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오고 갈 때면 나는 목련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길을 지나가게 된다. 매년 하얀 꽃들을 피워내면서 가장 먼저 봄의 소식을 알려주고, 여름이면 푸르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목련나무들은 이제 잎들을 떨구고 점점 맨몸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오늘 ‘또 한 해를 살아내었구나’하며 바라본 목련나무의 가지 끝에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들이닥치지도 않았고, 낙엽이 미처 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나무는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보통 이렇게 계절을 착각하고 일찍 꽃을 피워내는 꽃나무들을 보면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라 했었는데, 이번엔 왠지 모르게 12월에 돋아나는 꽃봉오리가 고마워 별안간 눈물이 났다.

ⓒ여경

그렇지 않은 시대가 언제 있었겠냐마는,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 이 시간이 유난히 아프고 힘들게 느껴진다. 이토록 무참히 생명들이 짓밟히고 약한 자들의 삶이 파괴될 수 있는 건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고 도대체 손 써볼 도리가 없는 나날들이 계속 되고 있다. 게다가 이제 날이 점점 추워지니 차도 옆 차가운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 훨씬 추운 고공의 공기 속에서 잠을 자는 이들, 매운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을 강정마을 사람들이 더욱 걱정이 되었다. 이 혹독한 시기를, 혹독한 계절을 잘 넘길 수 있을까, 끝은 과연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과 의심이 밀려 올라오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겨울은 너무나 단단하고 매섭고 가혹하다는 생각에 움츠러들기만 했다.

그런데 그 목련나무는 건물 틈 사이로 비춰오는 햇빛, 그 한 줄기 온기만을 의지해 추위 속에서 새 생명을 돋우려 애쓰고 있었다. 모두가 스러져 가는 계절에 가지 끝마다 수줍게 매달린 그 작은 생명들의 용기와 노력이 너무 놀랍고 감격스럽고 애틋했다. 무모하지만 희망을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그 목련나무는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현실 속에 여기저기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지속해나가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지극히 아름다운 생명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현실이 혹독하게 춥고 숨 쉴 틈도 없으나, 한 줌의 햇빛만 있다면 다시 일어나고, 웃고, 계속해서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들 앞에서 나는 참 미안해서 고마워서 부끄러워서 가만히 눈물을 흘리게 된다.

다시, 찬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걷는다. 내가 지금 바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던 의심을 내뱉는다. 더불어 아무 것도 바뀔 게 없다는 체념도 밀어낸다.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이 착각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실패하고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닐 것이기에, 무모함과 용기를 가질 것,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말 것을 다짐해본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용기 내어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목련이 전해준 믿음과 용기 덕분에 이번 겨울은 조금은 덜 춥고, 덜 외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여경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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