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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성인을 부르심[도로시 데이의 영성과 가톨릭일꾼운동의 한국적 적용-1]

오, 함께 계시는 하느님,
저 혼자서는 더 깊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저를 보호하고
지도하는 안내자로서 저를 안아주고
지지해주는 사랑의 동반자로서
도전하면서 위로해 주는 지혜로운 분으로
저와 함께 언제나 그곳에 계십니다.

오 함께 하시는 하느님,
제가 제 뿌리를 찾으려고
더 깊이 들어가려 할 때,
주님의 사랑으로 저를 감싸주십시오.
두려움과 불안정에 직면할 때
제게 힘을 주시고
제 안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숨겨진 보화에 놀라게 해주소서.

(조이스 럽 수녀, ‘더 깊이 내려가기 위한 기도’ 中에서)

글과 행동, 둘 다 실천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성스런 작업이다. 이 세상의 온갖 사건과 사고에 대하여 발언해야 하더라도, 여기에 응답하는 음성은 나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조금은 강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기 전에 잠시 음악을 들었다. 졸탄 슈피란델리 감독이 만든 <신과 함께 가라 Vaya Con Dios>라는 영화의 O.S.T인 ‘브라더 인 암즈(Brother in arms)’란 곡이다. 본래 그레고리안 성가였다는 이 곡은 의식을 천상으로 이끌어 줄 것 같은 섬세한 장엄함이 깃들어있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이 대지를 제단으로 삼고 자신의 영혼을 성반과 성작으로 삼아 하느님께 이 우주의 모든 것을 봉헌하였다는데, 글을 쓰는 자에게는 때때로 책상 앞에서 기운을 정리하는 것이 곧 제단을 정결히 하는 사제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피터 모린과 더불어 가톨릭일꾼운동을 개시하였던 도로시 데이 역시 본래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글을 통하여 이 세상의 어둠과 빛을 두루 보고자 하였다. 세상의 불의를 고발할뿐더러 신비롭고 놀라운 사랑의 깊이를 돌이켜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는 여섯 권의 책과 1천 5백편에 이르는 기사, 수필, 비평 등을 썼는데, 글쓰기와 행동을 구분 짓지 않았다. “글과 행동, 둘 다 실천입니다. 둘 다 세상에 대한 윤리적 반응에서 나온 인간의 응답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헨리 나웬이나 스콧 니어링 같은 이들처럼 도로시 데이 역시 자신의 발랄한 삶만큼이나 실천적으로 의미 있는 글을 써온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자신의 삶과 글쓰기를 통하여 갈망한 것은 정작 무엇이었을까?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보았던 <오늘, 유성처럼 살아도>(도로시 데이, 바오로 딸, 1995)의 편집자는 도로시 데이의 생애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려면 ‘성인(聖人)’이란 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 도로시 데이

고행과 환시와 행적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선함에 대한 탁월한 역량 때문에 ‘성인’이다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로버트 엘스버그, 참사람되어, 2005)에서 엘스버그는 우리는 보통 성인들이 결점이 없는 사람들이며 오래 전에 기적을 행했고 교회 안에서 생을 보냈으며, 고통 받는 기회를 열심히 찾고 일찍 세상을 뜬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이미지를 가진 성인들을 계속 그리고 있는 한 그들의 지혜는 우리가 닿을 수 없고 당혹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의 삶은 단지 성인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의 바다라는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양상은 다를지라도 일상 속에서 늘 경험하는 일이다. 성인은 그들의 고행과 환시와 행적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선함에 대한 탁월한 역량 때문에 성인이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실상 성인들은 균형과 유머, 연민과 관대함, 장애물과 역경 앞에서 가진 평화와 자유의 정신, 그리고 모든 것 안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능력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성인들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가운데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상기시켜 주는 사람들, 그들의 사랑과 용기, 그리고 내적인 조화가 보통의 인간성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사람이 취해야 할 바를 알려주는 기준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느끼고,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며, 아마도 그들의 내적인 빛남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할 것이다.”(엘스버그)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이란 정확하게 ‘한 가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에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면 나머지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다. 그 때에는 거룩한 역설에 따라 한 가지 필요한 것과 함께 다른 모든 것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지복(至福)을 누린 성인들이 발견한 그 한 가지는 항상 같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는 것, 하느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일꾼운동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학교이며 노동캠프이다. 그곳에는 마음이 넓고 사회의식이 있는 젊은이들이 와서 성소를 찾는다. 수개월 혹은 수년을 지낸 후 그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삶을 원하는지 확실하게 깨닫는다. 어떤 이들은 의료, 간호, 법, 교사, 농사, 저술, 출판계로 간다. 그들은 연민으로 사랑하는 것을 배울 뿐만 아니라, 폭력을 재촉하는 위험한 감정,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운다.”

엘스버그는 도로시 데이의 생애 마지막 5년을 가톨릭일꾼공동체에서 함께 살았는데, 거기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찾던 것을 모두 찾았다고 고백한다. 그가 느낀 가톨릭의 매력은 교의나 교회와 거의 상관이 없었고 성인들의 지혜와 모범, 그리고 영적 고전서가 지닌 힘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로시 데이로부터 성인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단지 그리스도교의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 친구와 동료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도로시 데이는 거룩함과 기쁨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기도에 깊이 잠기지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현존했다. 다른 이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깨어 있지만, 그와 똑같이 아름다움의 징표에 민감하며, 그가 ‘기쁨의 의무’라고 부르던 것에 늘 깨어 있었다.

