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세계의 교회에 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에서 말하는 교황 바오로 6세의 생태적 관점

교회에서 최초로 환경파괴의 문제를 시대적 현안으로 거론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한 문헌은 교황 바오로 6세의 교서 ‘팔십 주년’이다. 하지만 그 이전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에도 사실 그리스도교의 인간관과 자연관이 담겨있다. 사목헌장이 발표된 1965년 당시는 한마디로 전쟁과 위기의 시대였다. 1965년 8월, 미 의회는 사실상 베트남에 대한 선전포고인 ‘통킹만 결의’를 의결하며 공개적인 군사개입으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고, 파키스탄과 인도 두 나라도 전쟁상태였다. 역설적으로 이 같은 전쟁의 시기에 과학은 도약한다. 수많은 무기들이 개발되고 사용되며 도약한다. 세계 1, 2차 대전 당시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그 예이다. 사목헌장을 읽어보면 당시 바오로 6세 교황의 세상에 대한 걱정이 드러난다. 바로 개발의 시대,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의 경제만능주의 정신,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의 악화, 부유한 나라들과 개발도상국들의 격차, 경제적 예속, 굶주림, 노동자, 농어민들의 열악한 삶을 교황은 걱정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당시 바오로 6세 교황의 환경에 대한 우려는 ‘현세 사물의 자율성’에 대한 우려로 시작된다. 다시 말해 현세 사물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자율성을 이유로, 인간이 피조물을 창조주 하느님께 돌려드리지 않고 제멋대로 사용한다는 우려다. 사목헌장은 말한다. 거대한 군중은 생활필수품이 전혀 없는데, 어떤 이들은 저개발지역에서도 호화롭게 살며 재화를 낭비하고 있는 상황을(사목헌장 63항). 다시 말해 사치와 빈곤과 소수의 막대한 결정권에 대한 우려였다. 그리고 교황은 이런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인간 ‘소유의 삶’으로 보았고, 그 소유는 일찍이 생태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이 말했던 ‘죄’의 상황이었다.

바오로 6세 교황, 사목헌장 통해 ‘소유의 삶’에 문제 제기  

오늘날 생태계 파괴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관점이 바로 ‘소유의 관점’이다. 산업문명의 가치관은 소유 중심의 세계관이고, 소유는 권력과 지배의 시작이다. 그리스도교적으로 보아도 생태위기의 근본문제는 바로 하느님의 것을 인간이 소유하고 갈취하는 데 있다. 사목헌장을 통해 바오로 6세 교황이 ‘소유의 삶’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바로 생태계 파괴의 근본문제를 ‘하느님의 것’을 인간이 자기 뜻대로 소유하고, 갈취하는 소유의 삶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오로 6세 교황의 대안은 무엇이었을까? 그 해결의 실마리는 ‘의식의 전환’이었다.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았고, 성령 안에서 새사람이 된 우리네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해야 한다는 ‘인간의 책임’에 있고, ‘청빈과 자유의 정신’으로 피조물을 사용하고 누릴 것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사목헌장 37항). 그러면서 교황은 피조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떠한 종교이든 모든 신앙인은 언제나 피조물들의 언어 안에서 창조주의 현현(顯現, 나타남)과 목소리를 들어왔다.”(사목헌장 36항) 그리고 “인간은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오히려 어떠한 존재이냐에 따라 가치를 지닌다”(사목헌장 35항)며 ‘존재론적 삶의 태도로의 전환’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존재론적 삶은 우리의 구원과 연관되어 있다. 존재 중심의 세계관은 피조물들도 하느님 안에서 의미가 있고, 같이 회개하고 구원에 참여하는 동료로서 받아들이는 관점이다. 이것은 구원의 확장이다. 우리가 만인의 형제이며, 모든 피조물의 형제요, 자매가 되는 세계관의 연장이며, 이것이 화해이며 관계의 회복이자 구원이 된다.

창조주의 모습과 목소리 무시하고 외면하는 오늘날 교회

이 같은 사목헌장의 관점에서 비추어본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교황 바오로 6세의 권고처럼 우리 교회는 피조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사목헌장 에서 말하듯이 모든 신앙인은 언제나 피조물들의 언어 안에서 창조주의 현현(顯現, 나타남)과 목소리를 들어야만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토건 개발사업과 재자연화 문제,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생태계 파괴문제, 우리와 미래 세대의 삶을 위협하는 핵발전소 문제 등 피조물의 파괴와, 그 안에서 죽어가는 창조주의 모습과 목소리를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다.

제주 강정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평화활동가들이 연행되고 구속되고 있지만 한국 교회의 일치된 저항과 반대의 목소리조차 없다. 얼마 전 추계 주교회의에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수도자들이 핵에 대한 교회적 가르침을 달라고 주교님들께 청하였지만 주교회의는 대선이라는 정치적 사안의 민감성을 이유로 그 입장 표명을 유보하였다. 그러나 이런 유보야말로 오히려 정치적인 모습이다. 어떻게 우리와 다음 세대 후손들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을 한낱 대선이라는 정치적 사안으로 유보할 수 있는가. 생태적 관점에서 추진되지 않은 명동성당 재개발도 문제다. 서울시 원전1기 줄이기 정책과 연계된 명동성당 재개발에 대한 의견도 제시되었지만 묵묵부답이다.

대부분의 교구와 성당에서 우리 시대 중요한 생태적 현안인 4대강, 핵발전소,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 해군기지 문제가 생명과 평화, 창조질서보전의 존재론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는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바로 ‘소유의 가치’에 빠져있는, 그리하여 자본과 물질의 가치로 세속화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바티칸 공의회 50주년에 생각해야 할 것은 ‘존재론적 삶’이다.

직강화(直江化)되어 물고기가 죽어가는 강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 자연이 하느님의 자기표현임을 느끼며, 위대한 생명의 현상임을 느끼는 것. 그리고 참된 제자 공동체를 지향하며 ‘무소유’의 정신과 삶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 교회의 중심 과제이자, 선택이 되어야 한다. 이 선택을 위해 교회 공동체는 신자 개개인의 성숙에 도움이 되는 생태적 구원관을 이야기하고, 창조 중심의 영성을 느끼며, 원죄(原罪)보다는 원복(原福)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부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의 닫힌 교회가 아닌, 우리 바로 옆의 가난한 이웃들과 해고 노동자들과 풀벌레와 나무 등 지구 공동체에 대한 열린 관심과 사목적 접근이 이루어지는 교회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 모습들이 시작될 때, 현대 산업 문명과의 단절이, 소유의 삶과의 단절이 시작된다. 존재론적 삶의 시작이다. 바로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점이다.

맹주형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기획실장, 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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