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는 빈센트 반고흐전이 한창이다. 기억으로 국내에서 고흐전이라 이름 붙여진 전람회가 그동안 서너 차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번처럼 고흐의 단독전이 열리긴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국내의 고흐전이라 이름 붙여진 전람회를 가보게 되면 대개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 속에 고흐 작품 한두 점을 끼워 넣고 전람회의 기획 마케팅 타이틀로 써먹여진 느낌이었는데 이번 작품 전시회는 명실상부한 고흐작품만으로 이루어진 단독전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전공(건축)과 관련된 조형학이라는 미술 쪽 커리큘럼을 이수한 적이 있었다. 그때 미술학과 교수의 강의중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있다. “피카소의 난해하고 추성적인 그림만을 보게 되면 그가 초기에 얼마나 디테일한 데생을 한 지 사람들은 잘 추측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습작 중 인체의 배 부분을 그린 데생을 보면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실물 같다.” 피카소의 독창적 화풍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탄탄한 기초가 있었는가를 추측케 하는 이야기다. 

▲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반 고흐 전시회 홈페이지 www.vangogh2.com 갈무리)
 
마찬가지로 이번 파리시기의 고흐 작품을 보게 되면 우리가 늘 봐왔던 이글이글 타는 듯한 강렬한 붓터치의 고흐스런 작품은 하나도 없다. 마치 점묘파나 보통의 여느 인상주의, 바르비종파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뿐이다. 그의 후기(아를 Arles 시기)에 이르러 만개된 그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하기 이전 까지는 이렇게 여러 방면의 미술기법과 화풍을 거치면서 점차 나름의 독자적 경지를 이루어 나갔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2주전쯤 방송인 유재석과 김원희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놀러와”에 유흥준 교수가 출연한 적이 있다. 유흥준 교수의 저유명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중 제6편의 부제목이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다.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상수(고수)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날 방송에서 유흥준 교수가 인생도처유상수로 삼은 사람은 뜻하지 않게 가수 전인권과 조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었다. 
 
우리가 들어 익히 알고 있는 전인권은 그만의 독특한 샤우팅 창법이 있는데 이는 누구에게 사사를 받은 것이 아니고 그가 소유하고 있는 2000장의 레코드판이 바로 그의 스승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의 창법이 탄생하기 까지 수많은 가수들의 창법과 음색과 음량을 연구하며 피나는 노력 끝에 오늘날의 전인권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다. 추사 김정희 선생 또한 추사체라는 불멸의 서체를 개발하기까지 중국 송, 명대의 기라성 같은 서예가들의 서체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베껴 써보고 하며 점점 자신만의 독특한 추사체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만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유흥준 교수는 이 두 사람을 자기가 만난 ‘인생도처유상수’로 꼽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빈센트 반고흐 역시 같은 선상의 인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저러한 관계 속에서 인생의 상수로 여기며 사는 사람을 한두 번은 만나게 된다. 상수는 내 인생에서 변해서도 안 되고 변할 수도 없는 존재다. 내 인생의 상수가 이리저리 뒤바뀌고 마음속에서 사라진다면 얼마나 값어치 없는 일이겠는가?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정치권의 행태는 말문을 막히게 한다. 과거 유신피해자로서 유신반대의 선봉에 섰던 사람들 몇몇은 유신의 딸이라 일컬어지는 분의 밑에 들어가서 정치적 영역을 도모하고 있다. 인생의 상수가 방향 없이  갈지자를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상수는 분야마다 달라야 한다. 그리고 일관되어야 한다. 직장에서의 상수가 다르고 신앙생활에서의 상수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신앙 안에서의 상수는 누구일까?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같은 평신도 교우들과 교류를 하며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의 관계는 세상 속에서의 관계와는 달라야 한다. 세상의 잣대와 신앙의 잣대가 달라야하고 세상의 가치기준과 신앙의 가치기준이 달라야하며 세상의 언어와 신앙의 언어는 최소한 조금은 달라야 한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만나면 시에 대해,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글에 대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치에 대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에 대해 말을 하는 것처럼, 신앙인끼리 만나면 그 화제의 영역이 달라야 한다. 그리고 그 신앙에 대한 화제는 신앙의 본질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앙의 본질적 틀 안에서 화제를 이루는 자리를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굳이 신앙인이 아니라 해도 무방한 모임이고 그 안에서 나누어지는 화젯거리가 세상의 다른 관계에서나 같은 모습을 띈다면 그 신앙적 관계는 공허할 뿐이다. 신앙 안에서 인생도처유상수를 만나기가 좀체 쉽지가 않다. 그렇고 그런, 그만 그만한 빤한 이야깃거리로 반모임이 진행되고 구역모임이 이루어지고 제 단체의 회합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신앙인의 ‘인생일처최상수’는 예수님

뭐 신앙인이라고해서 해서 고고하게 학처럼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신앙인들은 왜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물음과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한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사유하고 성찰하며 교회의 존재론적 물음을 찾아가야 한다. 만약 본당의 사목기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목기구가 교회의 구원사업의 가시적 도구로 존재하는 것을 깊이 있게 성찰하지 않고 성당 내 행사나 조직관리 차원의 이야기들에만 머물며 모임의 형태가 여느 직장 부서간의 회합과 같은 모습을 띈다면 세상과 교회는 굳이 구별이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좀 더 종교의 소명과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세례자요한이 사람들로부터 혹시 오실 메시아가 당신이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는 예수님을 염두에 두며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며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낮췄다. 세례자요한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존재는 인생도처유상수가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오직 하나뿐인 ‘인생일처최상수’였던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유일한 최상수(最上手)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구원사업을 이해하고 그 사업을 계승하고 다짐하기위해 모인 교회는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로 존재하여야 한다, 그 존재론적 의미 안에서 본당의 모든 사목기구와 제단체의 활동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아래 모여든 교회 안에서 우리가 인생도처유상수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 내 신앙인생의 상수로 모시고 싶은 신앙인이 흔치 않은 것이 아쉽다. 혹, 내가 지금 모르는 그 누군가가 홀로 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는 있지 않을까?

황산 (서울대교구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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