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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희망을[여성과 신학]

 

   
Eugène Delacroix (1798-1863) Pietà
Oil on canvas, 1850 
며칠 전 "예수와 여성들"이라는 제목으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과 여성들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1시간 정도 강의를 하게 되었다. 속으로 무척 망설이다가 추천한 수녀님께 폐가 되어선 안 된다는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그날의 긴장을 감수했다. 아직도 상당부분 가부장성이 농후한 교회에서 평신도 여성이 앞에 나선다는 것이 흔치 않은 상황임에도, 나는 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간이 커진 엄마이며 예수님이 여성들과 깊고도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왔다는 복음서의 메시지를 확신하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내가 준비해간 자료를 살펴보면서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의 관계가 참으로 미묘했다는 뒤늦은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중풍에 걸리신 친정어머니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지내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솔직히 어머니 마리아 입장에서 아들 예수는 늘 조심스럽고 어려운 존재였던 듯하다. 복음서의 예수 탄생 사화(루가 1,26-38)가 진짜 있었던 사실이든 아니면 복음서 작가가 창작력을 발휘한 작품이든 간에, 예사로운 탄생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당시 유대사회의 관습에 따라 약혼한 12-15살의 사춘기 소녀였다. 얼마 후면 약혼자 요셉과 부부생활을 해야 하는데, 어느 날 홀연히 성령으로 잉태를 하게 된다. 남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임신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마리아도 요셉도 알고 있었지만, 그 둘은 다행히도 큰 불상사 없이 부부로 살며 예수를 낳아 키운다.

나는 마리아가 잉태를 결심한 것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주체적으로 응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리아를 순종적인 여성으로만 보고 이를 본받아 따르라는 관점보다는, 전 인격을 걸고 하느님 뜻을 오롯이 받아들인 여성이라고 바라본다. 그리고 "마리아의 노래"(루가 1,46-55)를 통해 개인의 행복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 입장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길을 헤아렸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분명 이런 어머니 품에서 자라고 교육받았기에 공생활도, 십자가와 부활도 맞이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갈 필요를 느낀다. 복음서에 나오는 모자관계는 예사롭지가 않다. 예수가 12살 되던 사춘기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두 모자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다(루가 2,41-52). 하느님이야말로 자신의 참된 어버이라고 말하는 예수를 보며, 마리아는 아들이 이제 자신의 품을 떠나 독자적인 한 인격체로 섰음을 깨달았을 것 같다. 이날 이후로 15년 이상을 예수는 가족과 함께 살았던 듯하지만, 그 내적 관계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소년 예수는 마마보이에서 훌쩍 성장하여 참된 인간의 길과 참된 하느님의 뜻을 고민했음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하면서 구설수에 오르자, 어머니 마리아는 다른 자녀들을 데리고 예수를 찾아간다. 그 다른 자녀들이 마리아의 친자식인지, 아니면 요셉의 전처 자식들인지, 조카들인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어쨌든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를 아들 예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참된 가족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라며 매몰차게 밀어낸다. 마리아는 얼마나 무안하고 민망했을까? 마리아는 예수를 끌고 가려는 생각만으로 아들에게 갔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예수의 속맘도 그렇게 차갑기만 했을까? 아마 두 모자 사이에는 그런 만남조차 이해하고도 남을 만큼 깊은 공감과 신뢰가 있었을지 모른다.

십자가 아래서 드디어 모자는 서로 깊이 소통하며 참 가족임을 드러낸다. 예수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자신의 애제자에게 어머니의 안위를 부탁하고, 어머니는 그것으로 아들이 혼신을 쏟았던 모든 일을 자신에게 맡기고 있음을 한순간에 안다(요한 19,26-27). 아들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자신이 꿈꾸고 추구해온 것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 어머니가 희망을 가지고 이어나가 달라고 유언하고 있다. 문득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떠오른다.

서로 존중하며 각자의 길을 때론 염려하면서도 내버려두는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 예수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이 시대 모녀 관계를 떠올려본다. 엄마도 자녀도 각자 자신이 가야할 참된 인간의 길과 하느님이 허락하신 삶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와 있었던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가 2,51)는 성경 구절을 읽으며, 나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마음속에 간직할 모든 것이 과연 무엇이고 어디에 희망을 두어야 할지 고심하게 된다.


유정원/ 로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학부와 신학석사과정을 마쳤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종교학과 박사과정에 있다. 종교간의 대화와 여성생태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가톨릭여성신학회에 참여하여 교회와 여성의 관계, 현대 여성의 삶과 영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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