 봉헌한 ‘구럼비 폭파중지와 삼성물산의 회개를 촉구하는 미사’)에 참석했을 때는 비신자 분들도 일부 있었고, 냉담을 하셨던 가톨릭 신자 분들이 미사 참여를 통해 냉담을 풀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도 봤습니다. 물꼬를 터주고 조금씩, 조금씩 자극을 주는게 필요해요.

최 : 오늘날 신앙의 모습이 사회 참여적인 종교관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대체로 개인적이고 영적인 구원에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받거든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회적 메시지를 이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대한문 미사에서 만나는 신부님들의 모습은 현재 한국 천주교 안에서는 소수에 불과해 보여요.

ⓒ정현진 기자

‘신앙’이 ‘사회 참여’에 영향을 주었나,
아니면 ‘정치적 성향’이 ‘신앙’의 방향을 정했나?

사회 : 세 분에게는 자신의 사회 참여 활동에 신앙이 준 영향이 어느 정도 되나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세 분이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진보적인 입장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원래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신앙과 관계없이 진보적인 것인지, 아니면 신앙적인 동기가 지금 나의 정치 성향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 : 저 개인적으로는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신앙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첫 경험을 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마르크스주의나 민족주의 등 여러 이념이 있겠지만 신앙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거였죠.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관, 정치관에 의해서 사회를 바라볼 뿐, 신앙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찾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 :  좀 전에 말했던 개인적 구원과 사회적 구원의 문제와 연결된 것 같군요.

최 : 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 구원에 치우쳐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회적 구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정치관에 따라 관심을 갖지만, 그게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인가 하는 물음이 여전히 남습니다.

김 : 사실 좀 애매한 것 같아요. 현상만 놓고 보면 저에게는 신앙과 거의 무관하게 정치적 성향이 만들어져 있었고, 신앙생활을 할 때도 그런 성향을 갖고 신앙을 바라보게 된 경향이 있었죠. 교리 하나를 보더라도, 성경 구절을 보더라도 ‘가난한 자들을 우선 선택해야 된다’는 이런 말들은 팍팍 와 닿는 것이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제가 신앙과 무관하게 사회참여를 하던 때 겪었던 좌절이나 어려움, 풀리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나중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역으로 풀리는 과정이 있었어요. 가장 결정적이었던 계기는 2010년 3월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 반대 성명서를 공식 채택했을 때입니다. 이에 대한 이재돈 신부님(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의 강연을 들었는데 신부님은 주교회의가 정치적인 의미로 4대강을 반대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밝혔고, 왜 우리의 신앙 속에서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가를 이야기해주셨는데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죠. 그때가 계기가 되어 아주 급격하게 생태, 생명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전에는 몰랐는데 천주교 교리 자체가 이미 그런 교리잖아요? 없는 사람들 편에 서야 되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인간의 소명을 말하는 교리이니, 좀 더 나은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끌려 나갈 수 있어요.

윤 : 앞서 말씀하신 것에 저도 많이 공감하는데, 저는 교회와 정치의 관계가 일상 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신앙생활과 상관이 깊다고 생각해요.

‘정치 강론’도 강론 나름 … 나와 비슷한 생각 반가운 건 인지상정

사회 : 미사 강론 등을 통해 성직자가 정치적, 사회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최성우 씨 ⓒ정현진 기자
최 : 제가 있는 본당은 대체로 보수적인 곳이라서 그런지,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는 신부님 강론을 들을 때 반갑더군요. 예를 들면 4대강 문제 등 현 정권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걸 보면요. 제 생각과 다른 견해는 기분이 좀 안 좋지 않을까요? 인지상정 차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 대한문 앞 월요 미사를 오랜만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미사의 취지에 공감하고, 쌍용차, 강정마을 문제에 공감하는데, 이것이 너무 정치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대한문 앞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하는 것이지만, 우리들만의, 또는 그들만의 닫힌 미사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김 : 지난 8월 강정마을에서 일어난 성체 훼손 사건에 대해 “자꾸 길거리 미사를 하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는 말씀을 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분은 제주 해군기지를 찬성하거나 강정 주민들의 싸움을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거든요. 정말 우리가 그렇게 느낄 정도라면 우리보다 덜 정치적인 신자들이 봤을 때는 그 압박감이 더 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주교회의 ·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활동에 대한 신자들의 인식 낮아

사회 :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약칭 정평위)와 각 교구 정평위가 비정규직 문제, 해군기지 관련 발언도 하고 있는데, 이런 발언들이 나오면 신자들 반응이 어떤가요?

김 : 신자들 사이에서는 아직 정평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요. 정평위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같은 조직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고요. 그래서 정평위 명의의 성명서가 나와도 교회의 공식 견해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사회 : 교구에서 내놓는 사목교서, 사목방침도 있지만, 많은 신자들은 그런 문서가 나오면 “그렇구나” 하고 흘려듣지, 그걸 보고 의식이 바뀌는 데까지 이어지지 않지요.

윤 : 교구 차원에서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본당에 관련 책자를 비치해둔다거나, 사회 문제와 그에 대한 교회의 입장에 대한 교육을 할 수도 있겠죠.