가톨릭에 입문하는 도로시 데이: 하느님인가 사랑인가?

   
▲ 젊은 시절의 도로시 데이
도로시 데이는 1897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한 스포츠 자유기고가의 딸로 태어났다. 집에선 하느님의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나 어린 나이부터 그는 성인의 삶에 매료되었다. 그는 병자들, 절름거리는 사람들,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성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이 내 마음 속에 있었다. ‘왜 악을 처음부터 피하지 않고, 그것을 치료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가?’ 사회질서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노예들을 보살피기만 하지 말고,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성인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고심한 끝에 그는 종교에 문을 닫고, 당대의 진보적인 정치에 희망을 두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로 그들과 함께 다양한 좌익간행물이나, 반제국주의 연맹 같은 조직에서 일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흥분된 참여에도 불구하고 초년의 삶은 외로움과 도덕적 영적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여전히 품고 있던 초월성에 대한 열망이 그를 가톨릭교회로 가게 하였다. 그가 회심한 것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적 행복의 경험으로 찾아왔다. 그는 즐거움과 감사의 충동을 너무나 크게 느꼈기 때문에 하느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의 회심은 친구들과 ‘관습에 의한’ 남편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불가지론자이며 무정부주의자였던 남편은 가톨릭주의를 경멸했고, 그가 종교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도로시는 “하느님인가 사랑인가를 택해야 하는 질문에 봉착했다”고 썼다. 더군다나 가톨릭교회를 향한 그의 결정은 노동계층을 배신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가톨릭일꾼운동에서 소명을 발견하다

   
▲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
그런데 응답은 피터 모린이라는 강한 불어 억양으로 말하는 한 덥수룩한 사내의 모습으로 왔다. 1932년 어느 날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주머니는 팜플릿과 자료 따위로 불룩해 있었다. 때는 경제공황 시기였고, 도로시 데이는 워싱턴에서 열린 공산주의자들이 조직한 실업자행진을 취재하러 갔다가 워싱턴의 성모무염시태 성당에 가서 “내가 가진 모든 달란트를 동료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길이 열리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피터 모린은 55세의 농부 출신으로서 지난 20년 동안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행동으로 옮길 고유한 비전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도로시 데이가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 적임자라고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복음서의 철저한 사회적 메시지를 수행하는 운동을 구상했다. 단순히 불의를 고발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질서, 노동의 철학과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에 기초한 새 질서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피터 모린은 말했다.

그들은 정부와 교회가 그러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도록 기다리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의 비전에 따라 지금-여기서부터 살기 시작할 것이며, “사람들이 더 선해지기 수월한” 사회를 창조하는 일을 하고자 했다. 1933년 5월 1일 성요셉 축일에 ‘가톨릭일꾼’ 신문이 유니온 광장에서 배포된 이래, 이 신문은 미국 전역에 있는 ‘환대의 집’에 중심을 두고 있는 운동의 도구가 되었다. 가톨릭일꾼공동체는 전통적인 애덕활동뿐 아니라 사회 정의와 평화운동에도 결합되어 있었다. 도로시 데이는 피터 모린과 만난 뒤 50년 동안 몸담게 된 이 운동에서 자신의 성소를 발견하였다.

성소란 우리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도록 그분으로부터 초대받는 것이다. 이는 토마스 머튼이 말하듯이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에 응답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특정한 생활방식이나 일과 같이 미리 맞춰진 옷을 입는 것과는 다르다. 많은 성인들의 투쟁은 당대에 가능한 선택을 넘어 거룩함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안토니오는 사막에서, 베네딕토는 수도원에서,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철저한 가난이라는 그들만의 길을 찾았다. 그들 모두는 다른 사람들이 따르도록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길은 기존의 방법들을 먼저 거부하는 것에서 싹텄다. 무엇인가가 그들로 하여금 다른 길을 찾도록 만든 것이다. 성서에서 부르심은 항상 하느님께서 이름을 부르시고, “여기 제가 있습니다.”라고 응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엘스버그는 “이는 단순히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이 말할 수 없이 중대한 순간임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 전체와 목표를 상기시키는 초월적인 질문에 대하여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는 문제라는 뜻이다.

“네 삶을 통해 그러한 성인을 실현하라”

도로시 데이는 피터 모린의 첫 방문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였으며, 그의 구상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성소를 알아차렸다. 그럼으로써, ‘사회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성인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 답변은 도로시 데이 ‘자신의 삶’을 통해 그러한 성인을 실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소를 발견하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일생에 걸친 도전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는 ‘부르심 안의 부르심’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끝까지 충실하기 위한 지속적인 식별이 요청되는 것이다.

한편 일단 회심이 일어나면, 수많은 무질서로부터 즐거움이 가득 찬 해결책이 그에게 주어진다. 삶이 평범한 짐으로 무거웠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타오르는 불길로 밝게 빛난다. 생기와 에너지를 갖게 되어 ‘천국으로 가는 나의 길’이 열린다. 마더 데레사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을 보고 어느 언론인이 물었다. “나라면 백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가 말했다. “저도 그래요.” 같은 일이더라도 부르심에 대한 깨달음 뒤에는 전혀 다른 현실이 된다. (계속)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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