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 3년간 남한 천주교회의 정치세력화(3)

 민족사 안에서 흔적을 남긴 해방 이후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 측면을 오는 8.15일 광복절까지 다루려 한다. 우리 역사와 백성들 안에 육화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이 어떠하실 지 가늠해 보고 지금 여기를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행해야 할 회개와 쇄신의 방향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먼저, 해방 공간에서 미군정 통치하 남한 교회의 모습을 5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       

< 미군정 3년간 남한 천주교회의 정치세력화 >
 
  1. 한국교회의 미군정에 대한 우선적 선택
  2. 교황청과 미국의 동반자적 관계
 
3. 반공사상투쟁의 선두주자, 한국천주교회
  4. 한국천주교회의 정치세력화 
  5. 남한단독정부의 수립과 교회의 정치적 태도


반공주의 천주교 선전매체의 활성화

교회가 미군정 및 반민족 분단세력에 동조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두각을 보인 것은 反공산주의 사상투쟁 분야에서다. 한국천주교회의 반공사상 보급운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해방 공간에서 이론적으로 무장되어 있던 사회주의 진영은 <해방일보> 등 여러가지 언론 출판매체를 통하여 활발하게 사회주의 사상을 대중에게 보급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 당시 사회주의자들은 대부분 지식인그룹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익단체들은 이론적으로 취약하였고 선전매체도 별로 갖추고 있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주교회의 역할은 자못 컸다고 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일제식민지 상황아래서도 교황청의 반공노선을 따라서 줄곧 반공이데올로기를 교회언론을 통해 선전해 왔던 것이다. 천주교회는 조선공산당의 기관지를 발행하던 인쇄소(조선정판사)를 위조지폐사건 이후 미군정으로부터 불하받아 1946년 10월에 주간이던 <경향신문>을 일간으로 하여 창간하였다. 이 신문은 1949년 6월말 현재 발행부수 73,000부를 기록하였다. 또한 1946년 8월에는 <경향잡지>를 다시 발간하게 되고 좌우익의 대립이 격화되던 1947년에는 4월 5일자로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반공선전물이던 <가톨릭청년>과 <천주교회보> 등의 잡지가 차례로 속간되었다.

▲ <가톨릭청년> 1947년 4월호 복간호

종교전쟁으로서의 반공주의 사상투쟁

교회의 반공주의 사상투쟁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대립관계를 경제적, 사회체제적 대립구도로 이해하지 않는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의 시각에 서있다고 항상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비판은 교회가 중립적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할 뿐이다. 오히려 사회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은 안전장치에 불과하다.

이 당시에 교회는 사회주의를 하나의 사회체제로서 비판하기보다 맑스-레닌주의의 ‘유물론’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제가 설득력 있게 들리기 마련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사회주의를 하나의 사이비종교처럼 다룬다. 그 결과 사회주의와 교회와의 싸움은 무신론적 집단과 하느님의 백성들이 싸우는 일종의 ‘종교전쟁’이 되는 것이다.

▲ <가톨릭청년> 1947년 4월호 복간호, 존 달그리의 '붉은 군대'

그리스도 신자들은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십자군

이러한 종류의 선전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윤공이 <가톨릭청년>(1947.11)에 기고한 「볼세비키적 공산주의를 배격함」이라는 글이다. 윤공은 교황 비오 9세의 말을 빌어 “공산주의라 칭하는 사설(邪說)은 근본적으로 자연법 그 자체에 배반”하는 것이며, 비오 13세의 회칙을 인용하여 “인간사회의 핵심을 찔러 이것을 전멸시키려는 치명적 역병(疫病)”이라고 단죄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신을 거역하는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십자군으로 소집되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같이 부르짖고 싶다.“볼세비키공산주의는 내 자신의 적이오 全조선 가톨릭 20만 신도의 적이며 이 강산 3천만 동포의 적이며 더한층 전세계 그리스도교의 아니 이 우주창조후 아담으로부터 조물주이신 천주를 믿는 전 인류의 무덤과 저의 영혼의 적인 것이다.

옛날 네로 황제는 로마시를 불살었지만 공산주의는 전세계의 침략자며 전세계에 불을 놓아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20세기의 네로이며 지상의 배암은 아담과 에와를 속였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전인류를 그 감언이설로 속여 유혹하고저 하는 20세기의 배암인 것이다...

공산주의적 볼세비키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 문화에 대한 극도로 철저한 즉 다만 이론적이 아니고 실천적 선전포고를 의미한다. 저들은 어떠한 신학적 비판적 神論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전투적 反神主義를 의미하는 것이다...

암흑의 권력 천주를 저주하는 마귀가 천주께 항전하였으니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은 우리 모든 신자뿐만 아니라 천주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일치단결하여 최후의 승리를 천주께 의탁하며 그 보호를 믿고 이 도전에 응전하지 않으면 아니되겠다.

<가톨릭청년>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논리와 내용의 치밀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잡지에서는 위 인용문과 같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판단과 단죄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 그 자체에 대한 원론적 비판, 소련 및 동구 공산국가에 대한 정보와 비판, 한국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정보와 비판, 반공주의 사상에 관한 교황들의 발언들을 소개하는 등 전 분야에 걸쳐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천주교회는 이러한 반공투쟁을 전세계적인 차원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1948년 4월 8일 한국천주교 주교단에서 발표한 「민첸티 추기경에 대한 항의서」가 바로 그것이다.