저희 본당에서는 사회단체에서 비치해달라고 부탁하는 자료들이 오면, 교구에서 배포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게 나쁜 내용이 아닌데 일단 부정하고 보는 사고를 가진 사제도 있고요. 사회교리처럼 의무적으로 위에서 던져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까지 우리 교회구조가 그런 것 같아요.

최 : 어떤 신부님이 오느냐에 따라 그 본당의 상황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제가 사는 곳은 보수적인 동네라서 본당에서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주교회의의 입장도 거의 말하지 않고 신자들도 거의 모릅니다. 반면, 진보적 성향의 신부님이 계시는 본당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4대강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있더군요. 이처럼 신부님에 따라 본당이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신부님의 의지를 기다리기보다는, 평신도로서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윤 : 하지만 주보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교회의 허락을 받아야만 해요. 아무리 개인이 좋은 뜻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사제의 성향에 따라 그 결과가 좌지우지될 수 있으니 사제를 직접 찾아가 부딪친다는 것은 가능하긴 하지만 어려운 일이예요.

본당 공동체는 ‘좋은 신부님’ 오기만 기다려야 하나?

사회 : 우리는 사회참여적 의식을 지닌 사제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런 사제가 부임하더라도 동의하는 입장에서는 로또를 맞은 것이고, 반대 입장에서는 폭탄이 온 것이죠. 그러면 갈등이 계속 존재하는 상황에서 본당 공동체는 어려움을 겪을 텐데요.

▲ 김재진 씨 ⓒ정현진 기자
김 : 단순히 교회가 사회적 책무를 다하자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우리 교회가 가야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지런한 신앙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교회의 소명에 충실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정작 본당 활동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분들이 각자 자기가 속한 본당 공동체 안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주면 좋겠어요. 공동체 안에서 나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것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라 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을 보수주의자들에게 뺏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의 삶이 철저하게 그리스도에 입각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자각과 헌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윤 : 사회교리와 복음을 기준으로 신자들이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 힘을 키우면 사회 문제든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김 : 본당 공동체의 주인은 사제들이라기보다는 계속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인 거죠. 다만 오늘날 사회가 너무 복잡해지고 교회가 커지다 보니, 예컨대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 말고는 공동체의 균질성이 없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첫 출발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볼 때 나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저런 것이구나 하는 모범이 돼야 해요. 그렇게 되면 어떤 사제가 오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 : 혹시 그런 사례를 주변에서 보신 적 있으세요? 그런 모습이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 : 사실 아직 답은 찾지 못하고 있어요. 제가 속해 있던 본당이 꽤 보수적인 교회였던 것 같지만, 고립화되어 있어서 그렇지 의외로 좋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전혀 움직이질 못하고 있는 것이죠.

윤 : 저는 소속 본당으로 미사를 안 가고 다른 본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데요. 이곳 신부님이 언행일치가 되는 분이에요. 이 신부님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정신적 ·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과 레지오 단원들이 일대일 결연을 맺게 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재가방문을 하고 다양한 도움으로 다시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게끔 하고 있어요. 활동 보고 시간을 통해 많은 신자들이 이러한 활동상을 알게 됐고, 그것 때문에 이 본당 분위기는 무척 좋고,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어요.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는 본당이지요.

우리 삶의 현장, 본당에서 교회의 정치 · 사회참여가 뿌리 내려야

사회 : 그렇다면 신자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과 본당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김 : 자꾸 교회 보고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게 아니고, 교회가 변하도록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해야 돼요. 교회가 변하면 사회 참여하라고 종용할 필요 없이 교회가 알아서 움직이게 되요. 사회 참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꾸 교회 밖으로 뛰쳐나올 게 아니라 뿌리는 본당에 내리되, 뿌리를 잘 내리고 영역을 넓혀나가기 위한 지원과 교육이 교회의 공식구조 밖에 있는 단체나 모임을 통해 이뤄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윤 : 저는 교구 차원의 설문조사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각 본당 신자들의 생각, 신앙의 척도, 사회문제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사회 문제와 나의 신앙의 관계, 이런 것을 설문조사하고, 그 결과물을 배포하다 보면 사제들도 내 본당 신자들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쯤 궁금할 것 같아요.

김 : 최근 가톨릭교회는 탈핵운동에 관심을 두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요. 탈핵을 위한 실천 방안이 신앙생활의 일환으로 본당 차원에서 이루어지면 어떨까요? 개인적으로는 요즘 뜨고 있는 ‘햇빛 발전소’를 본당에서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이런 식으로 본당 중심의 실천활동이 이뤄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신앙과 사회 참여를 구별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해요. 나의 활동 하나하나가 결국은 나의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나의 신앙에 대해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모여서 무엇인가 할 때는 항상 이 자리에 우리만이 아니고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우리의 이 모든 행위가 주님께 영광을 바치는 일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보수적으로 보이는 열심인 신자들과 우리가 스스럼없이 함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사회 : 이 좌담회가 사회 참여에 대한 갈등이 있는 우리 교회에 영감을 던져 줄 토론이 되길 기대했는데, 도움이 됐나요? 앞으로 우리가 지치지 않고 신앙생활과 사회 참여 활동을 하는 힘을 줄 수 있는 토론이었다면, 독자들에게도 전달되는 바가 있으리라 봅니다. 감사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