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파노라마 -1]

아프리카 대륙 동북부를 관통하며 유유히 흐르는 나일 강(총길이 6,690㎞)의 홍수와 범람에 따라 일찍부터 태양력, 건축술, 기하학, 천문학, 의학 등 발달된 실용학문을 바탕으로 황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와 함께 세계 4대 문명을 탄생시킨 이집트는,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면적 1001만㎢(한반도의 5배, 전국토의 95% 사막)에 달하는 광활한 지형의 북쪽은 지중해, 서쪽은 리비아, 남쪽은 수단, 동쪽은 시나이 반도를 통해 가자 지구(Gaza Strip)와 이스라엘과 연결되어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이에는 지중해와 홍해 사이를 가르는 수에즈만(灣)이 있으며,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인공수로인 수에즈 운하를 통해, 홍해를 사이로 지중해와 인도양이 연결된다.

▲ 나일 강과 이집트 주변 지도

예로부터 이집트인들이 ‘생명의 젖줄’이라고 불러온 나일 강에는 두 줄기 거대한 원류가 있다. 중앙아프리카 적도 지방 부룬디의 한 샘에서 발원해 케냐의 빅토리아 호수를 거쳐 열대 초원을 흐르는 백나일(White Nile)과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발원한 청나일(Blue Nile)은, 수단의 수도 하르툼 북쪽에 자리한 누비아 사막에서 합류하여, 도중에 에티오피아에서 흘러오는 또 하나의 지류인 아트바라강과 만나, 이집트 국경 근처에서 인공호수인 낫세르 호(Nasser Lake)로 흘러든다.

백나일과 청나일이 합류하는 지역인 하르툼을 떠나, 수단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국경 도시 와디 할파에서 출항하는 이집트 행 여객선에 오르자, 약 스무 시간의 더딘 항해 끝에 드디어 아스완 하이 댐(Aswan High Dam)선착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저 멀리 언덕 위의 도로변에 우뚝 서 있는 아스완 하이 댐 준공 기념탑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 아스완 하이댐 준공 기념탑 ⓒ수해

이집트 남동부 아스완주(州)의 주도(州都)인 아스완 시내에서 1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아스완 하이 댐은, 1960년 러시아의 기술 원조로 공사에 착수하여 1971년에 완공되었다. 나일 강에 최초로 건설된 댐은, 1902년 영국인이 나일 강의 홍수조절과 관개용수 확보를 위해서 만든 아스완 로우 댐(Aswan Low Dam)이다. 그러나 두 번이나 댐의 높이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1946년 아스완 로우 댐이 넘칠 뻔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자, 그곳으로부터 7km 떨어진 상류지점에 아스완 하이 댐을 다시 건설하였다. 낫세르 호수를 통과한 나일 강은 아스완 하이 댐을 거쳐 이집트 영내로 들어가면 더 이상 합류하는 지류 없이 단조롭게 흐르다가, 카이로 북쪽에 거대한 델타(delta, 三角洲)지대를 만들면서 지중해로 곧장 흘러든다.

천천히 무거운 배낭을 둘러매고, 이집트의 국화인 수련을 형상화 해 놓은 언덕 위의 조형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 보자,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연한 크림색 조형물의 내부에는, 벽면을 장식한 다채로운 아라베스크 부조들과 함께, 아스완 하이 댐 건립 당시 도움을 주었던 러시아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양, 아랍어와 러시아어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os, BC 484?~BC 425?)는 그의 명저 <역사>에서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한마디로 단언 해 놓았다. 이집트 현지를 직접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고대 이집트의 풍습, 지형, 종교, 살림살이 등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기록해 놓은 이 책에서 헤로도투스가 말하고 있는 나일 강의 선물이란, 해마다 어김없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나일 강의 범람을 의미한다. 그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나일 강이 범람하면 이 나라는 바다로 바뀌고, 마치 에게 해(Aegean Sea)의 섬들처럼 도시들을 제외한 아무것도 수면 위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때가 되면 배들은 더 이상 강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직접 평야지대를 가로질러 항해”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나일 강은 범람하지 않고, 그 옛날 우기가 되면 평야지대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항해하던 배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 버린 지가 오래다.

