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빨강, 노랑, 파랑, 하양… 전부 쉰여섯 알. 내과, 정형외과, 신경정신과, 피부과 그녀의 몸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다. 약제실 창문 밖에서 쏘아보는 그녀를 설탕 듬뿍 넣은 달싹한 커피로 일단 달래놓고 이제 그녀의 스타일대로 약을 조제한다. 안구의 실핏줄이 터지도록 눈을 부릅뜨고 신경의 씨줄과 날줄을 곤두세워야 한다. 긴장해서인지 진땀이 나고 입이 마른다.

▲ 광주가톨릭대학교, 2012 ⓒ박홍기

조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노심초사해서다. 딱히 그럴만한 실수가 있어서가 아니다. 기껏해야 약봉투에 이름을 쓴 게 마음에 안든다, 약포지가 왜 이 모양이냐 등등…. 그녀의 주먹에 가슴을 맞은 엄 약사님은 몇 주째 요양 중이다. 뺨까지 맞은 베테랑 김 약사님, 홧김에 그녀가 던진 신발을 맞고 이마가 터진 송 약사님도 그녀가 떴다 하면 도망친다. 오늘은 또 무슨 트집으로 난동을 부릴까? 떨린다.

소문에 의하면 그녀가 처음 노숙인 무료진료소에 온 건 이십년 전이라고 한다. 그때 나이 열여덟. ‘참 예뻤지’라고들 한다. 지금은? 그녀는 괴물이 되었다. 한여름에도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얼굴 전체를 덮은 마스크를 한 탓에 복면강도 같다. 겨우 볼 수 있는 건 빼꼼히 나온 찌부러진 눈 뿐.

그녀의 병명은 안면혈관종양이다. 처음에는 얼굴에 콩알만 한 혹 하나가 생겼다. 웬 혹이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혹이 점점 커지면서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늘어나더니 급기야 눈 코 입까지 덮었다. 혹은 무게를 감당 못해 얼굴 피부 밖으로 축 늘어졌다. 눈두덩과 입술까지 침입해 시력도 말씨도 기능을 거의 잃었다. 악성종양, 피부암이다. 혈관때문에 수술도 불가능했다. 희고 매끄러운 피부, 큼직하고 시원스런 눈망울, 도툼한 입술, 오똑한 코가 무너지고 시퍼렇게 변한 피부와 썩어들어가는 혈관이 내놓는 찐득찐득한 분비물로 냄새가 역하다.

가난했지만 뛰어난 그림실력으로 장학금까지 받고 미술대학에 갈 계획이었지만 꿈을 접었다. 매주 진료소에서 그녀의 약만 받아가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간암으로 어머니는 중풍과 자궁암으로 몇 년째 누워있어 세 식구가 모두 무로진료소의 신세를 진다.

그녀와의 인연도 끝이 났다. 종양이 뇌로 전이되었고 합병증인 결핵과 간질 때문에 대학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도, 모두들 말은 안했지만 그녀의 짜증과 신경질, 폭력에 하도 시달려 온지라 안심했다.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두 주 동안 걸어보기 전에는 절대 그를 판단하지 말라.” 인디언의 지혜로운 속담이다. 남의 사정을 아는데 두 주가 걸린다고? 나는 채 하루도 아니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고충을 아는 데는.

“후유증이 클 것입니다.” 담당의사의 예고가 있었지만 내 얼굴은 코끼리처럼 변해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도 멀쩡했는데 지금 거울에 비친 얼굴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풍선처럼 부푼 데다 붉은 점들이 은하수처럼 무수히 박혀있었다. 약물 부작용이었다. 얼굴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이었다. 게다가 누른 진물이 계속 흘러나와 얼굴 피부가 조여들어 나병환자처럼 되어버렸다. 나도 그녀처럼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고 눈만 빼꼼히 낸 복면강도가 되어 거리에 나와야했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다. 아! 그제야 그녀가 그리워졌다. 아니 몸서리치게 보고 싶었다. 빨리 달려가서 이 위기를 탈출하는 비결을 듣고 싶었다. 늦게야 그녀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다. 패션에 민감한 그녀의 취향대로 예쁜 손뜨개 모자를 샀다. 병실 문을 열었다. 병실 침대에 앉아 있는 그녀, 괴물이 아니다. 진상환자도 아니다. 내 인생의 대선배다. 성인이다.

“이것 뭐이래!” 내가 가져온 모자에 타박을 늘어놓으며 휙 던진다. 또 심통, 그녀는 여전하다. 그러나 내가 변한걸…. 이제 그녀는 선배요, 스승이다. 비로소 그녀 앞에서 복면을 벗고 위로와 안식을 얻는다. “또 와야해!” 그녀의 협박을 뒤로하며 병실 문을 나섰다.

“우리는 그를 벌 받고 있는 사람, 하느님께 매 맞고 있는 사람, 천대받고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성경 속 ‘그 분’의 불행에 반응한 것처럼 나도 그녀에게 그랬다. 때로는 동정, 때로는 멸시, 때로는 그녀의 불행이 내 것이 아니어서 감사하다고 여겼다. 이제 조금 그녀의 존재 이유를 알 것 같다. 아, 그녀의 불행과 고통은 나의 것이기도 한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커피 둘에 프림 둘, 설탕 셋!” 약제실 밖에서 살벌하게 주문하던 그녀의 커피 레시피를 잊지 않으며 그녀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그녀는 이제 내가 사는 이유가 되었으니까.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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