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력은 참 묘하기 그지없다. 수십 년 전 어린 시절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오를 때가 있는가 하면 불과 며칠 전 아니 몇 시간 전의 일도 어떨 때는 까마득히 생각이 안날 때도 있다. 물론 그 사건이 얼마나 자신에게 자극이나 영향을 미쳤는가에 따라서 기억의 농도가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인간이 가진 기억이란 것의 값어치는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할 일들은 분명히 있다. 개인뿐만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사회나 단체에 관계되는 일은 기록을 넘어 기억해 두어야 할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럴 경우에는 기억용량에 한계가 있는 인간의 하드웨어가 안타까울 뿐이다.

박정희의 유신 40년, 다시 기억하는 ‘검열과 통제의 추억’

2012년 올해는 이른바 박정희에 의한 유신 40년이 되는 해이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하여 많은 단체에서 <유신의 추억>이란 영화와 사진 혹은 기록물 전시회를 열었고 곳곳에서 <금지곡콘서트>를 개최했다. ‘유신’이란 김유신의 이름이 아니라 일본 근대화 과정의 한 사건이자 한국정치사의 종신독재집권을 위한 편법이었다. 현재의 40대 이하 세대는 초등학교에서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유신시절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먼 세월의 이야기는 아니다.

▲ 젊은이들이 즐겨 불렀던 대부분의 노래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댄 도둑 제 발 저려하는 발작적 증세에 불과 했다.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전설 같지만 (그러나 기억해 두지 않으면 반복될 더러운 법이지만) 한 때 이 좁은 나라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있었다.

“유신헌법의 부정, 반대, 왜곡, 비방, 개정 및 폐기의 주장이나 청원, 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한다.”

이것이 1975년 5월 발표된 ‘긴급조치 9호’다.

‘긴급조치 9호’로도 성이 차지 않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예술도 국가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그 해 6월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을 발표한 후 옛 노래, 최신 노래를 가리지 않고 심의를 실시하여 금지곡을 선정한고 음반까지 폐기하는 강력한 방침을 내렸다. 그 결과 국내가요 222곡을 금지곡으로 선정, 방송국 등 각계에 통보 조치했다.

대중문화에 칼날 들이 댄 얄팍한 정치적 계산

유신시절은 아니지만 금지곡이란 검열의 족쇄가 여전하던 전두환의 5공 시절 <독도는 우리 땅>이란 애국적(?)인 노래가 금지곡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노래는 1983년 <KBS방송대상>에서 신인가수상을 받았고, 1984년에는 <KBS가사대상>에서 동상을 탔다. 그런데 웬 금지곡?

결국 우스운 정치적인 계산이었다. 1982년부터 일본은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중고교 교과서 파동을 일으켰다. 그런 시점에서 반일감정은 극에 달했고 정광태는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를 만들어 만인의 마음을 달랬다. 일본은 사건발생 1년여 만에 시정의사를 밝혔으며 이와 맞물려 1983년 8월 한일각료회담과 9월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를 준비했다. 일본정부의 갸륵한 노력(?)에 대한 한국정부의 화답(?)은 애꿎은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의 금지였다. 결국 이 노래는 1983년 4개월간 금지되었다. 별 거지같은 이유로 대중문화가 유탄을 맞은 것이다. 정치적 판단이란 것은 늘 이런 얕은 수의 연속이다.

▲ 정치적 판단이란 것은 늘 이런 얕은 수의 연속이다.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그러나 따지고 보면 유신시절에는 이것보다 더 기막힌 이유로 한시적 금지가 아니라 음반을 폐기까지 해야 하는 금지곡의 남발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정치적인 유불리의 잣대를 대중가요에 들이밀며 벌어진 ‘일방적 · 묻지마 · 학살’이었다.

