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얼마 전 볼 일이 있어 강화도로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액정에 떠 있는 번호는 내가 전혀 모르는 번호였고 첫마디가 꽤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북 인천 세무서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유가환급금 신청서에 문제가 있어서요.”

그러고 보니 그 며칠 전 세무서로부터 유가환급금을 신청하라는 통지서가 왔고 그 내용 중에 올해 몇 달을 일했냐고 묻는 난이 있어서 12달 다 일했다고 기입해서 보냈던 기억이 났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일년 열두달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벌이는 시원치 않지만..) 아무튼 다음날 나는 이십여만 원이나 되는 그 환급금을 받을 생각에 북 인천 세무서로 보무도 당당히 찾아갔다.

“서류가 미비합니다.”
“어떤 서류가 미비합니까?”
“개인 사업자가 아닌 경우에는 원천징수 영수증을 첨부하셔야 하거든요.”
“그게 뭡니까?”
“여기에 보면 12개월간 계속 일을 하고 계시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매우 당당히) “그렇습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원천징수 영수증을 모르십니까?”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합니까?”
“회사에 다니지 않으십니까?”
“회사에 다니지 않습니다. 허허허...”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십니까?”
“글도 쓰고 연극도 하고 애들도 가르칩니다. 어험.”
“그럼 일하시는 곳에서 물어보십시오.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국가 통계상, 일용근로자만도 못한..

허나 불행하게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원천징수 영수증을 떼어줄 수 없었으며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12개월이 아니라 기껏해야 6개월 정도의 영수증만을 떼어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연극쟁이들은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국가에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연극쟁이들은 사업가가 아닌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간간히 일을 하는 일용직 근로자만도 못한 사람으로, 이 사회의 통계에 잡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 수입과는 별도로 이건 참 쪽팔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민이 됐다. ‘이거 이래가면서까지 그놈의 환급금을 받아야 돼?’

하긴 그렇다. 이것저것 눈치 보는 것이 싫어서 돈 많이 주던 직장들을 호기 있게 때려치우면서 시작된 나의 사회생활은 글자 그대로 ‘마지날맨(marginal-man)’, 혹은 방외인 그 자체였다. 게다가 나는 내가 그렇다는 사실을 너무나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겨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환급금인지 뭔지 준다니까 갑자기 사회 속에서의 내 위치를 확인하고 그 와중에 뭔가 방법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는 꼴은 참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다시 받아온 통지서를 구겨서 옆에다 던져 버리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일을 끝내고 돌아온 마누라와의 대화.

“토마스. 유류 환급금 받았어? 나는 받았는데...”
“에이. 시시하게 뭐 그런 걸 받아... 됐어.”
“뭐가 시시해. 20만원이 넘는 돈이야.”
“20만원이고 뭐고 싫어. 뭐 이상한 서류를 떼어야 한대. 나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뭐야? 그거 진심이야?”
“진심이지 않고. 나 아직 안 죽었어. 아직 당당해. 나 멋있지?”
“당장 환급금 받아오지 않으면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근근히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모양입니다

나는 내 뼈를 추리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나의 행적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달 짧은 글을 써주고 10만원이 채 못 되는 돈을 받던 한 월간 잡지사가 있음을 상기하고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거기서는 그놈의 영수증을 떼어주신다고 했고 너무 고마운 마음에 그것을 들고 다시 세무서를 찾았다.

“... 한달 수입이... 10만원이 안되시는군요...”
“예? 무슨 그런 말씀을...”
“근근히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모양입니다.”
“아르바이트...요?”
“아무튼 서류는 잘 접수됐습니다.”

언제나 이 모양이다.
관공서에만 가면 나는 그저 아르바이트생이거나 무주택자, 혹은 교통법규 위반자로밖에 나를 설명할 길이 없다. 하기야 실상은 뭐가 다를까....
나를 지칭하되 ‘선생님’이라 지칭하는 꽤 많은 분들에게 무지하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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