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간 메리놀 수도회 소속 로이 부르주아 신부, 지난 10월 제명 뒤늦게 알려져
교회법 학자들 "교황청 간여 이유 불분명"…제명 사유와 과정 논란

여성사제직 운동에 적극 참여해온 미국의 로이 부르주아 신부가 메리놀 수도회에서 제명됐다.

11월 19일 미국 메리놀 수도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0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로이 부르주아 신부를 수도회에서 제명시켰다고 발표했다. 로이 부르주아 신부는 45년 동안 메리놀 수도회 소속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평화운동에 헌신해왔고 특히 여성사제직을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해왔다. 로이 부르주아 신부는 2008년 8월 여성인 제니스 세브르-두친스카(Janice Sevre-Duszynska)서품식을 공동 집전한 이후 교황청의 요주 인물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 2007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에 참석한 로이 부르주아 신부 (NCR 홈페이지 갈무리)

한편, 로이 부르주아 신부의 제명을 두고 다수의 교회법 학자들은 교황청이 제명에 간여한 사유가 매우 불분명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수도회 소속 사제를 제명시킬 권한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교회언론 중 하나인 NCR(National Catholic Reporter)에 따르면 로이 부르주아 신부의 제명을 둘러싼 논란의 주요 쟁점은 ▲부르주아 신부에 대한 수도회의 제명이 사제직 박탈로까지 이어질 것인가, ▲부르주아 신부가 항소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그의 제명을 ‘교황청 수도자성’이 아닌 ‘신앙교리성’에서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로이 부르주아 신부 제명에 신앙교리성이 직접 나선 까닭은

캐나다 오타와(Ottawa) 소재 세인트 폴 로마 가톨릭 대학교 교회법 교수인 오블라타 수도회 소속의 프란시스 모리시(Francis Morrisey) 신부는 NCR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청에서 메리놀 수도회로 보낸 ‘제명 통보서한’ 전문을 살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제명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교황청 수도자성’이 아니라 ‘신앙교리성’이 관여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신앙교리성이 개입한 이유는 여성의 서품을 심각한 위법이라 표현한 신앙교리성의 문헌이 2010년 5월에 바티칸의 인준을 받았고, 여성사제 관련 문제를 신앙교리성의 판단에 맡겼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모리시 신부는 신앙교리성이 부르주아 신부의 제명에 관여한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사제가 직무 수행의 전반적인 문제가 아닌, 부분적인 문제 때문에 교회에서 추방당한 첫 번째 사례일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의 여성 사제들 (로마 가톨릭 여성사제 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www.arcwp.org)

또 다른 익명의 교회법 학자는 “로이 부르주아 신부의 제명에 대한 메리놀 수도회 자체 투표를 둘러싼 의문들 때문에 신앙교리성이 직접 나섰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메리놀 수도회 지도부는 지난 봄 부르주아 신부를 제명시키는 투표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메리놀 수도회는 투표 개최에 대한 안건을 승인한 반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공표하지 않았다.

부르주아 신부 편에서 지지활동을 하고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교회법 학자 톰 도일(Tom Doyle)신부는 미국 메리놀 지부장 마이크 두간(Mike Duggan)신부가 부르주아 신부 문제를 다룬 투표에서 엇갈린 결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고 NCR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도일 신부에 따르면 이 투표에서 2명의 참사회원이 제명에 찬성을 한 반면, 3명의 참사회원은 기권표를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의 교회법 학자는 수도회 회원을 제명하는 투표에 있어서 교회법에는 기권에 대한 조항이 없으며, 따라서 기권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그런 문제로 부르주아 신부를 제명하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에 그들이 기권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제명에 반대하는 것이 곧 교황청에 대한 반대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표를 던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NCR에 전했다.

제명에 대한 항소 가능 여부도 불분명

부르조아 신부가 제명에 대한 항소권을 가졌는지도 불분명하다. 모리시 신부는 메리놀 수도회의 발표로만 본다면, 부르주아 신부에게 항소할 권한이 주어졌는지, 아니면 이것이 최종적인 결정인지에 대해 매우 불명확하다고 지적하며 “아마 신앙교리성의 서신에는 어떤 교회법적 뉘앙스가 있을 텐데, 그 서신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어떤 것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저명한 교회법 전문가이자 조지타운 법학대학 초빙교수인 예수회 라디슬라스 오시(Ladislas Orsy)신부는 부르주아 신부가 이 사건에 대한 항소권을 가지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정말 큰 문제는 실제로 이런 결정에 대한 항소를 제기할 법정이 없다는 것이다. 신앙교리성은 교황을 배후삼아 활동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신앙교리성 입장에서 본다면, 이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고, 여성이 사제로 서품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파급효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을지도 모른다”고 의견을 밝혔다.

기사 원문 번역: 김홍락 신부

기사 원문: National Catholic Reporter (www.ncronline.org), <Canon lawyers: Vatican's role ambiguous in Bourgeois' removal> 201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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