한동안 아스완 하이 댐의 건설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변모해가는 이집트의 지형과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이윽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스완 시내로 향하였다. 수단에서부터 배를 함께 타고 온 누비안 친구들과 함께, 그들의 친척들이 모여 사는 엘레판타네 섬으로 향하는 작은 나룻배에 오르자, 서서히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적막에 젖어가는 나일 강 주변의 야경이 점차 놀라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 나일 강의 야경 ⓒ수해

찰랑찰랑 뱃전에 부딪치는 물살을 가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노라니, 강기슭 여기저기서 뱃사공의 노 젓는 소리에 놀란 야생 오리 떼들이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요란하게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대자연이 연주하는 장중한 나일 강 심포니 서곡에 귀를 기울이면서, ‘아다지오 칸타빌레 소스테누토(adagio cantabile sostenuto, 느리게 노래하듯이)’풍으로 도도히 흐르는 나일 강의 물살을 가르며, 어둠 속에서 한 송이 붉은 장미꽃으로 피어나는 엘레판타네 섬을 향해 미끄러져 가노라니, 어디선가 그 옛날 파피루스 우거진 이 ‘물새 우는 외로운 강 언덕’ 구석구석에 숨어, 은밀히 사랑의 밀어를 나누었을 고대 이집트 처녀총각들의 철없는 사랑노래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하라 사막의 신기루

다음날 새벽. 아스완 역 앞 광장을 밝히는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 아래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아 잠시 명상을 하다가보니, 여기저기서 광장을 향해 걸어오는 나그네들의 이야기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인근의 숙소에서 싸준 작은 도시락 가방을 챙겨들고 아부심벨(Abu Simbel)로 향하는 낡은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전날 미리 여행사를 통해 아부 심벨 행 티켓을 예약해 두었던 승객들을 실은 미니버스는 잠시 아스완 외곽 지대에서 의례적인 검문을 받고나자 이내 어둠을 가르며 사막공로를 힘차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 아부 심벨로 가는 길 ⓒ수해

약 두 시간 정도 지나자, 서서히 고대이집트인들이 ‘데세레트(Desheret, 붉은 땅)’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했던 사막이 붉게 물들면서, 지평선 저 너머로부터 둥근 태양이 불쑥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덜컹대는 미니버스 안에서 묵묵히 졸고 있던 나그네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환호성을 마구 지르며, 해가 떠오르는 사막 위로 우르르 달려 나갔다. 한동안 떠오르는 태양 아래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호들갑스럽게 아침공기를 들이마시거나,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요란한 퍼포먼스를 벌이던 나그네들은, 그제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각기 다른 모국어로 반갑게 손을 내밀며 따뜻한 눈길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몇 차례인가 도로변의 초소에서 소총을 둘러메고 나타난 군인들로부터 검문을 받고난 차량들은 다시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사막공로를 뚫고 남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사진을 찍느라고 흙먼지로 얼룩진 차창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황사가 휘몰아치는 사막 정경을 눈여겨 살펴보노라니 드문드문 종려나무 이파리를 꺾어 세운 엉성한 울타리가 나타났다.

무시로 아스팔트 위로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아내느라고, 한껏 지쳐버린 겨울벌판의 허수아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종려나무 울타리들을 보게 되자, 문득 예전에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대륙을 순례할 때 보았던 풍경이 생각났다. 석탄냄새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우루무치에서 카슈카르를 돌아 둔황으로 향할 때, 그곳에도 저런 울타리가 무수히 쳐져 있었다. 천산산맥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의해 칼라부란이라고 하는 검은 모래폭풍이 휘몰아칠 때 마다, 선로를 덮치며 사정없이 날아오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더미를 방지하기 위해 쳐놓았던 모래방지용 그물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사하라 사막의 종려나무 울타리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물끄러미 차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누군가 “와, 피라미드다~”라고 외치는 함성이 들려왔다. <계속>
 

 
수해 (기행문학가)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명상사원과 문화유적지를 순례하다가,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지은 책으로 시집《산 두고 가는 산》과 동아시아 기행 에세이《예정된 우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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