헝가리공산당에서 민첸티추기경에 대하여 취한 독선적인 공판에 관해서는 정의와 의분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공판은 가톨릭교회를 전복시키려는 조작으로서 문명사회에 있어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폭행으로 규정하는 바이다... 민첸티추기경의 처형을 절대 반대하며 인권과 자유와 종교를 옹호하기 위하여 공산당의 음모와 과감하게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이를 세계 자유인민에게 선언한다.

▲ <가톨릭청년> 1947년 10월호

▲ <가톨릭청년> 1947년 10월호. 친일인명사전에 거명된 장면, 남상철 등이 교황사절로 온 번주교 축하광고를 목차 다음 면에 게재하였다.


성모신심과 반공주의

한편 이러한 반공주의적 노력은 순교정신이나 성모신심과 결합하여 효과를 더욱 증폭시키도록 하였다. 1948년 2월 주교단 공동교서는 “종교적, 민족적, 국가적 위기를 당하여” 순교복자들과 성모신심께 구원과 보호를 청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의 회개”라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파티마의 성모발현에 관한 강조는 반공투쟁의 정당성과 승리에의 확신을 더욱 고취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경향잡지>는 1947년 7월부터 1948년 9월까지 15회에 걸쳐 ‘파띠마의 성모’라는 연재물을 싣고 있다. 이는 강력한 반공주의자였던 비오11세와 비오 12세는 파티마의 성모신심을 강조하였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비오 11세는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기적으로 공인하였으며, 비오 12세는 전 세계와 러시아를 성모성심께 봉헌하고 2차대전후 미국에서 성장하고 있던 (크레믈린의 ’붉은 군대‘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파티마의 푸른군대’에 강복했다.(「한국전쟁기 반공이데올로기 강화발전에 대한 종교인의 기여」 강인철, <1992년 전기 사회학대회 특별심포지움-한국전쟁과 사회변동> 별쇄본 15면 참조)

중립적인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일부 종교세력의 논리

한편 1948년에 들어서면서 공산주의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던 감정적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하여 일정하게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는 교회 안에서 무비판적인 반공노선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차츰 드러나면서 교회 안의 진보적 그룹과 교권세력과 이해를 같이 하는 집단들 간에 알력이 생기기 시작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가톨릭청년> 1948년 2월호에는 실린 강원길의 「가톨릭과 정치」라는 논문은 기독교의 반공노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평가를 덧붙이고 있다. 이는 비록 개신교 안에서 벌어진 상황을 소개한 것이지만 천주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핵심적인 논지를 보면:

「예수와 조선」(부제:혁명정신의 반동화를 戒), 오기영, <신천지> 3권 3호,

: 예수교는 어떤 지도자에 의하여 어떤 진영에 속해서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그들은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나머지 공산주의와 공통되는 것이면 예수의 혁명정신까지도 배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예수의 진리에 역행하여 특권계급의 권익을 보수유지하려는 조선의 바리새이와 사두가이파에게 농락되고 있는 것입니다...새 사상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이들은 새나라 건설에 기여하기는 커녕 새나라 건설을 방해하는 반동작용의 위험이 있으며 그 조직체의 세력이 크면 클수록 반동세력으로서의 위험은 더욱 증대할 것이다.

「기독교와 정치」 하천봉, <신천지> 2권 8호

: 교회 그 자체를 정치항쟁의 본거로 삼고 또 교회 그 자체를 정치운동에 휩쓸리게 한 것은 현재의 교회를 타락의 길로 들어가게 한 동기가 되었다...교회와 정치가 야합하거나 또는 교회가 정치에 간섭할 때 교회는 타락하고 민중과 유리되며 교회에 박해를 초래한다.

강원길의 평가

: 가톨릭은 일면으로는 개인의 求靈인 절대적인 개인주의를, 다른 면에 있어서는 절대적 보편주의를 표방하여 가톨릭의 이 양면성은 가톨릭시즘의 본질이라 하겠다. 예수께서도 신국을 염두에 두고 행동을 했지만 동시에 지상을 위한 평화와 정의의 나라를 항시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가톨릭은 공산주의를 싫어하긴 하지만 공산주의에 만일 예수의 정신과 공통된 점이 있다면 그 점까지 배격하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은 좌익이 주장하는 무산노동계급의 해방, 근로대중의 권리보장과 향상의 요구 등 이러한 것은 시인하는 바이다. 우리가 공산주의에서 반대하는 점은 무신론이다. 그리고 소련은 종교박멸운동을 일으키고 가톨릭에 대하여 공공연하게 도전하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가 이미 정교분리원칙이 갖는 허구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사상이나 행위과정을 판단함에 있어서 가톨릭교회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와서야 비로서 교황의 사회회칙 중 하나인 <40주년>이 처음으로 전문 그대로 번역되어 <사회질서의 대헌장>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나온다. 이는 보다 체계적으로 사회교리를 일반 신자들에게 소개할 필요가 생긴 탓이기도 하리라. 그리고 비교적 광범위한 계층에게 호소할 수 있는 내용의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가톨릭청년> 1948년 4월호 김주인이 발표한 「교회와 경제관」에서는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존엄을 가르키고 경제가 인간의 인격완성에 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여 경제지상주의나 물질만능주의를 배격”한다면서 제3의 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조국광복의 역사적 과업 앞에 임하고 있는 조선민족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상술한 모순을 다함께 지양하고 인간 이성의 지침에 의한 조화적이고 후생적인 협동체적 경제제도를 수립함으로써 동포가 다함께 사회생활을 환희하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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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편집국장  200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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