몇 가지 실제 사정을 들어보자. 이장희의 <그건 너>는 가사퇴폐 · 저속함을 금지사유로 들었지만 실제로는 유신체제에 대한 괴로움 호소로 해석한 것이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방송부적격이 이유였지만 실제는 가사 중 ‘붉은 태양’에 대한 악의적 해석이었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노래곡조가 왜색풍이란 이유를 들었지만 실제로는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반일감정 해소를 위한 희생양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노래는 독재자의 개인 파티에서 계속 불리어진 코미디상황도 벌어졌다. 또한 신중현의 <미인>은 3선 개헌의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장기집권 및 공약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했으며, 송창식의 <왜불러>는 장발단속 등 정부정책 반발로, <고래사냥>은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의 상징인 황소를 겨냥한 ‘황소사냥’으로 대학생들이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겉으로는 이런저런 엄중한 이유를 달았지만 특히 젊은이들이 즐겨 불렀던 대부분의 노래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댄 도둑 제 발 저려하는 발작적 증세에 불과 했다.

▲ 한국의 유신당국자들은 일본 명치유신에서 비롯된 일본의 식민지 통제정책을 본받았으며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것이다.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유신’이란 그런 것이었다. 금지곡만 하더라도 1972년 10월 유신 혹은 1975년 긴급조치 9호로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국에 있어서 검열을 통한 음악에 대한 통제는 일제 강점기부터 비롯됐다. 일본의 문화정책이란 것은 수많은 법령을 통하여 노래책, 음악공연, 레코드, 학교교육을 통제함으로써 노래의 소통을 통제했다. 그들이 말한 검열기준은 일반적인 노래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식민지 통제정책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15-17쪽. 문옥배. 2004. 예솔) 한국의 유신당국자들은 일본 명치유신에서 비롯된 일본의 식민지 통제정책을 본받았으며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것이다. 한마디로 박정희는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독재정권의 식민지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고도 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조국 근대화’와 ‘국가안보’를 사칭한 것이다. 지금은 그 때와 얼마나 다를까? 아니 얼마나 같을까?

유신시절 내내 ‘조국근대화’의 기수로서 토목회사에 있었던 인물이 지난 5년간 이 땅의 대통령이었다. 유신시절 마지막 5년 동안 실제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인물이 이 땅의 다음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 40대 이하는 초등학교 때에도 겪어보지 못한 유신시절이라 옛날이야기 같지만 유신은 이렇게 여전히 지속중이고 지속되려 안달한다.

테이프로 태풍 막다가는 70년대 ‘강남스타일’이 회귀할지도

알량한 기억력 탓인지 지난여름 지나간 몇 번의 태풍이름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태풍이 올 때마다 태풍보다 더 난리를 피우던 언론의 호들갑은 기억이 생생하다.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최고의 전자제품 생산국이며 몇 번 실패했지만 인공위성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는 나라에서 태풍을 대비하는 도시민들이 할 수 있는 대비책은 치사하다 못해 졸렬했다. 언론과 동사무소는 거듭해서 그 대비책을 방송했다.

“베란다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세요.”

전세금만 해도 억대가 넘는 아파트, 심지어 수십억대의 고층아파트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라면 몇 봉지, 생수 몇 병 사놓고 베란다에 노란색 포장테이프를 엑스맨 모양으로 붙이는 일이 전부였다. 그렇게 해서 태풍은 무사히 지나갔는가? 과수원의 수많은 낙과들, 거친 풍랑에 가라앉는 어선들, 침수된 논과 들, 허물어져 내리는 토사들, 날아가 버리는 산동네의 지붕들, 그리고 여전히 곳곳에서 고성농성중인 우리의 노동자들.

테이프로 아무리 제 집 유리창을 바른 들 우리에게 다가오는 태풍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여전히 때가 되면, 구실만 찾으면, 힘이 밀린다 싶으면, 국민들이 눈과 귀를 감고 있다면, ‘조국근대화’와 ‘국가안보’를 70년대 강남스타일대로 득달같이 외칠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헌법의 부정, 반대, 왜곡, 비방, 개정 및 폐기의 주장이나 청원, 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한다.”

다가오는 18대 대통령 선거는 테이프를 붙이자는 것이 아니다. 테이프를 걷어내고 가슴으로 당당히 태풍과 맞서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보자. 꼭!

 
 
김유철 (한국작가회의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대표.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