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문득]



노동자대회 전야제
시낭송을 하고 내려오니
기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구석진 곳에서 오들오들 떨며 조명 비춰주고 있다
진눈깨비 젖어 달무리 진 얼굴
눈부신 조명 뒤 있는 듯 없는 듯
구공탄 만화 주인공처럼 꺼벙한 눈에
어디 하나 모난 데 없이 예쁜 안기현
키는 멀대같이 커도 장가는 안 가고(못 가고?)
전국노동자문학연대 대표 몇 년씩 맡고도
시 한 줄 못 쓰고(안 쓰고?)
조명 받는 무대에는 서 본 적도 없는
그의 뒤에서 전선이 이어져
빛이 비치고 음향이 만들어지고 사람이 모였다
무대여 잊지 마라 저 걸어다니는 책
몸에 새긴 붉은 시편

-김해자


시인과 시에 등장하는 ‘안기현’과 시에 그려지는 무대 모두를 잘 안다. 아마도 2003년경이었을 것이다. 한 해에 한번씩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이는 전국노동자대회에 의미있게 참여를 하자고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하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시를 쓴 김해자 시인이나, ‘배후조명’을 본 안기현이나 우리 모두가 이름 없는 시인들이었다. 우리는 십수 년 동안 전국의 공단 지역에 흩어져 노동자문학회를 만들어 왔었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소박하지만 위험한 생각이었다. 김해자 시인은 인천노동자문학회에 있었고, 안기현은 부천노동자문학회에 있었고, 나는 서울 구로노동자문학회에 있었다. 우리 밖에도 참으로 아름다웠던 벗들이 함께 했다.

우리는 등단이라는 권력화된 제도를 거부하고, 상아탑에서만 이루어지는 기름진 문학을 배격했다. 개인의 골방에 갇혀 자위나 하며, 스스로를 사회와 역사로부터 소외시켜 나가는 문학을 부정했다. 다수가 노동을 통해 이룩한 사회공공적 가치들을 일부 소수가 과도하게 독점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그런 자본의 편에만 서는 법과 국가를 부정하기도 했다. 다른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 꿈은 참으로 소박한 것들이었다. 힘써 일한 사람들이 자신이 생산한 만큼을 돌려받을 수 있는 사회. 차별이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평등한 사회. 나의 실현이 타인의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되지 않아도 좋은 모두가 자유로운 사회. 전쟁과 온갖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지금 생각해보면 별반 대단한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요구일 뿐이었다.

이 단순한 생각들과 꿈들을 흩어버리기 위해 우리 사회에는 갖은 이야기들이 많다.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은 일반인들이 못 알아들을 말과 글들로 사태를 호도하고 오히려 복잡하게 만든다. 실상은 온갖 패배의식을 심는 일이 그들의 밥벌이 대가다. 의원들은 의사당에서 간간히 쇼를 하며 이 사회를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시위한다. 그것이 그들에겐 밥벌이 대가다. 언론방송은 밑으로부터의 변화 요구에 눈 닫고 귀 닫고 가끔 가십거리나 제공하며 사람들을 무뇌아로 세뇌시켜 나간다. 그것이 그들에겐 밥벌이 대가다.

시에 나오는 안기현은 지금도 “장가를 안 가고(못 가고?)” 있다. 시 역시 한 줄도 못 쓰고 있다. 여전히 이런 저런 일이 있으면 뒤치다꺼리를 하며 산다. 여느 시인들보다 그가 더 좋을 때가 많다. 시는 글로 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그는 말해주고 싶은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불온한 ‘배후’인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조금은 낮고 조금은 눈에 덜 띠는 자리를 편하게 여기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일 뿐이다. 누군가를 위해 조금은 더 자신을 나누고 희생하는 것이 행복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 몸에 새겨진 ‘붉은 시편’은 그래서 추운 날 마음을 쬐여주는 가로등 불빛처럼 따스하다. 온화하다.

기실 부패한 권력자들과 부정하게 너무 가진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평범한 ‘붉음’이다. ‘밝음’이다. 스스로가 말이 되고 구호가 되지 않고, 지시하는 방향이 되지 않고, 가로등불처럼 누군가의 어둔 길을 그냥 밝게 비쳐주고 마는 따스한 불빛. 따스한 불꽃들이다.

그런 작은 불 심지들이 모여 올해 오월부터 광화문 네거리를 달궜다. 혼비백산한 기득권 무리들이 아무리 배후를 캐려 했지만 어떤 배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모두의 배후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진정한 배후는 다름 아닌 광우병 쇠고기보다 더 부패한 자신들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이 시가 담긴 시집 <축제>(애지 출판사)로 김해자 시인은 올해 백석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미싱 밟는 여공이 되어 수십 년 아픔 많은 삶을 살아 왔던 그와 그의 동료들을 위해 이 사회가 오랜만에 준 뜻 깊은 선물이었다. 그 자신 역시 늘 밝은 무대 뒤의 삶이었던 시인에게도 한번쯤은 이런 조명이 비춰질 수 있어 참 다행이다. 그런 밝은 조명이 김해자 시인과 안기현과 나와 또 다른 모든 이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 쪽으로도 한번쯤은 비춰져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송경동 / 시인. 시집으로 <꿀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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